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의료가 좋을까요 [오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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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의료가 좋을까요

2015.04.21

30여 년 동안 긴 머리를 고수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 목 위까지 싹둑 잘라버리고 말았습니다. 긴 머리를 자른다는 것은 내겐 작지 않은 의미입니다. 그러나 지지난해부터 시작된 두통이 점점 심해져서 매일 두통과의 전쟁이 벌어지기 때문인데 뜨거운 물속에 머리를 담그면 두통이 덜 해지니 긴 머리를 매일매일 관리하기가 어려워져 그리한 것입니다. 

가정의가 두통에 관한 조언을 줄 수 없어 신경내과의를 만나기 위해 무려 2개월을 기다려야 했는데 신경내과의의 처방에 따라 MRI 촬영 예약은 또 다시 2개월 이상이 걸렸습니다. (재작년 까진 MRI 촬영은 6개월, CT 촬영은 2개월 기다려야만 했음) 지난해 산부인과 예약도 4개월을 기다려야 했고 위통이 심해져 소화기내과 의사를 만나기 위해 2개월을 기다린 후 다시 위내시경과 대장 내시경 촬영 예약은 또 2개월 반, 촬영 후 결과 상담을 하기까지 또 3주가 걸렸습니다. 

암에 걸려 수술을 두 번 하고 항암 치료 방사선 치료 후, 지금까지 매해 한 번 혹은 두 번 검사를 하고 있는데 이 촬영을 하기 위해서 예약을 하면 대체적으로 6개월을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에서는 일 년에 한 번 촬영을 허용합니다. 왼쪽 무릎을 수술해야 한다는데 아예 포기했습니다. 훗날 더 아파 완전 걸을 수 없게 됐을 때 하기로 한 이유는 또 몇 개월씩 의사와 외과의 그리고 병원에 긴 시간 오고가고 하는 게 끔찍한 것입니다. 

옆집의 린은 오래전부터 골반에 이상이 와 진찰을 한 후 일상생활이 어려워졌습니다. 걷기가 용이하지 않아 회사를 휴직하고 수술할 날만 기다리는데 진찰 결과 일을 하지 못하고 수술까지 6개월이란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우선 한 쪽만 수술을 했는데 남은 한 쪽 골반은 다시 6개월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또 이웃인 72세의 앤은 갑상선에 문제가 와서 수술을 해야 하는데 4개월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몇 해 전 한 지인의 시숙인 한국인 남성에게 생긴 일입니다. 그는 여행비자로 입국하여 영주권자인 동생이 경영하는 작은 인테리어 업체에서 막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일을 하다가 못에 눈이 찔려 응급으로 병원으로 실려 갔지만 안과 수술의를 기다리느라 바로 수술을 할 수 없었고 무려 2일이나 지나서야 수술을 했는데 그는 결국 다친 한쪽 눈의 시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캐나다의 의료는 캐나다 시민과 영주권자인 환자에게 무료입니다. 의사 진찰 상담과 병에 대한 검사 촬영도 모두 무료입니다. 병의 종류에 따라 발생하는 약값과 주사 치료비만 제외하고는 그 어떤 수술도 치료도 의사 면담도 무료입니다. 그러니 의료복지는 겉으로 보기엔 얼마나 좋습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했듯 복지 수준이 선진국이라고 캐나다로의 이민을 꿈꾸는 사람들이 매해 세계에서 와 정착합니다만 현실은 다릅니다. 병원비가 무료이지만 촬영하거나 검사하는 게 수개월씩 걸리며 전문의를 만나기 위해서도 몇 개월씩 걸리는 상황인데 과연 이런 무료 의료복지가 바람직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말에 앓느니 죽는다, 라고 하듯, 앓다가 죽을 것이니 이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는 아닌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캐나다는 가정의도 부족하지만 전문의도 부족한 상황입니다. 의대를 졸업하고 수련을 거친 의사들이 봉급이 많고 세금을 캐나다보다 적게 내는 미국으로 가버리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사는 부족한데 매해 캐나다에 들어오는 이민자 수는 늘어나지만 이민자들이 첫 번째 아프면 면담을 해야 하는 자신의 가정의를 찾기 위해서 몇 년씩 기다려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정의가 없을 때 갑자기 아프면 달려가는 WALK IN CLINIC이 있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의사는 큰 병에 대한 검사나 촬영 등을 처방할 순 없으니 딱한 실정입니다. 이민자는 많아지나 그들이 낸 세금에 비해 정부의 의료비 지출은 높아지니 병원의 의료기기도 낙후된 것들이 많고 병원에 다녀간 환자에게 병원을 도와달라는 헌금에 관한 편지를 보내기도 합니다.

수입과 세금 때문에 의사들은 떠나고 수급 불균형이 생기고 있는 것은 벌써 오래된 사실입니다. 이렇게 환자 적체현상이 생겨 잘못하면 잃지 않을 목숨도 잃게 되는 것이 복지국가라고 자부하는 캐나다의 내부 사정인데 세금을 엄청나게 내면서 이런 의료혜택을 받는 캐나다인들에겐 불공평한 제도란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내가 사는 시니어단지 안의 노인들은 응급으로 병원에 들어가면 거의 살아서 돌아오는 경우를 보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캐나다에서도 사립병원을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자비를 들여서 병에 대한 테스트와 촬영 수술을 빨리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텐데도, 법으로 사립병원 설립이 불가능한 이곳에서는 오직 공립병원과 의사의 스케줄 따라 목숨을 걸어가며 무작정 기다려야 합니다. 숨이 넘어갈듯이 아프면 응급실로 가라는 말만 가정의는 되풀이할 뿐 환자에 대한 연민도 없습니다. 

작년에 응급실에 가보니 그 또한 한심했습니다. 4시간 기다리다가 차라리 죽자, 하고 집으로 돌아온 이유는 도저히 앉아 있을 수 없고 누워야 할 상태인데 누울 침대가 없어 4시간 동안이나 앉아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러니 부유한 사람들이나 꼭 검사를 빨리 하고 싶은 사람은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가서 자비를 내고 진료받습니다. 나도 시카고에 가서 촬영했던 경우가 있으며 한국에 나갈 때마다 종합병원 외국인진료실에 가서 진료를 받고 오곤 했습니다. 

지난번 MRI를 찍으러 병원엘 가보니 병원은 그리 바빠 보이지 않고 조용했으며 한쪽 벽면에 해바라기 그림들이 병원을 밝게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그전에도 가끔 큰 병원엘 갔을 때나 암센터에 갔을 때도 해바라기 그림들을 바라보며 치료를 기다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림과 함께 쓰인 ‘You are not alone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이라는 글에 해바라기 그림에 암 환자들이 위안을 받으며 끔찍한 고통을 참아내듯 나도 그런 시기에 희망을 잃지 않고 참아냈지만 정말 이곳 캐나다의 의료에 희망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예방 차원으로 검사(피검사, X-Ray검사 제외)나 촬영을 할 수도 없고 하려면 오래 기다려야 하니 차라리 죽을 때가 가까울 정도로 아프면 응급실로 가라는 의료제도이니까요.

한국에서는 병원비의 일부를 환자 본인이 부담하고 나머진 건보가 부담합니다. 전액 무료가 아니지만 캐나다보다 발달한 시스템과 의료진의 진단과 치료법은 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짜 치료와 수술을 기다리다가 죽거나 장애인이 되는 확률이 높은 게 나을까요. 자비를 어느 정도 부담하더라도 빠른 진단과 치료, 생명을 소중히 하는 의료시스템이 낫겠습니까? 캐나다의 가정의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소소한 상담, 약 처방, 전문의를 추천하는 것뿐입니다. 전문의를 만나려면 하늘의 별 따기인 이곳에서는 그저 인내하거나 아프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의 건보는 병원비의 일부를 환자가 부담하는 형식이지만 차라리 이 보험제도가 무료치료인 캐나다보다 훨씬 국민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경우 오바마 케어 이후 극빈자를 제외하고 일반 미국인들이 한국의 보험료보다 훨씬 많은 건강보험료를 국가에 지불하고 있습니다. 건보료를 내는 건 같지만 국민의 건강생활을 위해서는 한국의 질 높은 의료제도가 더 유익합니다. 단 극빈자와 퇴직을 한 65세 이상 노인층의 수술비와 치료비, 치매 등에 대한 비용을 정부가 미국과 캐나다처럼 무료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여기엔 캐나다나 북유럽 복지국가처럼 소비세 소득세 인상이 따르지 않을 수 없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필자소개

오마리

미국 패션스쿨 졸업, 미국 패션계에 디자이너로 종사.
현재 구름따라 떠돌며 구름사진 찍는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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