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소 사장'이 된 농사꾼 [추천시글]

 

 

'발전소 사장'이 된 농사꾼

2021.05.27

 

내 사촌 동생 기찬이는 제주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삽니다. 그가 농사짓는 곳은 한라산 서쪽에 위치한 한림읍 '금악리'라는 중산간 마을입니다. 1950년대 아일랜드 신부가 개척한 '이시돌 목장' 근처 마을입니다.

 

환갑을 넘긴 사촌은 그의 부인과 함께 평생 흙과 씨름하며 살았습니다. 오히려 그의 부인이 억척 농사꾼입니다. 남편이 젊은 날 잠시 군청 서기를 할 때는 농사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그렇게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었던 척박한 환경이었습니다. 부인의 부지런 덕에 정말 빈농이었던 그들은 모양 나는 농장을 만들었습니다.

 

 

재배하는 작물은 참 다양합니다. 밀감 과수원도 있고, 마늘 깨 콩 양배추 보리 등을 섞어서 재배합니다. 농작물은 잘 될 때도 있고 생산비를 건지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요즘 농사의 성패를 결정짓는 것은 작황보다는 가격입니다. 농산물은 뉴욕 월가의 증권시장보다 훨씬 가격변동이 심하다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납니다.

 

밭 한가운데 큰 창고가 그의 주택입니다. 창고 한 귀퉁이에 침실, 마루, 부엌, 목욕탕을 만들었습니다. 집이 밭이고 밭이 집인 셈입니다. 시골의 땅부자는 일부자란 말이 있듯이 그들에겐 요즘 같은 오뉴월의 하루해도 짧습니다. 사촌이 찾아가도 어디 가서 커피 한 잔 할 시간이 없습니다.

 

올봄 이 농가에 대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봄이면 마늘이 파랗게 자라던 그의 밭이 태양광 발전소로 변했습니다. 3년 전 제주도가 추진하는 농촌 태양광발전 프로그램에 그와 그의 부인이 각각 100㎾씩 태양광 농장을 신청한 것이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지난 3월 완성되었습니다. 약 1,000평의 땅에 태양광 패널이 하늘을 향해 가지런히 꽂혔습니다. 태양광 전기를 수확하는 소위 태양광 농장입니다.

 

 

얼마 전 그가 카톡으로 첫 수확을 알려왔습니다. 4월에 태양광 전기의 첫 수확이 나왔다는 겁니다. 200만 원 넘는 돈이 계좌로 입금되었다고 흥분했습니다. 나무 하나 풀 한 포기도 손을 대야 자라는 작물 농사와 달리, 태양광 농사는 관리회사가 맡아서 체계적으로 손봐주니 신경쓸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당국에서 농민에게 특혜를 주어 1㎾에 180원의 고가로 전기를 사 가고 태양광 설치 비용도 5년 거치 15년 상환으로 90% 융자를 해줬다고 합니다. 그의 계산으로는 5년 수익을 모두 원리금 상환에 쓰면 그후 15년 간은 한 달 200만 원의 고정 수입이 생긴다며 좋아했습니다.

 

사촌의 밭에는 또 다른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30년 간 그렇게 아끼며 가꾸던 노지 감귤 밭을 불도저로 갈아엎었습니다. 노지 감귤 밭은 온실 같은 시설을 하지 않고 자연상태로 귤을 재배하는 밭입니다. 요즘 시각으로 보면 원시 농법입니다. 노지 감귤은 인건비를 감안하면 이제 수지 맞지 않는 농작물이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50년 전 대학나무라는 별명이 붙었던 밀감 과수원의 경제적 위상이 이렇게 내려앉았습니다.

 

 

​그가 나에게 태양광 발전을 해보겠다는 얘기를 했을 때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조건 하라"고 부추겼는데 만족하는 걸 보니 체면을 세운 셈입니다. 그가 어릴 때 살았던 척박한 환경을 잘 알기에 그의 환경변화가 상전벽해 같습니다.

그는 중학교 때 5㎞ 떨어진 읍내에 걸어서 통학했고, 일요일과 공휴일엔 밭에 나가 일해야 했습니다. 많은 농촌이 그랬을 때지만 그의 마을엔 전기와 수도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밤에 석유 램프를 켜고 책을 보았습니다. 그가 이제 '발전소 사장'이 된 것입니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농사꾼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땅을 밟고 작물 이파리를 만지지 않으면 허전해 못 견딥니다. 노지 밀감은 베어냈지만 한라봉 나무는 귤맛 좋으라고 막걸리를 빚어 먹이며 키웁니다. 과일 나무를 막걸리 먹이며 키우는 사람이 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이제 재생에너지 생산자입니다. 그런 생각을 품고 사는 건 아니겠지만 탄소중립 정책의 최전선 실행자입니다. 세상에는 기후위기와 탄소중립를 쉴 새 없이 떠드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내 사촌은 그들의 이론과 담론을 들을 새도 없고 들었다 해도 어렵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론가들보다 훨씬 탄소중립적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하면 살 만해졌는데도 그는 카페에서 5천원 짜리 커피를 주문하면 표정이 굳어집니다. 물자를 아끼고, 식물을 재배하고, 태양광 전기를 생산하는 그는 그야말로 탄소중립적입니다.

 

요즘 전국 어디를 가나 산야에 태양광 패널이 즐비하게 깔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무분별한 허가로 환경파괴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전기를 생산해도 전력거래소에서 사 주지 않아 갈등도 생기고 있습니다. 제주도에만 임야나 밭 등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시설이 무려 2천2백여 곳이 된다고 합니다. 과연 수입이 계속 보장될지 모르겠지만 사촌의 태양광 농장 첫 수확을 축하해주고 싶었습니다.

축하하는 카톡을 이렇게 보냈습니다.

 

"농장 이름을 '김씨네 햇님농장'으로 짓고 마누라 이름을 대표로 적은 명함을 만들어서 선물하게나."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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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수종

‘뉴스1’고문과 ‘내일신문’ 칼럼니스트로 기고하고 있다. 한국일보에서 32년간 기자생활을 했으며 주필을 역임했다. ‘0.6도’ 등 4권의 책을 썼다.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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