참나무시들음병 방재가 급하다 [신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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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시들음병 방재가 급하다

2016.10.26


지난 주말에도 친구들과 청계산에 갔다 왔습니다. 청계산만 가기로 하여 만나는 모임 회원들인데, 1990년대 중반에 시작했으니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 청계산을 선택한 것은 서울에서 대중교통편으로 쉽게 갈 수 있고, 높지도 않으며, 길이 무난하고, 돌이 없어 걷기가 편하기 때문입니다.

산에 오르는 길이 여럿 있지만, 이번에는 신분당선 청계산입구 역에서 출발해 원터골, 팔각정, 길마재를 거쳐 옛골로 내려왔습니다. 길마재를 지나 간식을 먹으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기서 어쩌다 화제에 오른 사람들은 인격살인까지도 당했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청계산 여론'이라고 한다네요.

이날 청계산에는 아직 단풍이 아래쪽까지 짙게 물들지 않았지만,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길옆에는 낙엽이 수북하게 쌓였습니다. 두툼한 굴참나무 껍질은 툭툭 터져 갈라졌습니다. 곳곳에 다람쥐의 겨울 양식인 도토리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도토리를 보니 옛 생각이 났습니다. 초등학교 때입니다. 어느 해 밤을 주우러 갔다가 주머니에 도토리만 잔뜩 채워왔지요.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그 도토리를 말리고, 가루를 만들어, 물에 담가 떫은맛을 빼고, 끓이고 식혀서 어렵게 묵을 만드셨습니다. 그때의 도토리묵 무침 맛이 그리워집니다. 도토리묵 무침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미입니다. 묵을 쳐 먹는 맛도 그만입니다. 미지근한 국물에 김치를 잘게 썰어 넣고 먹는 묵밥의 맛은 담백하고 깨끗합니다.

진짜 국산 도토리묵은 이제 귀한 음식이 되었습니다. 국유림관리사업소나 국립공원관리공단 등은 다람쥐 등의 겨울 먹이 확보를 위해 도토리를 줍지 못하게 합니다. 그 결과 도토리가 귀해졌고 묵을 만들 때 손이 참 많이 가기 때문입니다.

도토리처럼 여러 종류의 열매를 하나로 부르는 것도 드뭅니다.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는 비슷해 보이지만 나무도 잎도 열매도 모두 다릅니다. 그런데 진짜 도토리는 길죽한 타원형으로, 정확하게 말하면 졸참나무에 열리는 열매입니다. 이를 굴밤이라고도 하지요. 충청도에선 어른들이 아이들을 놀리려고 "굴밤 줄까" 하고는 "예"라 대답하는 아이들 머리를 쥐어박기도 했습니다.

어릴 적 상수리 팽이는 좋은 놀이 기구였습니다. 반으로 잘라 성냥개비를 끼워 만들었습니다. 아이들 여럿이 모여 앙증맞은 도토리 팽이를 돌려 부딪치고는 누구 것이 오래 도는지 내기를 했습니다. 지면 이긴 상대방에게  자기 도토리 30여 알을 주었습니다. 진 아이들은 성질을 냈고, 집에 가 열심히 팽이를 만들어 설욕을 다짐했지만, 자고 나면 도토리가 말라 터져 낭패를 당했습니다.

청계산은 갈 때마다 많은 변화를 보였습니다. 봄이면 참나무 새순이 돋아 연초록 잎이 화려하며, 여름에는 온 산이 검푸르게 우거집니다. 가을에는 망경대부터 단풍이 내려오고, 겨울에는 혈읍재에서 마왕굴에 이르는 길의 눈이 먼저 녹습니다. 이렇게 회원들은 청계산에서 4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느껴 왔습니다.

그뿐인가요. 망경대 북쪽에는 몇 년 전 태풍 곤파스가 휩쓸고 간 흔적이 어렴풋이 보입니다. 30~40년이 된 나무들이 넘어져 길을 막던 것이 기억에 새롭습니다. 산사태가 났던 곳에는 이제 초목이 대충 우거졌지만, 속살에는 상채기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 의자는 청계산에서 쓰러진 나무로 만든 의자입니다’라 새겨졌던 통나무 의자는 대부분 치워졌습니다. 계단마다 쓰여 있던 얼굴을 알 수 없는 서초구민의 이름도 몰라보게 빛이 바랬거나 아예 지워졌습니다.

헬기장에서 길마재로 내려오는 중간에 세워졌던 공중전화부스도 이제는 없습니다. 유선전화보다 휴대전화 보급률이 더 높아진 결과입니다. ‘전국 방방곡곡 어디에서나 유선전화로 통화를 할 수 있다’고 광고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요. 청계산에서 만날 수 있는 급하게 변해온 세월의 흔적입니다.

등산객이 아끼는 청계산 참나무들에게 비상이 걸렸습니다. 참나무의 시들음병이 극성을 부립니다. 피해도 늘어납니다. 이미 여러 그루를 베어 그루터기만 남았고, 일부는 토막내 비닐로 싸 훈증을 하고 있습니다. 가끔 보이던 무더기가 시간이 지나면서 자꾸 많아집니다.

살아 있는 나무는 아래둥치를 비닐로 꽁꽁 매어 시들음병충이 달려들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방제가 안 된 참나무가 수두룩합니다. 길마재에서 원터골로 내려오는 길의 참나무 둥치 밑에는 톱밥 같은 나무 부스러기가 한 무더기씩 쌓였습니다. 모두 시들음병에 걸린 것들 입니다. 이런 참나무는 곧 말라 죽습니다. 소나무 재선충보다 참나무 시들음병 피해가 더 커질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 병이 전국의 모든 산으로 확산되기 전에 대대적인 방제와 예방이 필요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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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신현덕

서울대학교, 서독 Georg-August-Universitaet,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몽골 국립아카데미에서 수업. 몽골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 방어. 국민일보 국제문제대기자,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경인방송 사장 역임. 현재는 국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독은 독일보다 더 크다, 아내를 빌려 주는 나라, 몽골 풍속기, 몽골, 가장 간편한 글쓰기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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