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반구대 암각화 보존, 10년 만 실패로 돌아가


28억 든 물막이 실험 3년만 실패

생태제방·수위 조절 논쟁 재연될 듯 


     "이번 협약은 문화재청과 울산시가 대의에 입각한 이해와 충정으로 합의한 데 따른 결과입니다. 합의가 충실히 이행돼 반구대 암각화가 세계적인 문화재로 남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 보존을 위한 ‘임시 물막이 댐(일명 카이네틱 댐)’ 설계 공모 당선작. 


반구대암각화 보존을 위해 지난해 착공한 가변형 임시물막이 설치를 위한 통합검증모형 제작·설치 

공사가 실내모형 1차 실험실패로 물막이 실효성 논란 및 예산낭비 우려 등으로 중단 결정이 내려졌다. 

사진은 현재 52%의 공정율을 보이고 있는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991번지 일원 가변형 임시물막이 

설치를 위한 통합검증모형 공사 모습. 유은경기자 usy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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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6월 국무조정실,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재청, 울산시는 업무협약을 맺고 국보 제285호 울산 반구대 암각화의 보존을 위해 '가변형 임시 물막이'(카이네틱 댐)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울산시가 지난 2003년 서울대에 연구용역을 의뢰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반구대 암각화 보존 논의가 10년 만에 일단락되는 순간이었다.


반구대 암각화가 침수되지 않도록 영구적으로 수위를 낮춰야 한다는 문화재청과 식수 확보를 위해 생태제방을 쌓아 물길을 돌리자는 울산시가 한 걸음씩 물러서 임시 물막이라는 절충안에 합의한 것이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 임시 물막이 추가실험 (경기광주=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24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의 한 업체에서 진행된 울산 반구대 암각화 임시 물막이 모형 추가실험에서 관계자들이 압력 

실험을 하고 있다. 이번 실험에서는 개스킷 십자 접합부에서는 누수가 없었으나 주변부가 파손됐다. 

2016.5.24


처음부터 제기된 의문…사실상 실현 불가능했던 계획

가변형 물막이는 건축가 함인선 씨가 제안한 방안으로, 암각화에서 16∼20m 떨어진 지점에 반원형으로 세우는 길이 55m, 너비 16∼18m, 높이 16m의 임시제방이다.


평행선을 달리던 문화재청과 울산시의 타협점으로 나온 임시 물막이는 처음부터 적지 않은 반론에 부딪혔다.


임시 시설물을 설치하면 암각화와 주변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고, 울퉁불퉁한 절벽에 물막이의 양쪽 끝 부분을 완벽하게 밀착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하지만 임시 물막이는 예정대로 추진됐고, 문화재청은 2014년 6월 기술검증평가단을 구성해 사전 검증 작업을 하기로 했다.


평가단은 모형실험, 외부에서의 기술 검증, 미시기후 실험(예측하지 못하는 기후 상황까지 대비한 실험)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이에 따라 우선적으로 모형실험을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임시 물막이의 첫 번째 모형실험은 작년 12월 15일 진행됐다. 하지만 투명 물막이판의 십자 접합부에서 물이 새어 나오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모형을 설계한 포스코A&C 측은 투명 물막이판을 둘러싼 고무 재질의 개스킷이 너무 딱딱해서 누수 현상이 일어났다고 진단하고, 모형을 보완해 4월 25∼26일 2차 모형실험을 진행했다.


그러나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투명판 주위 구조물의 볼트와 바닥 등 다섯 군데 이상에서 물이 흥건하게 고일 정도의 누수 현상이 일어났다. 포스코A&C는 군데군데 실리콘으로 땜질 처방을 했지만, 누수를 막지는 못했다.


포스코A&C는 지난달 26일 문화재청과 울산시에 알리지도 않은 채 모형 구조물을 철거해 논란을 일으켰다. 차일피일 복구를 미루던 포스코A&C 측은 이달 12일에야 모형을 다시 조립했고, 24일 진행된 최종 모형실험에서 또다시 실패했다.


임시 물막이 방안이 사실상 무산되면서 3년을 허송세월하고 실험 비용으로 들어간 세금 28억여원을 날리게 됐다.

묘수로 평가받았던 임시 물막이는 돌이킬 수 없는 악수(惡手)였던 셈이다.


생태제방 vs 수위 조절, 3년전 논쟁 재현되나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천변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는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육지동물과 사냥 모습 등을 묘사한 300여점의 회화가 너비 8m, 높이 5m의 절벽에 새겨져 있다.


암각화는 1971년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가 주민의 제보로 확인한 뒤 학계에 소개하면서 알려졌다. 하지만 그에 앞서 1965년 암각화 하류에 사연댐이 건설돼 1년 중 5∼8개월은 수면 아래에 잠기고, 나머지 기간은 외부에 노출되는 상태가 이어졌다.


그나마 2005년 암각화 상류에 대곡댐이 준공되면서 물에 잠기는 기간이 줄어들었지만, 여름철 집중호우가 발생하면 몇 개월씩 침수되기 일쑤였다.


울산시는 반구대 암각화를 보존하기 위한 방안으로 줄곧 생태제방을 주장했다. 식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깨끗한 상수원인 대곡천의 물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생태제방은 암각화 전방 80m 지점에 길이 440m, 높이 15m, 너비 6m의 둑을 쌓아 대곡천의 물이 암각화 앞으로 지나가지 못하도록 하고 제방 근처에 암각화 관람을 위한 교량을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생태제방과 유사한 임시제방 설치안은 이미 2009년과 2011년 문화재위원회에 상정됐다가 모두 부결된 바 있다.


당시 문화재위원회는 "임시제방을 세우면 반구대 주변의 현상이 변경돼 역사문화 경관 훼손이 심해진다"면서 "우선 수위를 낮추고 후속 조처를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화재청은 울산시의 생태제방 주장에 맞서 '수위 조절' 방법을 고수해 왔다. 일단 사연댐에 수문을 설치해 수위를 낮추고, 부족한 식수는 주변 지역에서 물을 끌어와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하자는 제안이었다.


문화재의 주변 경관을 중시하는 유네스코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반구대 암각화 주변에 생태제방을 쌓으면 세계유산 등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도 고려됐다.


하지만 울산시는 최근 대구·경북권에서 물을 끌어오려는 계획이 실질적 성과를 낳지 못하자 다시 생태제방 카드를 꺼냈다.


50년간 자맥질을 계속해온 반구대 암각화의 훼손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문화재 보존'과 '식수 해결'이라는 문제가 해결할 대안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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