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건설 수주, 글로벌 경쟁력이 문제다"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해외 건설 '수주절벽'…자신감 상실에 기인

수행 능력 초과한 과잉 수주 탓 적자 쌓여

엔지니어링 등 종합적 경쟁력 강화해야



   올해 해외 건설은 ‘수주절벽’ 시기를 맞고 있다. 지난 12일까지 해외 건설 수주실적은 186억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 수주실적(347억달러)보다 54% 줄었다. 일부 대형 건설사는 해외 건설 인력에 대한 구조조정 작업도 추진 중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흔히 지적하듯이 저유가 지속으로 인한 중동의 건설 발주액 축소 탓도 크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협력회의(GCC)의 올해 건설 발주액은 작년(1650억달러) 대비 15% 정도(250억달러) 감소해 1400억달러에 그칠 전망이다. 따라서 중동 발주액 감소만으로 우리 해외 수주가 반토막난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국내 주택시장 호황에 힘입어 해외 건설을 다소 등한시한 탓도 있고, 과거의 부실 사업을 정리하는 데 주력하다 보니 신규 사업 수주에 소극적인 탓도 있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해외 건설업체의 글로벌 경쟁력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경영자들이 명확하게 인식하면서 해외 사업에 대한 자신을 잃은 데 있는 것 같다.


2013년에야 실체가 드러난 해외 플랜트업체의 대규모 적자 원인을 보자. 우리 업체 간 과당 경쟁에 따른 저가 수주보다 ‘수행 능력을 초과한 과잉 수주’가 더 큰 문제였다. 중동 플랜트사업에 편향됐던 해외 건설 수주실적은 10년 전인 2006년만 해도 165억달러였다. 2007년에는 398억달러로 폭등했고, 2010년에는 716억달러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4~5년 새 4~5배가량의 폭발적인 수주 증가를 기록한 것이다. 주요 해외 플랜트업체들의 수주 잔액도 30억~40억달러에서 150억달러를 넘어섰다. 현장 수도 3~4개에서 15개 내외로 늘었다. 하지만 해외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전문인력은 4~5년 새 4~5배 늘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다 보니 해외 플랜트사업 인력에 대한 업체 간 스카우트 전쟁이 벌어졌고, 인건비도 크게 올라갔다.


해외 플랜트사업은 대개 엔지니어링(E)-구매(P)-시공(C)을 함께하는 ‘EPC 사업’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엔지니어링 역량이다. 하지만 우리 업체들에 가장 부족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엔지니어링 역량이다. 엔지니어링을 수행할 인력과 역량이 모두 부족한 상태에서 과도한 수주 물량을 떠안다 보니 후속 작업인 구매와 시공이 제대로 될 리 없다. 그 결과 저가 수주 현장만이 아니라 대다수 해외 플랜트 현장이 돌관작업 현장이 되고 적자 현장이 되다시피 했다.


이 같은 해외 건설의 손실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수주 지상주의’ 같은 물량 중심 사고를 탈피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해외 건설 수주 감소는 부정적으로만 볼 일이 아니다. 수익성 중심으로 선별 수주하고, 기존의 부실 사업을 정리해 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로 볼 수도 있다.


수행 능력에 걸맞은 수주를 해야 지속 가능하며, 만약 EPC 사업의 수주를 확대하고자 한다면 사전에 엔지니어링 인력과 역량을 비롯한 수행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도 큰 교훈이다. 엔지니어링 역량이 없다면 구매와 시공의 효율성도 기대하기 어렵다. 엔지니어링 역량의 강화를 위해서는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 업체들처럼 운영 및 유지관리(O&M) 경험이 피드백돼야 한다. 엔지니어링(E)-구매(P)-시공(C)-운영 및 유지관리(O&M) 업무 간 유기적인 연계를 위해서는 한국 특유의 칸막이식 업역규제 해소가 필요하다. 




올해 해외 건설 수주실적이 급감한 이유는 정부 지원이나 금융 지원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예컨대 정부 정책에 따라 작년에 조성한 20억달러 규모의 ‘한국 해외인프라펀드(KOIF)’는 지난 1년간 실적이 단 한 건도 없다. 결국 지원 부족보다 경쟁력 부족이 해외 수주 급감을 초래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또다시 해외 건설 활성화를 추진하고자 한다면 단편적인 지원대책의 나열보다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정책이 필요하다.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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