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엄한 생의 마감을 바라며 [황경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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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엄한 생의 마감을 바라며

2020.10.12

지난달 ‘오래도 살았다’는 글을 쓰며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서울대 모 교수의 ‘죽음학’ 강의에 관해 잠깐 언급한 바 있습니다. 글을 읽으신 한 독자가 고맙게도 참고하라고 책을 한 권 보내주셨습니다. ‘죽음 가이드 북’이라는 이 책에는 ‘삶을 여행하는 초심자를 위한‘이라는 긴 부제(副題)가 달려 있었습니다. 저자는 책이 발행된 1년 전 당시 ‘한국죽음학회’ 회장이며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교수라고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이 책의 전반(前半)에는 사람의 육신(肉身)이 죽은 뒤 영(靈)의 세계가 시작된다는 외국 학자와 종교인들의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었고, 심지어 영 세계를 여러 번 경험했다는 학자의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장자(莊子)의 사생관, 티베트 불교 이야기, 죽음 근사체험 등 죽음에 관련된 세계 여러 나라 이야기가 수록된 죽음 안내서였습니다.

제가 지난번 글에서 언급한 서울대 의대 교수의 죽음에 관한 강의 이야기와 다른 한국 인사의 죽음에 연관된 각별한 이야기도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과문(寡聞)인 제가 처음 알게 된 ‘한국죽음학회’는 미국 템플대학교에서 종교학 박사학위를 받은 최준식 교수를 회장으로 2005년 6월에 창설되었다고 인터넷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90대 전반까지 살아오는 동안 저는 죽음에 대한 공포나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3년 전 아내가 갑자기 돌아갔습니다. 별다른 큰 병도 없이, 아무런 고통도 없이 잠자듯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그 뒤 제가 폐렴에 걸려 생전 두 번째 입원 생활을 경험하고 올해에는 다섯 살 아래의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 앞서 가, 갑자기 죽음이라는 명제(命題)가 심각하게 제 머리를 점령했습니다.

일본은 우리와 달리 이 컴퓨터 시대에 아직도 한자를 많이 쓰고 있습니다. 물론 약자(略字)를 많이 쓰고 상용한자 수에 제한이 있습니다. 그래도 취활(就活) 혼활(婚活) 등 줄인 한자어를 만들어 유행시키더니, 이번에는 종활(終活)이라는 새로운 한자어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인생의 종말을 앞두고 준비해야 할 많은 법적, 사회적, 윤리적 문제 등을 의미합니다. 종활을 소개하는 어느 잡지의 글 제목이 ‘인생의 후반기를 보다 행복하게 보내고 후회 없는 최후를 맞이하기 위해’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었습니다.

정말 언제 올지 모를 죽음에 대비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선 신변 정리부터 해야 하겠습니다. 집사람이 갑자기 돌아간 후 아이들은 집사람이 남긴 물건들, 특히 옷가지와 장식품 등을 처분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금 제 주위에도 정리할 물건이 너무나 많습니다. 1년에 한 번 입을까 말까 한 옷가지가 수두룩합니다. 이 나이에 필요하지도 않은 넥타이가 옷장 안에 몇 십 개 걸려 있습니다. 거실과 서재에는 정리해야 할 책이 수백 권 있습니다. 그중에는 아이들에게 인계해야 할 책이나 문건 등도 있어, 저 자신이 생전에 꼭 정리해야 할 물건들입니다. 몇 십 년 전 직장에서 일할 때 해외에서 구입한 영어와 일본어 책들도 많은데, 그중 일부는 시간이 많이 남아도는 최근에 읽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제 죽음을 간접적으로나마 시사하는 것이 싫은 듯 가끔 소극적으로 이야기는 하지만 굳이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 언젠가는 시작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아직 손을 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것이 유언을 남기는 것이라고 머릿속에서는 몇 번이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서 외출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유언 때문에 공증인이나 변호사를 찾아 나갈 수도 없어, 인터넷을 통해 어떻게 하면 제3자의 개입 없이 법적으로 유효한 유언을 남길 수 있는지 공부 중입니다.

‘인생 50’이 ‘100세 인간’이라는 새로운 사회 구호로 바뀐 것에 편승하여, 이왕 90대 중반 넘어 살아왔으니 3~4년만이라도 더 살아보도록 노력해보자고 최근 쓴 글에서 언급한 기억이 있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죽음은 두렵지 않지만 치매만은 꼭 피하고 싶습니다. 만일 치매에 걸리는 경우가 생기면 걸린 당사자는 정들어 살던 집에 가족과 함께 살고 싶겠지만 본인이나 가족을 위해 치매 진단을 받은 즉시 요양원에 입원시켜 서로 불편이 없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가족들에게 주지시키고 있습니다.

정신질환자를 수용소에 입소시켜 관리하는 것이 법적으로 당연한 것처럼, 치매환자도 전문 보호사가 상주하는 요양원에 입원시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우 인정이나 외부 사회에 대한 고려 등은 걱정 안 해도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제 주위 많은 친구들이 치매의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일단 치매 진단이 내려지면 가족들은 환자의 친한 친구조차 병문안 오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많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 나이에 이런 비참한 인생의 종말만은 피해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치매만은 아직 속수무책인, 인간의 난적(難敵)인 모양입니다. 일본의 하세가와 카즈오(長谷川和夫) 박사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적인 치매 전문의입니다. 금년 92세인 하세가와 박사는 3년 전 자신이 치매에 걸렸다고 발표하여 일본인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1년 뒤에 또 글을 발표하여, 자기의 치매 증상은 진도가 극히 느려 아직 오전에는 거의 정상 상태를 유지한다고 했습니다. 금년 초에도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기억장애와 과대망상 등 그가 걸린 치매의 특이한 증상은 여전하나 아직 생명에 위협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2004년에 환자들의 인권을 고려해 치매를 ‘인지증(認知症)’으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여기에도 하세가와 박사의 노력이 기여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치매 진단을 할 때 사용하는 문진표(問診表)가 있습니다. 하세가와 박사는 1974년에 ‘하세가와식 치매 문진표’를 발표하여, 그 뒤부터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를 딴 문진표가 사용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처음에 치매환자 센터에 가기를 싫어했다가, 최근에는 주간에만 치매환자를 돌보는 ‘데이 케어 센터’를 이용한다고 일본 매체가 보도했습니다.

현재로서는 인간과 치매는 경주(競走)하면서 서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관계라고 하세가와 박사가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증세가 악화되면 자기 가족마저 알아보지 못하는 치매는 피하고, 근엄하게 삶을 마감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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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황경춘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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