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자연, 야생의 조화 [방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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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자연, 야생의 조화

2021.01.04


태국 남동 해안 낭캄이라는 작은 어촌에는 물고기잡이를 생업으로 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작은 목선을 끌고 나가 가까운 해안에서 물고기를 잡습니다. 어군탐지기 같은 건 있어도 어디 붙일 데가 없습니다. 사실 어군탐지기보다 더 정확한 정보가 있긴 합니다. 물고기 떼를 쫓는 분홍돌고래입니다. 어부들은 돌고래가 일러준 곳에 그물을 던져 한 배 가득 물고기를 거둬 올립니다. 그냥 시치미를 떼고 돌아설 사람들이 아닙니다. 어부들은 잡은 물고기 일부를 돌고래에게 던져 주며 고마운 마음을 표합니다.

태국 서남 해안에는 시밀란이라는 섬 무리[諸島]가 있습니다. 푸른 바다와 고운 백사장, 산호 군락과 해저 동굴 등의 비경으로 소문난 곳입니다. 1982년부터 태국 정부가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11월부터 다음 해 5월까지만 관광객들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관광객들은 아름다운 해변을 거닐다가 예쁜 소라껍데기를 기념으로 주워 가곤 합니다. 대신 통조림 깡통이나 플라스틱 쓰레기 같은 것들이 해변에 남겨집니다.

그 바람에 해변의 주민 소라게가 주택난을 겪게 됩니다. 몸이 커지는 정도에 맞추어 새로운 소라껍데기를 찾아 이사 가야 하는데 소라껍데기 찾기가 쉽지 않게 된 것입니다. 소라게들은 아쉬운 대로 제 몸 크기에 맞는 빈 깡통을 찾아 이주하기도 합니다.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섬사람들이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해변에 크고 작은 소라껍데기를 놓아두는 것입니다. 덕분에 딱 맞는 새집을 찾아 들어가는 소라게들의 입주식을 보노라면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코로나 때문에 방에 콕 들어앉아 한숨만 쉬다가 뜻밖에 여러 채널의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는 재미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 들어본 적도 없는 곳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입니다. 뜻밖에 많은 가르침도 얻게 됩니다.

따뜻한 오후 유리알같이 맑은 날개에 봄볕을 받으며 좀뒤영벌이 꽃을 찾아 비상합니다. 꿀 사냥에 나선 것입니다. 우웅 소리와 함께 도착한 곳은 작은 바위 아래 보석처럼 예쁘게 보랏빛 꽃을 피운 용담 군락입니다. 바위의 온기를 받아 용담은 꽃송이를 활짝 열어젖히고 손님을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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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몇 시간째 좀뒤영벌은 꽃 속에 들락거리며 단꿀을 빨았습니다. 너무 오래 머문 것일까요? 저녁놀이 바위에 홍채를 드리우자 꽃송이들이 일제히 꽃잎 가장자리를 비틀어 문을 닫으려 합니다. 조금 더 지체하면 꽃 속에 그대로 갇히고 말 터. 그런데 웬일인지 머리를 돌려 나오는 듯싶던 좀뒤영벌이 다시 꽃송이 속으로 몸을 파묻습니다. 마침내 빗장을 걸어 잠근 꽃 속에서 벌은 그대로 잠을 청합니다. 밤의 한기는 좀뒤영벌에게 가혹할 만큼 차갑습니다. 벌은 차라리 꽃 속에서 잠을 자는 게 낫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 퍼지는 햇살을 받으며 용담이 다시 화사하게 꽃을 피웁니다. 열린 꽃잎 틈새로 좀뒤영벌도 한껏 기지개를 켜고 일어납니다. 몸통, 날개, 다리, 더듬이가 온통 꽃가루투성인 채. 좀뒤영벌은 앞다리로 온몸을 정성스레 문질러 아침 단장을 합니다. 그리고는 잠자리를 마련해준 꽃송이는 물론 주변 꽃들에 차례로 들러서 일일이 아침 인사를 나눕니다. 그렇게 넉넉히 방값을 치르고 좀뒤영벌은 올 때처럼 기분 좋게 우웅 소리를 내며 또 다른 꽃 대궐을 찾아 힘차게 날아갑니다.

이 세상은 알게 모르게 누구에겐가 도움을 주고, 또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살게 마련입니다. 사람들끼리도 그렇지만 사람과 동물·식물과의 관계도 대체로 그러합니다. 그게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 원래의 조화로운 모습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과 만용이 도를 넘어가며 자연과의 조화를 깨뜨리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무모하게 자연을 훼손하고 파괴해 야생과 맞닥뜨리는 경우가 전보다 훨씬 많아졌습니다.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도락을 위해서 위생과 안전이 검증되지 않은 야생 동식물을 함부로 포획·채취하고 살육하거나 사육하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인간사회에 닥치는 불가사의한 재해와 질병이 바로 그런 무분별한 행태에서 비롯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등산은 자연의 정복이 아니라 자연과의 만남이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처음 무산소 등반하고, 8천m 이상 히말라야 14 봉우리와 7개 대륙 최고봉을 처음 완등한 전설의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Reinhold Messner, 1944~ , 이탈리아)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자연 정복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산악 등정, 극지 탐험의 위인들이 한결같이 강조하는 교훈이 ‘겸손’입니다. 자연과 누구보다 많은 대화를 나누었을 그들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삶을 위해 자연 앞에 좀 더 겸손하고, 야생의 존재를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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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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