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맥? "책 읽는 문화가 달라진다"

카테고리 없음|2016. 5. 15. 23:26


진화하는 독서문화


#1. “딱 한 잔은 괜찮다니깐.”

지난 13일 오후 8시쯤 직장인 서영미(28·여)씨는 남자친구의 손을 끌고 서울 마포구의 북카페 ‘비플러스’로 들어섰다. 카페 한쪽 구석 작은 테이블 2개를 붙여 앉은 두 사람은 각자 가방에서 책을 한 권씩 꺼냈다. 이어 테이블에 놓인 메뉴판을 살피며 생맥주 2잔과 소시지 샐러드를 시켰다. 서씨는 “지난주 직장 동료를 따라 ‘책맥’(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는 행위)을 처음 해봤는데 잡념이 사라지고 차분해져 좋은 경험이었다”며 “남친이 ‘무슨 술을 마시며 책을 읽느냐’고 어이없어해 직접 데려왔다”고 말했다. 서씨 커플은 시원한 맥주를 홀짝거리며 에세이와 추리소설을 읽다 오후 10시쯤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2. 지난 4일 오후 7시쯤 마포구의 카페 ‘프렌테(FRENTE)’. 대학생과 직장인 등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북콘서트 ‘그리고 영화 속의 벽’이 진행됐다. 잡지 ‘아벡(AVEC)’의 편집인 이원희, 정은희씨가 다양한 예술가의 면모를 담은 책 ‘그리고 벽’ 출간을 기념해 가진 행사였다. 불편할 수 있는 철제의자에 앉은 독자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2시간여 이어진 강의에 귀를 기울였다. 프렌테 관계자는 “평소 강연자에 관심을 갖고 있던 분들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소개된 내용에 흥미를 느낀 20, 30대가 프로그램 참여에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독서 인구가 감소한다는 뉴스가 지루하게 느껴질 만큼 문화활동으로서의 독서는 영향력을 잃은 지 오래다. 



그러나 최근 젊은층을 중심으로 책맥, 북콘서트, ‘올빼미 독서’(밤새 책을 읽는 행위), ‘독립출판’(직접 만든 출판물을 동네 서점을 통해 공급하는 형식) 등 다양한 방식으로 책을 가까이 하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책 읽는 즐거움’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새로운 독서문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서울 강남구의 북카페 ‘북티크’에서 매주 금요일 밤 운영되는 ‘심야서점’ 모습.

북티크 제공


‘책맥’부터 ‘올빼미 독서’까지

“여기부터 칠하면 되겠네요.”


지난 4일 낮 12시30분쯤 서울 논현동의 북카페 ‘북티크’. 30대 직장인 여성 5명이 테이블에 머리를 맞댄 채 손을 바삐 움직였다. 색연필을 쥔 이들 앞에는 최근 인기인 ‘컬러링북’(색칠을 위해 밑그림이 그려진 책)이었다.


직장인 최연서씨는 “동료와 머리를 식히려고 자주 찾는다”며 “혼자 올 때는 눈에 띄는 책을 골라 읽다 간다”고 말했다. 이날 점심시간 동안에는 인근 직장인 20여명이 카페를 찾아 식사와 휴식을 즐겼다. 대부분 가져온 책이나 잡지를 보며 대화를 나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일반 카페처럼 편하게 쉬는 모습이었다.


주류를 취급하는 북카페도 서울시내 곳곳에서 문을 열고 있다. 2013년부터 생맥주를 판매 중인 상암동의 북카페 ‘북바이북’ 관계자는 “책맥이 퍼진 것은 지난해 말부터”라며 “주고객은 인근 직장인으로 하루 평균 50명 정도가 책을 보며 맥주를 마신다”고 말했다. 2호선 이대역 인근에서 영업 중인 책방 ‘퇴근길 책한잔’은 상호부터 책과 술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이곳 박종현 대표는 “술 한 잔 하고 싶은데 2차, 3차로 이어지는 게 싫고, 그렇다고 혼자 집에 가기는 아쉬울 때 책도 보고 와인도 한 잔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정한 상호”라고 소개했다.


북카페 ‘북티크’는 올빼미 독서족을 위해 매주 금요일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운영하는 ‘심야서점’을 운영한다. 북티크 박종원 대표는 “통상 10명에서 많게는 20명까지 심야서점을 찾는다”고 전했다.


 


책 안 읽는다? 오히려 다양해졌다!

독서 인구는 날이 갈수록 줄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인의 생활시간 변화상(1999∼2014년)’에 따르면 2014년 10세 이상 국민 중 평일을 기준으로 ‘하루 10분 이상 책을 읽는 사람’은 9.7%에 그쳤다. 1999년 12.8%, 2004년 12.7%, 2009년 11.3%로 계속 감소세다.


하지만 출판 관계자들은 기존 독서 관련 조사가 종이책 독서 기준으로 단순 시간을 따지는 식이어서 독서문화에 대한 온전한 분석이 될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책맥, 올빼미 독서 등 다양한 책 소비 문화의 출현은 새로운 독서 욕구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김성신 출판 평론가는 “현대인은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예전보다 훨씬 많은 양의 텍스트를 접하고 있다”며 “이런 의미에서 독서율은 떨어졌다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독서문화의 분화는 읽기의 욕구가 여전하다는 단적인 증거”라고 진단했다.


2014년 말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대형서점에 맞서 생겨나기 시작한 ‘동네 책방’도 독서문화 다변화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정가제로 가격 경쟁의 부담이 줄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고객을 발굴하려는 동네 책방의 노력이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문을 연 북카페 북티크의 경우 실제 책 판매는 전체 매출의 20∼30% 수준이다. 이외 매출은 음료·문구류 판매, 강연·독서모임 운영 등을 통해 벌어들이고 있다. 한 대형 출판사에서 7년간 마케팅을 담당했던 박 대표는 “단순히 책을 파는 게 아니라 책과 만나는 접점이 될 수 있는 문화 콘텐츠를 개발해 독자 발굴에 나서는 것이 북티크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김승환 기자hwan@segye.com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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