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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음악
2015.04.23
한 주일 전 목요일, 16일은 우리 모두를 다시 한 번 슬픔에 잠기게 한 날이었습니다. 기억하고도 싶지 않은, 그러나 영원히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을 세월호 참사 1주년이었습니다. 전란(戰亂)은 말할 것도 없지만 때로는 천재지변으로, 때로는 부주의로 우리는 크고 작은 비극을 수없이 겪으며 살아왔습니다. 항공기 피격과 추락으로, 백화점과 다리의 붕괴로 많은 인명 피해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특별히 4월의 이날을 온 국민이 더 슬퍼하는 까닭은 아직 꽃도 피워 보지 못한 싹들이 어른들의 탐욕과 불법, 비겁함과 무책임으로 무참히 죽음을 맞았기 때문일 것입니다.평소 즐겨 듣던 FM 라디오 방송은 종일 무겁게 가라앉은 곡으로 이날의 슬픔을 위로하고 있었습니다. 페르골레시의 ‘슬픔의 성모’, 오펜바흐의 ‘자클린의 눈물’,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차이콥스키의 ‘비창 교향곡’, 모차르트의 ‘레퀴엠’, 김연준의 ‘비가’… 저녁 무렵 교향악 축제 현장 중계의 첫 곡 역시 사무엘 베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였습니다. 월남전의 참혹한 현장을 생생히 떠올리게 하는 영화 배경 음악이었지요.온종일 그렇게 슬프고 무거운 곡들을 듣다 보니 저 자신 바다 깊숙이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만사가 슬프고 우울하게만 생각되는 하루였습니다. 이제 그만 슬픔을 떨치고 다시 일으켜 세울 음악도 들려줄 만한데.음악은 참 신통한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듣는 이들을 슬픔에 빠지게도 기쁨에 휩싸이게도 합니다. 슬플 때 슬픈 곡조로 위로할 수도 있지만 격정적인 곡조로 고무 격려할 수도 있는 게 음악입니다. 지역적, 인종적, 종교적 이유로 갈라지고 갈등하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줄 수도 있는 것이 음악입니다.이태석 신부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남수단 톤즈 어린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치고 브라스밴드를 만들어준 이유가 그런 것일 겁니다. 세계적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이 유대와 아랍의 젊은이들을 모아 평화의 오케스트라를 만든 이유도 그럴 것입니다. 알 수 없는 분노로, 또는 심리적 불안으로 제가 낳은 새끼를 뿌리치는 낙타를 마두금으로 달래던 몽골 유목민들이 생각납니다. 마두금의 애잔한 가락에 마음이 움직여 어미 낙타가 마침내 두 줄기 굵은 눈물을 흘리며 새끼 낙타에게 젖을 물리던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 눈에 선합니다.그러나 전혀 다른 감성으로 같은 음악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없지 않은 듯합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넋과 유족들의 아픔을 위로하기 위해 헌정된 노래가 뜻밖에 그들에게 모멸감을 주는 노래라고 비난받기도 하니 말입니다.팝페라 가수 임형주가 부른 ‘천 개의 바람이 되어’가 그랬습니다. 이 노래의 원천이 된 시 ‘A Thousand Winds'는 북미 인디언 전래의 시라는 게 정설로 보입니다. 지난 2002년 미국 9·11테러 희생자 1주기에 추모시로 낭송되어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거기에 일본인 작곡가가 곡을 붙였고 임형주가 다시 우리말 가사를 붙여 부른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추모 행사와 방송에서 널리 연주되었습니다. 임형주도 아예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곡으로 헌정하고, 음원 수입을 희생자들을 위한 성금으로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해 부족 탓인지, 이 노래가 희생자들을 모욕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없지 않았습니다.먼저 세상을 떠난 불알친구의 장례식에서 조사를 읽다가 푼수처럼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린 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순수한 우정에 오히려 감복하게 됩니다. 그 같은 위로의 뜻도 저렇게 곡해될 수 있다면 참 애석한 일입니다. 임형주는 약속대로 지난 15일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천 개의 바람이 되어'의 음원 수익금 5,700여만 원을 기탁했습니다. 이런 선행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질는지. 꾸밈없는 선의로 이해되면 좋으련만.똑같이 세월호 추모의 뜻으로 널리 불린 노래가 있습니다. 김효근 작곡의 ‘내 영혼 바람이 되어’입니다. 똑같이 ‘A Thousand Winds'를 우리말로 번역해 달리 곡을 붙인 것입니다. 지난해 5월 147명의 성악가들이 모여서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며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정말 바람이 된 영혼들이, 천상에 오른 별들이 오히려 지상에 남은 자들을 위로하는 듯 슬프면서도 아름답고 안온하게 마음을 달래주는 노래입니다. 음악의 효과를 말하는 이들은 이런 노래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준다고 말합니다. 슈베르트의 가곡 ’음악에(An die Musik)'의 노랫말 그대로. 이런 것이 예술의 힘이라는 그들의 말에 공감하게 됩니다. 어려운 일, 슬픈 일을 당한 이들에게 제가 권하는 음악이 있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의 2악장입니다. 들을 때마다 장애의 고통과 실의를 극복하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간 베토벤의 영웅적 의지가 느껴집니다. 그 강렬하고 장엄한 울림이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힘을 불어넣을 듯 뜨거운 기운을 느끼게 합니다. 앞으로는 우리가 피할 수 없었던 여러 슬픈 날들을 기억하면서 그래도 모두가 실의를 털고 힘차게 내일을 준비할 수 있도록 이런 음악을 더 많이 들려주면 좋겠습니다. 모든 걸 포기한 채 슬픔과 실의와 분노에만 붙잡혀 있지는 않도록. 저 멀리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된 우리 아이들이 바라는 바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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