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좋아하지 마세요 [오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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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좋아하지 마세요

2016.08.22


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아들이 손에 한 줌도 넘는 내프킨 뭉텅이를 들고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어 깜짝 놀라 그 내프킨을 어디서 가지고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를 먹은 후 공짜니까 들고 왔는데 자기 친구들도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아들은 그것이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았지만 나는 아들을 나무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내프킨은 맥도널드의 소유재산이지 네 것이 아니다, 네가 맥도널드 매장에서 음식 먹을 때 쓰라고 비치된 것이지 집에까지 들고 가라는 내프킨이 아니지 않으냐, 라는 잔소리를 했었습니다.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했던 때의 얘기입니다. 쇼핑을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려고 둘째 언니 집을 나서는 나에게 언니가 현관 문 앞에서 건넨 말은 충격이었습니다. 언니의 무료 지하철카드를 이용하라는 말이었는데 칠십이 넘은 언니는 무료로 지하철을 탈 수 있는 이용권이 있었던 모양이었습니다. 뭐 하러 돈 내고 지하철을 타느냐, 라고 했지만 내가 심하게 충격을 받은 이유의 첫 번째는 부유하게 살았던 언니의 가세가 기울어 어렵게 산 지 20년이 넘으니 사람이 저렇게도 변할 수 있는가, 자존심마저 팔아버렸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변한 늙은 언니가 너무 처량해 보였고 측은했지만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언니의 모습이 황당했으며 솔직히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누가 들을까봐 수치스럽고 늙어가면서 어렵게 살더라도 저리 변하면 안 될 텐데 하는 생각이 앞섰던 것입니다. 언니와 나는 나이차가 많아 나는 그때 60세가 될 무렵이었지만, 설령 65세가 넘었다고 해도 외국 국적을 가진 내가 언니의 대한민국 지하철 무료이용권을 결코 쓰진 않았을 것입니다.

지난 5월 26일자 칼럼('이래서 관광객이 줄어듭니다')에 대한 한 독자의 댓글을 읽고 심장이 쿵하고 멎는 줄 알았습니다. ‘자유칼럼’을 쓴 지 9년째 되어가는 나에게 이분은 내가 마치 한국의 건강보험료를 지불하지 않고 한국에 와서 남의 건강보험 카드를 이용하여 치료받는 것처럼, 그러기 위하여 모국방문을 하지 않는가, 의심하는 시각으로 글을 썼습니다. '자유칼럼’에 글을 올리는 필자들의 교양수준이나 도덕수준을 어떻게 생각하고 그런 댓글을 올렸는지는 모르지만 내겐 무서운 댓글이었습니다. 어쩌면 해외 동포들 중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모국에서 병원 치료를 받기 위해 불법적인 방법으로 의료혜택을 받은 경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습니다. 타인의 의료카드로 마치 내 이름인 것처럼 의사 앞에서 속임수를 쓰는 행위는 오싹 소름이 돋는 일입니다. 범법이니까요.

나는 병원 진료차 방문할 때마다 한국 종합 병원의 외국인 진료소로 갑니다. 외국인 진료소는 환경이 안락하고 의사 간호사 사무직원 모두 친절하여 분위기가 좋습니다. 외국인의 진료비는 비싸지만 지불하는 만큼 검사와 치료가 빠릅니다. 보험을 이용하는 한국의 환자는 CT촬영이 20만원~30만원이지만 나는 50만원 지불합니다. 의사 면담도 1회 방문에 12만원 지불하며 종합 피검사도 수십 만 원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두 가지 예방주사 접종비가 50만원이었습니다. MRI는 120만원입니다. 약값도 많이 냅니다. 한국 갈 때마다 병원비로 300만원~500만원을 지불하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의 국제 진료소를 찾는 이유는 무료인 캐나다 진료보다 한국의 의료 시스템이 훨씬 훌륭하고 의료인들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캐나다인들이 병원 갈 때마다 항상 지참해야 하는 것이 건강보험카드(OHIP-온태리오 주의 보험카드)입니다. 병원에 진료 신청할 때 반드시 카드에 찍힌 사진과 환자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이 병원의 의무입니다. 그리고 그 카드는 몇 년 단위로 갱신해야 합니다. 그 누구도 남의 의료보험 카드를 도용할 수 없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한국의 보험카드는 사진이 찍혀 있지 않으니 나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타인의 카드를 도용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한국의 접대문화를 바꾸고 공무원, 정관계, 교육계, 언론계, 특히 이런 곳에 근무하는 사람의 배우자가 미신고할 때 처벌을 한다는 조항도 포함된 ‘김영란법’에 대한 헌재의 합헌 결정은 매우 반가웠습니다.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늦은 감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부패지수는 80%로 미국(73%), 일본(64%), 북유럽(14%~30%)보다 매우 나쁜 수치입니다. 돈이면 해결되지 않는 게 없다고 할 정도로 부패가 일상화해 있어 부끄러운 일입니다.

오랜 세월 대한민국에 뿌리 내린 가장 나쁜 병폐는 공짜를 좋아하는 태도입니다. 언젠가부터 불로소득을 기대하고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남의 금품을 쉽게 받으려 하는 마음이, 그래서 나의 부를 쌓고 나와 내 자식만 잘살면 된다, 하는 탐욕과 이기적인 생각, 죄책감에 대한 불감증이 사회에 깊게 뿌리를 내린 것입니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 사업을 벌였다가 망하여 회사를 닫고 이민 온 것은 부정부패 없이 거래할 수 없는 유통업체의 비리 때문이었습니다. 집을 지었을 때도 구청 직원이 돈을 기대했고 유통업체도 금품을 바랐지만 나는 그들과의 협상을 거부한 탓에 재산을 잃은 것에 대한 후회는 지금도 없습니다.

타인의 지하철 이용권으로 지하철 좀 타면 어떤가, 몇 푼 되지도 않는 걸, 지하철공사와 정부가 손해 보면 되지, 하고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타인의 카드로 공짜 지하철을 탄다거나 남의 보험카드로 병원을 가서 치료받는 것 또한 사기 범죄입니다. 한국의 국민이 모두가 그런 것은 결코 아니라고 믿습니다. 내 언니가 공짜로 지하철을 타는 걸 내게 권유한 것도, 아들이 남의 소유재산인 내프킨을 뭉텅이로 집에 가져온 것도 공짜를 좋아하는 정신이고 어떻게 말하면 작은 부정에 대한 불감증입니다. 내가 아이를 그렇게 키우지 않았고 그런 행위를 무척 싫어했는데도 그렇게 한 것은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만 그렇게 작은 것에서부터 부정부패는 싹이 트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심결에 저지른 행동이라 할지라도 이런 것들을 그냥 지나친다면 아이들은 어떻게 성장할까요?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관료가 되고 공무원이 되고 기업의 수장이 된다면?

물론 정직하게 살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거짓말 안 하고 살기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그것이 선의이든 불의이든 말입니다. 그러나 자존심의 근간을 흔드는 공짜와 불법으로 내 이익을 챙기는 행위가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는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내 힘과 정당한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면 욕심 앞에서 냉정해져야 합니다. 국민으로서 기본법부터 준수하는 도덕성은 어려서부터 길들여져야만 하고 그런 시민 정신을 가진 시민이 대다수인 나라가 건강한 국가, 부패지수가 낮은 국가, 존경받는 국가가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금품 수수와 경제 사범에 대한 법의 형량을 싱가포르처럼 매우 높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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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오마리

미국 패션스쿨 졸업, 미국 패션계에 디자이너로 종사.
현재 구름따라 떠돌며 구름사진 찍는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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