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 꽃물 들이던 추억 [신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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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숭아 꽃물 들이던 추억

2016.07.29


올봄 어느 커피 집에서 주는 봉숭아 꽃 씨앗을 얻어 집 화단에 심었습니다. 지난달 말 처음 하얀 꽃이 벌어지더니, 지금은 빨강색 두 포기, 흰색 두 포기 그리고 분홍색, 보라색 꽃이 각각 한 포기씩 활짝 피었습니다. 어릴 적 기억으로 봉숭아 꽃은 빨강과 하얀색이었는데 분홍색과 보라색 꽃도 나름대로 보기 좋습니다.

꽃이 피기 전에 궁금하여 여기저기를 찾아보니, 거름을 적게 주고, 물이 잘 빠지는 곳에 심어야 한답니다. 조금 척박한 곳이 오히려 봉숭아에게는 적합하다는 것이지요. 지난봄에 두엄을 세 포대나 구했고, 두엄을 많이 묻은 곳에서 자란 하얀 꽃은 볼품없고, 표토도 얕고 거름도 별로 없는 곳의 빨강 꽃은 실해, 생육에서 완연하게 차이가 났습니다. 빨강 꽃은 빨갛다 못해 검은 빛깔까지도 보입니다. 봉숭아는 그래서 거름 주는 이가 없어도 시골 담 아래서 잘도 자랐나 봅니다.

제가 어렸을 적 초등학생이던 누나는 뒤꼍 우물가에 있던 봉숭아 꽃을 따서 손톱에 물을 들이곤 했습니다. 누나와 유난히 친했던 저는 봉숭아 꽃물을 들이던 날은 충실한 조력자가 되곤 했습니다. 그 대가로 몇 번인가 새끼손가락에 봉숭아 꽃물을 들여 봤습니다.

이른 저녁을 먹고 해가 지기 전에 할 일이 참 많았습니다. 봉숭아 꽃을 딸 때 누나 곁에서 꽃잎을 두 손에 모아들고 서 있었습니다. 지금 봐도 작은 내 손안에 가득하도록 꽃잎이 모이면 옆에 있던 아주까리 잎도 두어 장 땄습니다.

우물가 평평한 돌 위에 봉숭아 꽃잎을 올려놓고 백반 가루를 뿌려 가면서 짓이깁니다. 백반이 없으면 소금으로 대체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나무토막이나 못 쓰는 젓가락으로 아주 작게 떼어서 손톱에 올려놓습니다. 그 다음 적당하게 미리 잘라둔 아주까리 잎으로 조심스럽게 골무처럼 감싸고, 아프지 않을 정도로 실로 묶었습니다.

잠잘 때는 백반과 소금의 작용으로 손톱이 아리고 간지러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주까리 골무가 손톱에서 벗어났거나, 어디로 없어졌습니다. 고통을 견디고 손톱은 곱게 물들었고, 손가락 끝은 검게 변해 있었습니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면 손가락의 검은색은 닳아 없어지고, 봉숭아 꽃물은 손톱뿌리가 자라서 없어질 때까지 곱게 보였습니다. 손톱뿌리가 자라서 안쪽에는 봉숭아 꽃물이 없어지더라도 늦가을까지 은은하게 아름다웠습니다.

요즘은 어쩐 일인지 이런 과정을 참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봉숭아 꽃물을 들여주는 미용실도 있다고 합니다. 과정은 같고, 사용하는 도구가 조금은 바뀌었답니다. 아주까리 잎 대신 일회용 비닐장갑을, 아린 느낌이 싫은 사람에게는 통증을 없애는 크림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최근 젊은 여성들의 손톱을 보면 참 현란합니다. 매니큐어는 지나간 유행이고, 어떤 이는 손가락마다 색이 다르고, 어떤 이는 손톱에 그려진 무늬가 복잡합니다. 색도 여러 가지고, 추가하는 재료도 각각입니다. 이들을 위해서 ‘네일 아트’라고 하는 손톱 돌보는 집이 성업 중입니다. 이름도, 기술도, 비용도 다양합니다. 용어가 조금은 생소하고, 어떤 것은 아예 외국어를 그대로 씁니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쓰는 농담(濃淡)의 차이를 나타내는 그라데이션, 손톱의 가장자리를 아주 얇게 테를 두르듯 칠하는 프렌치, 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도자기를 굽듯 손톱에 색을 입혀서 굽는 젤네일 등입니다. 네일아트는 손톱이 자라거나 긁혀서 보기 싫어지면, 기다리지 않고 즉시 지운답니다.

외모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마음이야 동서고금에서 변함없겠지만, 봉숭아 꽃물 들이기처럼 기다리고, 아픔을 겪고 얻는 내적 아름다움이 진정한 미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즉흥적으로 손쉽게 얻어진 외모의 미는 싫증나서 곧 지워버리는 네일 아트처럼 될 테니까요.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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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신현덕

서울대학교, 서독 Georg-August-Universitaet,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몽골 국립아카데미에서 수업. 몽골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 방어. 국민일보 국제문제대기자,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경인방송 사장 역임. 현재는 국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독은 독일보다 더 크다, 아내를 빌려 주는 나라, 몽골 풍속기, 몽골, 가장 간편한 글쓰기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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