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마을 폐교의 야외 음악회 [허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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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마을 폐교의 야외 음악회

2015.05.19

섬진강이 흘러가는 전남 곡성군 시골 마을의 폐교에서 야외 음악회가 열렸습니다. 잔디 사이로 잡풀이 제멋대로 자란 운동장에 임시 무대를 설치하고 진행된 초여름 밤의 음악회입니다. 저 멀리 지리산과 가까이 천마산을 비롯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신록의 주변 경관이 무대를 더욱 돋보이게 장식해 주고 있었습니다. 지난 주말 자유칼럼 필진들이 모처럼 야유회에 나섰다가 덤으로 즐긴 뜻밖의 작은 행운이었습니다.

무대에 적힌 주제부터가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5월, 선율에 취하다’-. 그렇지 않아도 자연에 취하고, 꽃향기에 취하고, 섬진강 맑은 물소리에 넋을 놓을 만한 계절입니다. 서로 어깨동무하듯 어우러진 운동장의 잡풀조차도 저마다 계절의 싱그러운 냄새를 풍겨주고 있었습니다. 그 위에 나란히 의자가 놓여 객석이 마련됐지요. 자연의 들판에 악기 연주와 노래소리가 화음을 이루면서 계절의 축복을 전하고 있었다고나 할까요. 

“밤에 들려오는 자장노래 어떤가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 울려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드디어 저녁 7시, 경쾌한 선율이 울려퍼지기 시작할 즈음에는 저녁 해가 어느덧 기울어가며 마지막 햇살을 뿌리고 있었습니다. 아직 옛 모습 그대로인 교사와 느티나무들은 그 빛을 받아 한층 선명한 윤곽으로 빛나고 있었지요. 어린 학생들이 천진난만하게 뛰놀던 지난 시절의 기억을 넌지시 말해주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1998년까지 학생들의 배움터였던 이곳 동초등학교의 왁자지껄하던 풍경 말입니다.

“아이들이 떠난 자리에 다시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취지의 하나로 마련한 음악회입니다. 도시와 농촌의 마중물 공간으로서, 지역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음악회를 주선한 농업법인 (주)미실란의 이동현 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갈수록 어려워지는 농촌 현실에 대한 안타까운 생각을 나타냈습니다. 서울농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일본 규슈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가 문을 닫은 학교 교사에 들어와 발아현미 제품 개발에 매달린 것도 곡성군을 잘 사는 농촌으로 만들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야외 음악회도 이번이 벌써 12회째라고 합니다. 지난 2006년 비어 있던 이 학교에 입주한 뒤로 계속 음악회를 열어 왔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가 음악회보다는 유기농업을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몫이 더 큰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꼭 그 한 사람의 노력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섬진강이 갈수록 정화되면서 강바닥을 기어다니는 다슬기와 참게가 더욱 많아졌고 은어와 쏘가리의 헤엄쳐 다니는 모습도 더 자주 볼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덕분에 이곳의 경제도 약간씩 활성화되는 분위기입니다.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레일바이크가 돌아가고 장미꽃 축제도 한창입니다. 과거 나무를 잘라 운반하던 임간철도도 미니 기차로 새로 탄생했으며, 섬진강천문대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인접한 순천과 여수, 그리고 광양 지역과 더불어 새로운 '힐링 관광' 수요를 만들어내는 중입니다. 무엇보다 청정한 수풀과 강물, 공기가 그 재산입니다. 이런 환경이 아니라면 미실란 음악회도 의미가 없었을 테지요.

어둠이 깊어가면서 음악회 분위기는 더욱 무르익어 갑니다. 이 지역의 주민 가수인 MC용&뚝딱의 코믹한 노래에 이어 서울에서 내려온 팝페라 가수 주은 씨가 모차르트 ‘마술피리’ 중의 아리아인 ‘밤의 여왕’을 불렀으며, 광주에서 활동 중인 가수 김상수 씨가 통기타 연주를 곁들인 노래로 관중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즉흥적으로 나선 어느 관객이 베사메무초를 멋들어지게 불러주기도 했습니다. 

이 대표의 부인이자 미실란의 안주인인 남근숙 씨도 기타를 둘러메고 직접 무대에 올랐습니다. 아직도 대학 시절의 미련이 남아 있는 모양입니다. 그는 마이크를 들고 객석을 돌면서 이날의 손님들을 두루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관객들은 대략 200여명. 이곳 군수를 지내며 고흥 출신인 이동현 대표를 붙들어 앉힌 고현석 씨도 부인과 함께 관람석에 앉아 박수를 치며 음악회를 즐기는 모습이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김화중 씨가 그의 부인이지요.

폐교된 학교에 대해서도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니, 설명보다도 운동장 한켠에 세워진 ‘연혁비’를 들여다보면 내용이 그대로 적혀 있습니다. 일찍이 일제시절인 1939년 개교한 이래 1970년에는 600명으로 12학급까지 이뤘으나 그 뒤로 학생이 계속 줄어들면서 끝내 문을 닫게 된 것입니다. 1998년 폐교 당시 전교생이 고작 58명이었다니까요. 이 대표가 마을에 정착하던 2006년 당시 3만6,700명을 헤아리던 곡성군 인구가 지금은 3만명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하지요.

이농 현상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추세에 따라 요즘 초·중·고교의 폐교 사태는 시골에서는 흔히 목격하게 되는 일입니다. 지난 5년 동안만 해도 통폐합 조치에 따라 사라진 초·중·고교가 전국적으로 모두 246개교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곡성군을 포함한 전남 지역에서 가장 많은 68개교가 폐교됐다고 하니까요. 물론 동초등학교는 이들 학교보다 훨씬 이전에 문을 닫은 경우에 속합니다. 근처의 중앙초등학교로 통합됐습니다. 

주변이 완전히 어둠에 잠기고 바이올린을 포함한 현악기 앙상블 팀이 무대에 오르면서 음악회 분위기는 더욱 절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곳이 지난날 학교 교정이었음을 말해주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동상도 어둠에 묻혀 버렸습니다. 섬진강 물소리를 따라 선율이 번져가는 밤하늘에 크고작은 별들만이 총총 빛나고 있었습니다. 아카시아 향기가 상큼한 초여름 밤의 축제였습니다. 

필자소개

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실장. 한경대학교 지식재산연구원 겸임교수. 전경련 근무.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 역임.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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