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에리를 위한 변명 [방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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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에리를 위한 변명

2016.10.11


지난 9월 한 달 동안 여러 곳에서 한국화가 고 황창배(黃昌培, 1947~2001) 회고전이 열렸습니다. 동덕여대 박물관, 이화아트갤러리와 이화아트센터 등지에서 열린 회고전 주제는 ‘무법(無法)의 법을 그리다’였습니다. 9월 6일이 그의 15주기였습니다.
“파격과 일탈로 한국화의 새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처럼 생전의 황창배는 ‘한국화의 테러리스트’, ‘탈(脫) 장르의 리더’, ‘무법(無法)의 자유주의자’로 불렸다 합니다. 그의 그림을 들여다보면 문외한의 눈에도 ‘좀 기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창시절부터 그와 가까이 지냈던 동창들 사이에는 새삼 너무 일찍 떠난 그를 애도하고 추모하는 글들이 한동안 오갔습니다. 1978년 서른하나의 이른 나이에 국전 대통령상을 받은 그에게는 혁신적인 신예 작가라는 찬사가 쏟아졌답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비방과 시샘도 없지 않았던가 봅니다. 어쨌든 한국화 비구상이라는 당시로서는 너무도 생소한 화풍이 뜻하지 않게 많은 비판과 적을 만들었습니다. 그 자신을 외롭고 고달픈 길로 내몰게 된 것입니다. 친구들은 그가 교수직을 버리고 음성 시골에 파묻힌 것, 그림에만 매달리다 췌장암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 것도 화단에서 얻은 스트레스 때문이라 여겼습니다.

“선구자는 언제나 외롭고 고달프게 마련이야. 사람들은 변화를 싫어하니까.” “타인의 무지와 질투, 미움이 간접살인이 될 수도 있지.” 그런 말끝에 “모차르트도 살리에리의 질투 때문에 요절했다.”는 소리까지 나왔습니다. 별 소양이 없는 그림 이야기에 입도 뻥긋 못하다가 ‘살리에리 증후군’이란 말에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오래전 읽었던 푸시킨의 희곡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살리에리 배역의 배우가 열연하던 영화 장면도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살리에리 얘기는 글로 한번 써 보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살리에리 증후군(Salieri syndrome)은 주변의 뛰어난 인물 때문에 느끼는 열등감, 시기, 질투심 등의 증상을 말합니다. 살리에리((Antonio Salieri, 1750~1825)가 평생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다가 끝내 질투심을 이기지 못해 독살하고 만다는 줄거리의 영화 <아마데우스> 이후에 생겨난 용어랍니다.

문제적 인물 살리에리가 세상을 뜬 6년 후인 1831년 러시아의 천재적 이야기꾼 푸시킨(Aleksandr Seraggvitch Pushkin, 1799~1837)이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라는 흥미로운 희곡을 발표합니다. 여섯 살 연상의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천재에 대한 질투심을 못 이겨 독살한다는 내용, 바로 ‘살리에리 증후군’의 원전입니다.

살리에리: 모든 사람들은 말하지. 지상에 정의는 없다고. 그러나 정의는 천국에도 없어. 내게는 이 사실이 기본음처럼 너무나도 명백해.
--- <중략> ---
자존심 강한 살리에리가 언젠가 경멸받을 만한 질투자였고, 사람들에게 밟혀 꿈틀거리며 모래와 먼지를 무력하게 갉는 뱀이었던 적이 있다고 그 누가 말하랴? 아무도 못한다! …
그런데 지금 스스로 말한다. 내가 질투자라고. 나는 질투하고 있다. 몹시도 고통스럽게 질투한다. …
오, 하늘이여! 신성한 재능이, 불멸의 천재가 불타는 사랑과 자기희생과 노동과 성실과 기도의 대가로 주어지지 않고 어리석은 바보, 허랑방탕한 자의 머리를 비춘다면 어디에 정의가 있나요? …
오, 모차르트, 모차르트!

푸시킨이 쓴 살리에리의 독백입니다. 이어서 독을 넣어 마시게 하는 장면까지 그려냅니다. 독살에 대한 살리에리의 심경까지도.

살리에리: (모차르트의 잔에다 독을 넣는다.) 자, 마시게.
모차르트: 자네의 건강을 위해, 친구. 화음(和音)의 두 아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를 결합하는 진정한 유대를 위해. (마신다.)
살리에리: 이 눈물, 나 처음으로 흘리네. 가슴 아프기도 하고 기분 좋기도 하네. 마치 내가 어려운 의무를 이행한 것처럼. 마치 수술 칼로 아픈 데를 잘라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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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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