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수주, 이젠 NO" 달라진 해외건설수주
삼성물산, 카타르 공사 해지에 중재신청 검토
삼성ENG는 美 발주처에 손배소
#최근 한 중동 산유국 정부가 발주한 발전소 프로젝트 참여를 검토했던 국내 건설사 A사는 고민 끝에 결국 입찰을 포기했다.
현대건설이 총사업비 16억달러 규모로 2005년 4월 준공한 이란 사우스파 가스처리시설 전경. 이 같은
알짜 사업을 지향해 선별하는 방식으로 국내 건설사들의 수주 관행이 변하고 있다. [사진 제공 = 현대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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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한 저가 공세로 중동 일대 공사를 휩쓸던 유럽 업체가 눈독을 들였기 때문이다. 무리하게 맞붙으면 수주 가능성도 있지만 제대로 수익을 거두기 어렵다는 판단에 과감히 접었고, 이후 이 유럽 업체가 예상보다 훨씬 더 싸게 수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건설시장에서 '저가 수주'전에 혈안이던 국내 건설사들이 달라졌다. 고유가 시절 화수분처럼 쏟아지던 중동 공사를 따내려고 국내 건설사끼리 출혈경쟁도 불사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이제 수익성이 떨어진다 싶으면 쳐다보지도 않는다. 해외 발주처 '갑질'도 참지 않는다. 독자 생존만 고집하지 않고 국내 건설사는 물론 해외 기업과 뭉치는 연합전선 구축에도 적극적이다.
5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삼성물산이 발주처인 카타르 철도공사(QRC)로부터 카타르 도하 메트로(지하철) 공사계약 해지를 당한 것은 하도급 업체 선정 과정에서 발주처의 무리한 요구를 삼성물산이 거부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더 나아가 삼성물산은 발주처의 '공사 지연 보상금' 요구에 국제상업회의소(ICC) 등을 통한 중재 신청에 나서는 것도 검토 중이다.
삼성물산은 2013년 당시 스페인 건설사인 오브라스콘 후아레테 라인(OHL)·카타르 빌딩컴퍼니(QBC)와 컨소시엄을 꾸려 이 사업을 수주했다. 공사비만 총 7934억원에 달하는 거대 사업으로 현재 공정률은 30%에 이른다.
문제는 진행 과정에서 카타르 철도공사 측 '갑질'이 도를 넘은 것이다. 발주처는 삼성물산에 품질 면에서 떨어지는 특정 하도급 업체와 도급 계약을 강요했고 삼성물산은 '책임시공'을 위해 이를 따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말 잘 듣는 시공사를 원했던 발주처는 이 같은 갈등을 계기로 삼성물산과 대립각을 키워오다 급기야 지난달 초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공사 지연에 따른 배상금 270억원을 요구했다.
계약을 무산시키는 단계까지 간 것은 이례적이지만 이처럼 산유국의 '공사 갑질'은 흔하다는 것이 업계 전언이다. 한 건설사 해외사업 담당자는 "카타르 같은 산유국은 최근 저유가 기조를 극복하느라 공사비를 후려치는 등 무리한 요구도 서슴지 않는다"며 "예전과 달리 이제 한국 건설사들은 아닌 것은 아니라고 과감히 거부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4월 삼성엔지니어링이 사우디아라비아 마덴 롤링밀 알루미늄 플랜트 공사를 발주한 미국 알코아에 2억200만달러짜리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발주처가 공사 감리를 소홀히 하고 부당한 보수공사 요구로 공기가 1년 이상 늦춰진 데 따른 책임을 물은 것이다.
연합 전략도 활발하다. 계약금액이 총 45억4000만달러로 지난해 국내 건설사가 따낸 해외 프로젝트 중 가장 규모가 큰 '알주르 정유공장(AZRP)'이 대표적이다. 쿠웨이트 남부 알주르에 하루 61만5000배럴 규모 저유황 연료유를 생산하는 플랜트 건설사업으로 총 5개 패키지 중 4개를 국내 건설사 5곳이 꾸린 컨소시엄이 따냈다. 2번 패키지는 대우건설 현대중공업 플루어(미국) 컨소시엄이, 5번 패키지는 현대건설 SK건설 사이펨(이탈리아) 컨소시엄이 본계약을 맺었다. 한화건설은 스페인 테크니카스와 중국 시노펙 컨소시엄으로 1번 패키지를 수주했다.
유일하게 수주하지 못한 4번 패키지는 유럽 업체 저가 공세에 국내 건설사들이 사실상 포기했다.
김종국 해외건설협회 중동담당 실장은 "과거에는 국내 건설사끼리 해외에서 맞붙어 입찰가격만 낮춰놓고 결국에는 발주처 지갑만 채웠던 사례가 많았다"며 "컨소시엄을 활용하면 과도한 저가 수주를 피할 수 있고 공사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리스크를 분산하는 만큼 활용도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최근 수주 '파란불'이 켜진 100억달러 규모 이란 바흐만 제노 정유시설 프로젝트도 대우건설과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현지 국영정유회사와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지난 4월 GS건설 대림산업 등 대형 건설사 13곳과 수출입은행 등이 참여한 해외 건설 수주 플랫폼이 출범한 것도 이 같은 국내 업체들의 '하나 된 힘'을 더 키우기 위해서다.
박기풍 해외건설협회 회장은 "해외 신도시 개발 같은 메가 프로젝트는 국내 기업이 모인 '코리아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동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김태성 기자]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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