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아이들도 제대로 안 키우면서 [정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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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아이들도 제대로 안 키우면서

2016.10.07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지 오래됐어요. 2750년쯤에는 인구가 한 명도 없어 대한민국의 대가 끊기게 된다는 외국 사람들의 걱정까지 듣게 됐네요. 태어날 예정인 아이들이 삼신할머니 앞에서 ‘죽어도 대한민국에서는 태어나지 않겠다’고 결의했거나 황새들에게 ‘우리를 죽어도 대한민국에는 데려다 놓지 말라’고 사정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동살해, 아동학대가 너무나 자주 벌어지고 있어서 생긴 생각-망상이에요.

한번 꼽아보겠어요. 바로 엊그제엔 경기 포천의 부부가 입양한 지 3년 된 여섯 살짜리 딸을 살해한 후 시신을 불태우곤 허위 실종 신고까지 했다가 경찰에 붙잡혔지요. 8월 말 대구에서는 세 살 된 입양 딸을 막대기로 때리고 방치해 뇌사상태에 빠뜨린 양부모가 입건됐고요. 지난해 말에는 경기 부천에서 초등생 사체훼손 사건이란 게 있었습니다. 원영이 사건은 계모의 상습학대로 사망한 일곱 살 아이가 야산에 암매장된 사건이고, 2014년 10월에는 양모가 25개월 난 입양 딸을 쇠파이프로 때려 사망시켰지요. 

그들이 아이들을 죽이고 시신을 버리거나 감춘 방법은 듣기조차 괴롭습니다. 아나운서나 뉴스해설자들이 그걸 전할 땐 끔찍하고 치가 떨리고요. 아이들을 살해하고 변명하는 모습은 또 얼마나 가증스러웠나요. 내일에는 또 어디서 몇 살 아이가 또 살해됐다는 끔찍한 뉴스가 전해져 치를 떨게 할지 ….

친부모도 제 아이를 죽여요.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억지로 데려가는 경우가 많아요. 지난달 대전에서는 채무에 시달린 40대 부부가 두 아이와 함께 동반자살, 충북 음성에서는 30대 주부가 부부싸움 끝에 6개월 된 아이를 죽이고 자살했어요. 그 무렵 대구 부근 하천에서는 올해 열 살 남자 아이가 시신으로 발견됐지요. 그 아이 엄마도 며칠 전 부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정황상 어머니가 아들을 안고 물에 뛰어든 게 거의 확실하다고 하지요. 이 아이의 누나도 집 벽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요.

이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나요. 죄가 있다면 어리석고 삶에 모질지 못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죄밖에 더 있겠어요?

부모 때문에만 아이들이 죽지 않아요. 아이들은 잘 돌봐달라고 맡겨놓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도 밥 잘못 먹어 죽고, 자다가 베개나 이불에 눌려 숨이 막혀 죽으며, 모자란 선생에게 폭행당하고, 통학버스에 치여 죽고 있습니다. 더운 날 찜통 같은 버스 안에 남겨졌던 아이는 얼마나 괴로웠을까. 아이들은 동네에서 놀다가 정신 나간 사람들에 의해 죽고 정신 나간 사람이 풀어놓은 흉견에 물려 죽기도 해요. 놀이공원 놀이기구가 고장 나 공중에서 떨어져 죽고, 수영장에서, 공원에서, 강가에서, 차에 치여, 물에 빠져 죽고, 가습기 살균제 사건처럼 어른들의 탐심과 금전만능주의 때문에도 죽어요. 부지기수예요.

살해는 면했지만 굶주리고 성폭행 당하고 방치되고, 매 맞고, 내던져지고, 바늘이나 주사기에 찔리고, 왜 맞는지 왜 당하는지도 모르면서 당하는…, 그래서 마음과 몸이 상할 대로 상하고 망가질 대로 망가진 아이들은 또 몇 명이겠어요.

아동학대 사례에 빠진 게 있습니다. 초등학교 아이들을 이 학원 저 학원 뺑뺑이 돌리고, 수학 해라, 영어 해라, 피아노 치고 그림 그려라, 태권도도 하고 검도도 배워라, 논술도 중요하고 선행학습도 중요하다며 밤늦도록 잠 안 재우고 주말에도 못 쉬게 하는 것을 포함하면 아동학대 통계는 기하급수로 늘어납니다. 공부지옥, 수험지옥은 중·고등학생이 되면 더 심해지고 대학생이 되면 취업 걱정, 졸업하면 결혼 걱정, 내 집 마련 걱정에 차례차례로 내던져지지요. 태어나서 정말로 자유로운 시간은 얼마나 될까! 우리 아이들은 다 자랄 때까지 학대에서 놓여나지 못합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이런 세상에 굳이 왜 태어나려 하겠으며, 어쩌다 태어난들 똑같은 학대를 겪을 게 뻔한 세상에 2세들을 왜 남기려 하겠어요. 그러니 출산율이 떨어지고, 동네와 마을에서 아이들 웃음소리와 뛰어노는 소리-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라는 그 소리가 사라진 거 아니겠어요.

‘동물은 생존의 위협을 받는 환경에서는 스스로 번식을 억제한다’고 합니다. 사회학자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가 이에 빗대 “(생존을) 위협받는 환경을 감지하고 출산을 하지 않는 통찰력 있는 청년들에게 푼돈을 주면서 아이를 낳으라고 한들 아이를 낳겠는가?”라며 “태어난 아이들부터 잘 키우자”고 호소한 글을 읽었어요. 공감하고 공감합니다. 태어난 아이들부터 잘 키우자고요.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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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숭호

1978년 한국일보 입사, 사회부 경제부 기자와 여러 부서의 부장, 부국장을 지냈다.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뉴시스 논설고문, 신문윤리위원회 전문위원 등 역임. 매주 목요일 이투데이에 '금주의 키워드' 집필 중. 저서: '목사가 미웠다'(2003년), '트루먼, 진실한 대통령 진정한 리더십'(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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