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 짜증에 사람 짜증까지 [임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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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 짜증에 사람 짜증까지

2014.07.18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있어도 더워 죽겠는데 연일 답답하고 짜증스러운 뉴스만 들려오고 있습니다. 오늘이 초복. 비가 좀 내리든 말든 앞으로 본격적인 더위가 사람을 더 지치고 힘들게 할 텐데 대체 이 여름을 어떻게 넘기나 싶습니다.

답답하고 짜증스러운 것은 소위 국가와 사회를 위해 공직을 맡아 일하겠다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7·30 재보선에 등장한 인물들과, 박근혜 정부 2기 내각의 인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선 열다섯 군데에서 치러지는 7·30 재보선의 출마자 55명 중 55%인 30명이 전과자입니다. 민주화운동 과정 등에서 집시법 위반 혐의 등으로 처벌받은 사람들이 많지만 사기 뇌물수수 전과자들도 있습니다. 그런 이들이 국회의원이 되겠다니 배짱이 놀랍습니다.

출마자들 중 광주 광산을 후보인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사표가 수리될 때만 해도 “7·30 재보선 출마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공언했지만, 열흘 만에 말을 뒤집었습니다. 국정원 댓글 의혹사건 수사과정의 외압을 폭로한 ‘양심 인사’가 이 짧은 기간에 생각이 바뀌었다면 처신이 가벼운 것이고 거짓말을 한 거라면 부도덕한 일입니다.

경기 수원을의 백혜련 후보도 비슷합니다. 2011년 11월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지키지 못하는 검찰을 비판했던 백 검사는 사표를 내고, 언론 인터뷰에서 “정치에 몸을 담는다면 검찰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을 배신하고 왜곡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 뒤 민주통합당에 들어가더니 안산 단원갑 국회의원 후보로 나섰습니다. 그때는 야권 단일화 경선에서 패했지만 이번에 드디어 공천을 받았습니다.

새정치연합이 이 두 후보를 공천한 것은 공직사회에 대해 ‘야당에 도움을 주면 확실한 보상을 해 준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양심적이고 정의로운 내부 고발을 긍정적으로 장려하고 보호하는 차원이라기보다 포상금을 노린 신고와 고자질을 사주하고 조장하는 꼴입니다.

백혜련 권은희 두 후보는 투표권도 없습니다. 국회의원 출마에는 거주지 제한이 없지만 후보자가 투표권을 행사하려면 선거인명부 작성 기준일인 선거일 전 22일(이번엔 7월 8일)까지 주소지를 옮겨야 합니다. 그런데 여야 모두 내홍 끝에 9일 이후에야 공천을 확정하는 바람에 이들은 미처 주소지를 옮기지 못했습니다. 서울 동작을의 새누리당 나경원 후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사람이 9명이나 됩니다. 자기도 찍지 못하는 후보가 한 표를 달라고 호소하고 다니니 우스운 일입니다.

그러나 정작 우습고 짜증스러운 것은 장관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사회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였던 김명수 교수는 끝내 자진 사퇴를 거부하다가 대통령의 임명 철회라는 형식을 거쳐 물러나게 됐습니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부적격자라고 판정하는데도 별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듯 스스로 장관감이라고 믿는 자신과 무감각이 정말 놀라웠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정성근 씨는 더했습니다. 온갖 비리와 의혹 제기에 거짓말과 부인으로 넘어가다가 결국 다른 폭로가 임박했다는 말에 황급히 사퇴하는 모습이 가관이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데도 자신을 속여 가며 장관 자리를 탐하는 행태가 놀라움을 넘어 신기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쩌면 그렇게도 사람을 잘 못 고르고 잘못 고르는지, 그리고 왜 남의 말을 안 듣는지, 왜 국민에게 설명해 주지 않는지 그것도 신기합니다. 옛부터 “의심스러운 사람은 쓰지 말고, 쓴 사람은 의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TV로 청문회를 지켜본 사람들은 박 대통령이 그 두 사람을 10분만 만나서 이야기했더라면 문제점을 알 수 있었을 거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유진룡 문화부 장관이 면직됐으니 그의 유임은 낭설로 끝났고, 이제 또 다시 장관감을 골라야 할 판입니다. 정성근 씨는 아리랑TV 사장으로 임명된 지 석 달 만에 장관 후보가 됐는데 문화부 장관을 왜 바꿔야 하는지, 왜 하필 취임 석 달밖에 안 된 사람을 ‘차출’해야 하는지, 그렇게까지 자리를 챙겨줘야 할 은혜가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1997년 2월 개국한 아리랑TV의 사장은 정권 교체기마다 바뀌어 역대 사장 8명 중 임기 3년을 채운 이는 두 명뿐이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 임명된 손지애 사장도 임기를 6개월 남기고 올해 2월 사퇴했고, 그 자리를 정성근 씨가 차지했습니다. 문제는 정씨의 거취입니다. 그는 아리랑TV 사장으로 돌아가는 건가요? 사표는 아직 수리되지 않았다는데, 지금 문화부에는 사표 수리권자인 장관도 없고 이 분야를 맡는 제1차관도 없으니 어떻게 되는 건지 궁금합니다.

조현재 전 제1차관은 정성근 장관 후보자의 국회 청문회가 진행되던 10일 오후 한국체육대에 총장 후보 등록을 하고 다음 날 청와대에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사표는 15일 수리됐고, 박 대통령은 17일 유진룡 장관을 면직조치했습니다. 이제 문화부는 비관료 출신의 제2차관 혼자서 다음 장관이 청문회를 거쳐 취임할 때까지 이끌어가게 됐습니다.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와중에 정씨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면 ‘사장을 되찾은’ 아리랑TV 직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가 장관이 되는 걸 전제로 아리랑TV 사장에 내정된 사람(누군가 있을 거 아닙니까)은 또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이런 걸 생각하다 보니 더 덥고 짜증이 나는 것입니다.

필자소개

임철순

1974~2012년 한국일보 근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및 이사대우 논설고문을 역임했다.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수상.
현재 한국일보 논설고문, 자유칼럼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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