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균형에 대한 작은 생각 [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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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균형에 대한 작은 생각

2016.09.29


22년 전 이야깁니다. 아나운서가 되고 난 후, 처음으로 외부행사의 사회를 보게 되었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사례비로 백만 원을 받았는데, 그 큰돈을 받고 나서 무척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필자도 사람인지라 돈이 싫지는 않습니다만 ‘한 시간 남짓 사회를 봐주고 한 달 월급에 맞먹는 돈을 받는다는 것이 과연 적당한 것인가?’라는 생각에 왠지 죄를 지은 것 같은 불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불편한 마음은 점점 사라져갔습니다. 방송사에서 근무를 하면서 주변의 연예인들이 출연료를 얼마나 받는지, 그들이 외부행사에서 받는 사례비는 얼마 정도인지를 알게 되면서 백만 원 정도를 받는것은 매우 양심적인 것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자유칼럼에 쓴 글을 가끔씩 다른 매체가 전재하면서 보내온 원고료를 보고 있노라면 세상이 매우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필자가 글 재주가 없는탓도 있겠지만 칼럼 한 편을 쓰기 위해선 이틀 밤을 설치면서 고생하는데 글 값이 고작 십만 원 안팎인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입니다. ‘어디 가서 즐겁게 두어 시간 사회를 봐주면 백만 원을 받는데 노트북 앞에서 며칠을 끙끙거린 대가가 고작 이정도라니… ‘ 물론 금전적인 대가를 바라고 칼럼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에 글을 써서 생계를 꾸려간다고 생각하면 고생에 비해 너무나 끔찍한 금전적 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땅에서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쥐꼬리만한 노동의 대가를 받으며 팍팍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필자 역시 방송사에서 받는 급여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고 공익적 목적의 행사인 경우에만 최소한의 사례를 받고 사회를 봐주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마저도 가능하면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느덧 중견 아나운서가 되었는데 돈에 불려가서 행사의 사회를 보는 것이 제 직업에 대한 자긍심에 흠이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선배들과의 술자리에서 매우 자주 듣던 말 중에 “우리가 돈은 없지만 체면을 지키고 살아야지!” 라는 말이 있습니다. 체면을 구기면서까지 돈을 쫓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점점 돈을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부정한 짓을 해도 돈이 많으면 사람들이 업신여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무려 1,750억 원의 배임과 횡령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롯데 신동빈 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는데 검찰은 6일이나 고심했습니다. 체면을 구기며 돈을 쫓으면 그 돈의 힘으로 체면을 지키며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최근의 뉴스 한 토막을 보면 최근 6년 동안 노역으로 탕감한 벌금이 20조 원이라고 합니다. 하루 노역으로 벌금 1,000만 원을 넘게 탕감받은 이른바 ‘황제 노역’을 한 사람이 무려 266명에 이른다는 겁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 씨도 조세포탈로 선고받은 벌금 38억 6,000만 원을 내지 않아 지난 7월부터 서울 구치소에서 노역 중이라고 합니다. 형법 제 69조2항에 벌금을 내지 않은 사람은 3년 이하 노역장에 유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니 최장 3년만 버티면 38억 6,000만 원을 버는 셈입니다. 이러니 고등학생의 56%가 10억이 생기면 죄짓고 감옥 가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이 사회가 가진 자들을 위한 시스템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신 자유주의 경제가 헤게모니를 쥐게 되면서 세상은 승자독식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삼성전자 부회장의 작년 연봉이 149억 원이었다고 합니다. 하루 일당으로 계산하면 4,000만 원입니다. 이 회사 신입사원 연봉이 4,000만 원인데 CEO는 그 돈을 하루에 버는 겁니다. 10대 재벌 그룹 중 직원들의 연봉이 가장 낮은 롯데그룹의 경우 작년 총수 일가의 연봉은 184억 원이었습니다. 기업뿐만이 아닙니다. 스포츠와 연예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백억 원의 이적료와 수십억 원의 광고 모델료, 회당 1억 원을 호가하는 배우의 드라마 출연료 그리고 그에 못지않은 작가의 원고료까지, 스타가 되고 실력을 인정받으면 말 그대로 돈방석에 앉는 세상이 되어버린 겁니다. .

“열심히 노력해서 그 자리에 올랐는데 그만한 보상은 받아야 되는 것 아냐?”라고 반문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필자의 주장은 ‘좀 정도껏 하자’는 겁니다. 경제가 글로벌화되면서 승자들의 돈벌이는 계속 규모가 커져가는데 중산층은 붕괴되고 있습니다. 내가 열심히 해서 성공했으니 얼마를 받든 무슨 상관이냐고 하겠지만 상대적 박탈감에 삶의 의욕이 꺾여있는 사람들에 대한 작은 배려가 아쉽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받는 돈 값만큼 이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도 하면서 살면 좋겠습니다. 회사는 손해를 보는데 오너는 수십억 원의 보수를 챙기는 경우는 아무리 봐도 코미디입니다. 행사에서 노래 한 곡 부르는 데 수천 만 원의 출연료를 받는 아이돌 가수들의 경우 역시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지자체들은 자기 돈이 아니니 돈이 얼마가 들든 간에 관중을 동원하는 능력이 있는 스타들을 행사에 모시려고 합니다. 결국 출연료는 천정부지로 솟구칩니다. 우리 국민은 지금 오락을 위해 너무 많은 비용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중앙이든 지방이든 정부의 역할은 부의 지나친 편중을 견제하고 소득을 재분배해서 건강한 사회를 유지시키는 것인데, 오히려 그 반대로 일을 하고 있으니 답답합니다. 세금을 탈루해서 수백억 원의 벌금형을 받은 사람을 하루 1,000만 원이 넘는 노역으로 벌금을 탕감해 준다면 소득 재분배는커녕 부정한 짓을 해도 돈만 있으면 대대손손 잘 먹고 잘 사는, 말 그대로 있는 사람만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게 아니겠습니까? 지역마다 넘쳐나는 각종 이벤트성 행사에 세금으로 거둬들인 돈을 흥청망청 쓰고 있는 지자체 역시, 말로는 지역주민을 위한다는 얘기를 하면서 결국은 정치적인 목적에 돈을 쓰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다들 살기 힘들다고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어느 곳에서는 넘쳐나는 돈을 주체 못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눈만 뜨면 수백억 원, 수천억원의 비리 얘기로 뉴스가 도배되고 연예정보 프로그램에는 연예인의 소득 순위가 공개되고 금수저 연예인이 누구인지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속상한 뉴스,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정보를 접하면서 안 그래도 힘겨운 삶이 그들과 비교되며 초라해져 버립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쌀 한 톨도 나오지 않는 것에 너무 많은 비용을 지출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시스템화 되어버린 거악(巨惡)에 대응하지 못하고 너무 무력하게 체념해 버린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상도

SBS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TV 토요일 아침 '모닝와이드'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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