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대초원에 불어닥친 경제 한파 [신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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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대초원에 불어닥친 경제 한파

2016.08.26


몽골인은 그 나라 최대 축제인 나담이 지나고 나서는 하루하루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냅니다. 나담은 3일간 계속 쉬며, 전 국민이 축제에 참여합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졌듯 이 기간 방방곡곡에서 남성 삼종경기라 불리는 말타기, 활쏘기, 씨름 경기가 열립니다.(나담은 ‘나다흐’라는 우리말로 ‘놀다’라는 동사에서 온 명사입니다.)

남성은 직접 참가하고, 여성은 관람하는 것이 전통이었으나 남녀의 기계적 평등을 강조하던 공산시절 이후부터는 여성도 활쏘기 등 경기에 참가하여 전 국민이 축제를 즐깁니다.

이 무렵에는 몽골로 향하는 모든 교통편의 자리 잡기가 어렵고, 예약 없이는 숙박시설의 방을 구하기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려오고, 그들이 지불하는 달러가 엄청납니다. 덩달아 암달러상들도 한몫을 챙깁니다. 몽골에서는 이때부터 두 달가량 물산이 가장 풍요로운 시기가 됩니다. 덕택에 도시에사는 몽골인도 팍팍하던 살림살이가 윤택해집니다.

지방의 유목민 인심도 풍부해, 일면식도 없는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전통 발효음식인 아이락(일본인들이 마유주라고 잘못 번역했지요)을 권합니다. 길가다 들러 가는 과객에게는 젖을 이용해 만들어 말린 베츨락, 아롤이라고 부르는 몽골의 독특한 유제품을 싸주며 여행을 무사하게 마치라고 기원합니다. 칭기즈칸 통치시절에는 지나던 손의 잠자리 요청을 묵살하거나, 먹을 것을 원할 때 나눠주지 않으면 법으로 제재를 가하기도 했습니다.

뭉흐 텡그린(영원한 푸른 하늘)이 펼쳐진 끝없는 초원에서 말을 타고 누비는 젊은이들을 보면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또 인심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여행기간 내내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우리가 보기엔 빈약하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만, 각종 유제품과 기름에 튀긴 몽골 전통음식을 차린 식탁에 둘러앉으면 모두가 부자가 된 것 같습니다. 원나라를 세워 세상을 제패했던 그들의 기상과 밑바닥에 깔린 넉넉한 성품의 편린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나담 축제 이후의 하루는 겨울 일주일에 해당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여름 두어 달 사이에 기나긴 겨우살이를 준비해야만 하기 때문이지요. 어른들은 ‘나담 이후 가을’이라는 말로 젊은이들에게 각종 식량생산을 독려합니다. 가축들을 풀 뜯겨 본격적으로 살찌우고, 새끼를 돌봅니다. 유목민의 가장 소중한 재산인 다섯 가지 가축, 즉 소 말 양 낙타 염소의 젖을 하루도 쉬지 않고, 많을 때는 하루에도 네다섯 번씩 짜서 각종 저장 방법으로 보관합니다.

올해는 그러나 몽골의 경제사정이 몹시 나빠져 넉넉한 인심을 만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국제경제, 특히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을 크게 받는 몽골이 두 나라의 경제 상황 악화에 따라 고전을 하고 있습니다. 몽골 경제를 지탱해주던 금과 구리 그리고 석탄의 가격하락과 수출 길도 막혀 장래는 더욱 암담합니다. 몽골 지하자원의 90% 이상을 수입하던 중국에서 수요가 줄어들자 가격체계도 무너졌습니다.

2011년 몽골은 세계적인 지하자원 가격 인상에 힘입어 지구상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지역이었습니다. 수도 울란바토르 시내에 고급 아파트가 높이 솟았고, 자동차 대수가 크게 늘었습니다. 한국 상품만을 파는 슈퍼마켓이 들어섰고, 고급호텔엔 손님이 넘쳤습니다. 다음해 몽골 경제는 18%의 경이적인 성장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번 달에만 몽골 화폐인 투그릭은 7.8%나 급락했습니다. 또 230억 달러에 달하는 외채의 이자 부담도 만만치 않습니다. 2011년부터 서서히 빠져나가기 시작한 외국인의 몽골 투자액이 85%에 이릅니다. 정부가 외국인 투자법을 개정, 외국인 투자를 제한하면서 외국 기업이 대량으로 철수한 결과입니다.

올해 초 실시된 선거에서 오랫동안 집권한 몽골 민주당 대신 인민혁명당이 집권했지만, 소 잃고 외양간을 고쳐야 하는 몽골 정부와 국민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결국 몽골 정부는 공무원과 군인의 임금을 지급하지 못했습니다. 몽골은 지불유예를 선언하거나, 긴급구조자금을 받아야할 처지가 됐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 대표단이 몽골에 갔으니 결과가 어떻게 될는지 지켜봐야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경험했던 외환부족 상황이기에 몽골 국가나 국민 개개인이 얼마나 어려울지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고통이 몇 년이나 지속될지, 잘 극복하기를 응원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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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신현덕

서울대학교, 서독 Georg-August-Universitaet,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몽골 국립아카데미에서 수업. 몽골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 방어. 국민일보 국제문제대기자,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경인방송 사장 역임. 현재는 국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독은 독일보다 더 크다, 아내를 빌려 주는 나라, 몽골 풍속기, 몽골, 가장 간편한 글쓰기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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