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재개발 돈 싸들고 줄섰다...왜?

 

 

당초 정부는 도심 공공주택 사업 도입 계획을 발표한 2월 4일을 입주권을 주는 기준일로 삼으려 했다. 후보지로 투기수요가 유입되는 걸 막는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후보지 발표일과 대책 발표일 사이의 공백기간 동안 주택을 매입해 실거주 목적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선의의 피해자가 된다는 지적이 있었다. 기준일 이후에 매수한 주택을 다시 팔려고 할 경우 사려는 사람이 없어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팔고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국회는 이 같은 문제를 감안해 기준일을 본회의가 열리는 28일로 늦추기로 했다. 이날까지 도심 공공주택 사업 후보지 내 주택·토지를 매수하고 소유권 이전 등기를 신청하면 새 아파트 입주권을 받을 수 있다. 오히려 투기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정부는 “주택을 매입하고 등기이전까지 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만큼 매입사례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같은 예상이 무색하게도 부동산 시장은 들썩이는 모양새다. 후보지 곳곳에서는 새 아파트 입주권을 받을 수 있다고 홍보하는 매물이 늘었다. 집이 여러채 있어도 입주권을 한채 밖에 받을 수 없는 다주택자들이 급하게 집을 팔고있다는게 인근 공인중개사들의 설명이다. 이전등기가 접수 후 완료되기까지 2~3일이 걸리는 만큼 늦어도 6월 넷째주까지는 거래량이 늘어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사업 후보지인 서울시 은평구 불광동 연신내 일대의 한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어제만 해도 40명이 와서 물건이 있냐고 물어봤다”며 “가방에 현찰을 담아 들고와서 하루만에 이전등기를 마칠 수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또 다른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증산4구역에서도 30~40명씩 대기하고 있다더라”며 “부동산 앞에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했다.

 

찾는 사람이 많다 보니 호가는 급등하고 있다. 또 다른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1억5000만원인 10평짜리 빌라 한 칸을 6억~7억원에도 살수 있으니 팔 사람이 있는지 알아봐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그 가격에 집을 사도 입주권 하나를 받으면 10억원 이상 이득을 보니까 파는 사람 입장에서는 부르는게 값이다”라고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호재는 개발완료 후 입주권을 받아서 들어오려는 대다수 주민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기존 다주택자들은 집이 여러채여도 입주권이 한 개만 나온다. 그러나 다주택자가 보유한 집을 각각 다른 명의의 사람에게 팔 경우 입주권이 집 수만큼 늘어난다. 이익금은 주민 수만큼 나눠서 분배되므로, 원주민들에게 돌아갈 이익은 오히려 줄어들게 된다.

 

불광동의 한 주민은 “정확하지 않지만 내가 추산해보니 한 집이 들어오면 주민들은 약 10억정도 손해를 본다”며 “다주택자들은 높은 금액에 집을 팔아서 좋지만 원주민들은 그렇지 못하다”고 토로했다. 녹번동의 또 다른 주민은 “정부가 투기를 조장하고 투기꾼은 신나고 주민은 피를 보고 있다”며 “10일의 악몽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임병철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정부 입장에서는 계약금이 잔금처리까지 한 달 걸릴테니 본의회 통과 시점에 맞춰 입주권 기준일을 늦추겠다고 했겠지만, 입법과정이 길어질 수도 있고 계약하는 분들도 단기에 할 수 있는데 이런 점을 놓친 것이 아쉽다”며 “지금은 가수요가 붙고 가격까지 올라 대책이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임시국회라도 열어서 법안을 빨리 상정해 마무리짓는 것이 최선의 대책”이라며 “그렇지 않을 경우 일시적으로 후보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해 거래를 묶어놔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온정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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