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시계 변천사에 대한 단상(斷想) [허찬국]


www.freecolumn.co.kr

동서양 시계 변천사에 대한 단상(斷想)

2016.09.30


시계는 중요한 문명의 이기입니다. 우리말로 시계라 통칭하지만 영어(서양 언어)로는 다양한 이름이 있습니다. 해시계 (sun dial), 물시계 (water clock, clepsydra), 벽이나 탑에 설치하는 벽시계 (clock), 모래시계 (hourglass), 회중시계, 손목시계 (pocket watch, wrist watch) 등이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사용되면서 쓰였던 시계 종류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 것인데 이것만 보면 시계가 서양의 전유물인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다릅니다.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은 동서고금을 통해 사회·경제·종교적 활동이 복잡해지면서 더 중요해졌습니다. 7세기 이슬람교 시작과 함께 매일 다섯 번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것이 의례가 되며 이슬람 문화권에서 천문학과 시계가 더 발달하게 됩니다. 해시계 외에는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는 장치와 시각을 알려주는 부품들이 계속 작동해야 하기 때문에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배터리로 대체되기 이전 시계는 물, 추의 움직임, 태엽(스프링)이 그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물의 흐름을 활용한 물시계도 해시계 못지않게 오래전부터 쓰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물시계의 걸작품은 송나라의 과학자 소송(蘇頌)에 의해서 11세기 말에 만들어진 수운의상대(水運儀象台)였다고 합니다. 황제의 지시로 당시까지의 지식과 기술을 집대성해서 매우 정교하고 거대한 물시계 탑을 수도 카이펑(開封)에 설치했는데, 여진족이 침입하였을 때 이 장치를 해체해 가져갔으나 너무 복잡해 다시 설치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15세기 조선 세종 때 장영실이 제작한 자격루(自擊漏)가 물시계의 일종입니다.  

 유럽에서는 물시계가 용수철과 추의 움직임을 이용하는 시계에 밀려 도태되었습니다. 그림 1에서 볼 수 있는 것이 17세기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워덤 칼리지(Wadham College)에 설치되어 실제로 사용되었던 벽시계 장치입니다. 이 장치는 특히 그림 2와 3에서 보는 정교한 중국의 향료, 불시계(incense, fire clock)에 비교하면 고철 덩어리로 보입니다. 이들은 19세기 중국에서 사용되었던 것인데 향료와 향대와 같은 연료를 태워서 시간의 흐름을 측정하는 장치입니다. 

향료시계(그림 2)의 경우 정해진 시간 동안 탈 만큼의 여러 종류의 마른 향료를 한옥 창틀문양의 흠에 넣어 불을 붙이면 타는 향의 냄새로 시간을 알려주는 장치입니다. 매우 낭만적입니다. 한문(漢文)에 능하고 문학적 재능이 많은 분들에게는 한시 몇 소절이 저절로 떠오를 듯합니다. “밤이 깊어 쑥 향시(香時)가 되었건만 나라 걱정에 잠 못 이루고 .....” 등과 같이 말입니다. 

두 번째(그림 3)는 배(龍船) 가운데 가로 칸막이 중앙 상단에 홈이 파여 있습니다. 거기에 향대를 길게 놓을 수 있죠. 그 위로 가로 칸막이에 맞추어 양쪽에 쇠 구슬을 매단 실을 늘여 놓은 후 배의 길이 방향으로 파진 흠에 놓은 향대에 불을 붙이면 타들어가면서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된 실을 태워 양쪽에 매달린 쇠구슬을 떨어뜨리고 그때 나는 소리로 시간을 알리는 장치입니다.   

운치가 있으나 이 장치들은 쓰임에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사용자가 감기로 냄새를 못 맡을 수도 있고, 연료를 태우니 습도, 바람의 영향을 받아 정확성을 담보하기 어렵습니다. 전담 인력이 필요할 것이니 보급용 모형은 아니겠죠. 같은 시기에 유럽에서는 그림 1의 투박한 장치의 후손인 태엽방식의 회중시계가 대량 생산되어 널리 쓰이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두 눈은 왜 얼굴의 맨 위쪽에 위치하고 있을까. 눈과 귀와 콧구멍은 두 개씩인데 유독 입만은 한 개 뿐일까. 입은 닫을 수 있고 눈은 감을 수가 있는데 귀는 항상 열려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혀는 어째서 이와 입술의 이중 장벽 속에 갇혀 있을까.

조물주가 창조한 생명의 신비, 인체의 비밀은 너무나 오묘합니다. 인간의 지혜로 그 메커니즘을 모두 풀기란 불가능한지도 모릅니다. 다만 사람의 상상력은 과학기술보다 먼저 그 신비와 비밀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그것이 허구든 경구(警句)든 e-mail에 나도는 「이목구비의 신비한 배치」에는 놀라움과 감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오관(五官)은 오감(五感)을 일으키는 다섯 가지 감각 기관, 즉 눈(시각)ㆍ귀(청각)ㆍ코(후각)ㆍ혀(미각)ㆍ피부(촉각)를 일컫습니다. 이 중 피부를 제외하곤 모두가 얼굴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얼굴도 피부로 덮여 있으니 실은 오관 전부가 얼굴에 집중되어 있는 셈입니다. 
그 중 눈은 얼굴 맨 위쪽에 있습니다. 모든 일을 근시안으로 보지 말고 멀리 내다보라는 소명이랄까. 눈이 머리 앞쪽에 박힌 것은 매사에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라는 뜻이랍니다. 눈이 보배요, 자기 눈보다 나은 목격자는 없다고 했으니 항상 바로 보아야겠지요.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허찬국

1989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연지준과 국내 민간경제연구소에서 각각 십년 넘게 근무했고, 2010년부터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 개방 경제의 통화, 금융, 거시경제 현상이 주요 연구 대상.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