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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지

2020.09.04

장마가 시작되기 전 윗마을 아주머니들이 지나가다가 내가 일군 밭을 보면서 “고추가 참 잘됐네” 하고 덕담했습니다. 얼굴이 다 엇비슷한 아주머니들이죠. 초등학교를 폐교할 만큼 인구가 줄었지만, 집성촌이라 일가붙이들이 살아서 남자들 이름은 돌림자가 많죠.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지내지만, 사회적 거리는 길도, 땅도 넓어 저절로 지켜집니다.

옛날 유명 대학교의 사회학과에서 집성촌을 연구하러 찾아왔었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던 노인이 작년 인지장애로 한밤에 해변에 나갔다가 불귀의 객이 되었습니다. 밭일하는 내게 그는 유럽 여행담을 들려주면서 “내년엔 꼭 인삼 심어. 잘 가르쳐 줄게. 나도 인삼 길러 아들 대학까지 보냈잖아”라며 아들이 K대 출신임을 또 자랑했습니다.

시골 생활의 인정은 메마른 도회지와 다르죠. 밭에서 일할 때 지나가면 "뭐 하세요?“ "어디 가세요?"라고 꼭 주고받죠. 농사 이야기로 말이 길어질 때도 있습니다. 파란색 포터를 몰고 바닷가 밭으로 내려가는 농부도 눈이 마주치면 차창에서 고개를 끄떡합니다.

아주머니들의 고추 인사에 나는 대견한 고추를 매만지면서 “끝 가봐야 알죠.”라고 자신 없이 대답했고 아주머니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의 공감을 나눴습니다. 그게 농사만은 아니란 것이 요즘 드러납니다.

이내 장마가 시작되었고 8월 초순 해가 반짝하던 날 첫물을 따서 비닐하우스 안의 검정 고추 망 속에 널어놓았습니다. 며칠 뒤 밭두렁 가의 몇 그루가 탄저병에 걸린 것을 알았습니다. 탄저는 아주 어린 풋고추건, 빨간 고추건 거무튀튀하게 썩어 들어가고, 마른 것은 잿빛으로 흉하게 부스러지게 하는 강력한 병이죠. 병을 옮기지 말라고 몇 포기 뽑아내며 “도시의 코로나를 피해 온 시골 고추밭엔 탄저병인가?”하고 한탄했습니다. 늘 어린이날에 모종을 심었는데 올해는 좀 이른 5월 1일 심은 게 일렀나 하는 후회도 들었죠. 식물이란 묘해서, 옥수수도 단 며칠 상관에 낟알이 딱딱해지고 껍질이 두꺼워집니다.

고추가 탄저병에 걸리면 대책이 없어 온갖 약을 치다가 지쳐서 결국 될 대로 되라 하며 방치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고추는 11월까지 하얀 꽃을 피우다가 서리가 내려야만 비로소 한살이를 마감합니다. 심은 지 넉 달이 다 되어 가는 이제, '땀방울을 흘리며 풋고추도 안 따고 애써 키웠는데 포기 못 하지’, 오기가 생겼죠. 10월 중순까지도 빨간 고추가 달리는 그때를 바라보며 약통을 지고 분무기로 약을 뿜어댔습니다.

물론 장마가 어서 끝나 어떤 약보다 잘 듣는 강렬한 햇볕이 탄저를 죽여주기를 바랐습니다. 기대와 달리 장마는 점점 더 길어졌고 어느 날 변색하는 희나리를 막도록 덮어놓은 고추 망 속에서 잘 말랐을 거라고 짐작한 첫물 고추가 모두 탄저병에 걸려 있어 탄식했습니다. 탄저병이 이토록 기승을 부리는 것은 하우스를 만들고 나서 10여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탄저는 장마철의 후덥지근하고 바람이 안 통하는 환경을 좋아하죠. 올해는 일부러 1미터 간격으로 넓게 심고 통풍이 잘되게 가지도 부지런히 쳐주었는데요.

탄저엔 특효약이 없습니다. 탄저만 아니면 고추 농사는 지을 만하다고들 말하죠. 농민들은 뭐가 잘 들을까, 농약 취급자의 말을 듣고 이 약 저 약 돌려가면서 칩니다. ‘농튜버(농사 유튜버)’들도 탄저를 언급합니다. 식염과 락스를 0.3퍼센트 농도로 뿌리면 즉효라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위험하다고 경고했습니다. 탄저병을 그렇게 치료할 순 있겠지만 열매는 안 달린다는 댓글도 있었습니다.

탄저의 발생 원인을 더듬어보니 물 폭탄으로 밭고랑에 물이 차자 물길을 트려고 이랑의 중간을 자른 것이 탄저의 통로가 된 모양이었습니다. 탄저병이 손쓸 수 없게 퍼져가자 며칠 걸려 병에 걸린 고추를 손으로 거의 다 따내고 검정 비닐 ‘멀칭(바닥 덮개)’ 위에 떨어진 잔해까지 쓸어 냈습니다. 발본색원이었죠. 버려야 할 병든 고추를, 찜통 무더위 속에서 요리조리 보며 따는 일은 고행이었습니다. 이마에서 땀이 줄줄 흘러 눈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숨이 막혔습니다. ‘노인들이 이렇게 밭일을 하다가 열사병으로 가나?’ 갑갑한 방호복을 입고 더위 속에서 코로나 19와 싸우는 의료진의 모습도 떠올렸습니다.

따버린 고추가 세 발 손수레로 다섯 개 정도 분량이 되었습니다. 저걸 온전히 말렸다면 몇 관이 되었을까? 며칠 전 만난 위 밭 아주머니는 작황이 좋아 고추를 XX만 원에 열 관을 팔았다면서 고추는 약을 흠뻑 치고 따자마자 건조기로 말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간의 노고가 아쉬웠지만 정성을 더 쏟지 못한 게 잘못이지요. 이건 약과입니다. 수만 주를 심었으나 탄저로 포기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지나갔습니다. 고추의 탄저병도 고치지 못하는데 인간의 병은 얼마나 고치기 어려울까? 코로나 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 사람 간의 전염은 없다고 낙관했던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의 수염이 떠올랐습니다. 영국의 연구진은 수백만 명 사망의 대재앙을 예고했었죠. 그 후 학질약이 듣네, 에이즈약이 듣네 하다가 나라마다 백신 개발에 열을 올리는 듯합니다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는 없죠.

나는 친환경 태양초를 사랑합니다. 날만 좋으면 비닐하우스 속에서 사나흘에 투명하고 아름다운 태양초가 되어 속의 노란 씨까지 다 볼 수 있으니까요. 장마가 거짓말처럼 끝나 해가 며칠 빤할 때 널어둔 고추는 60도가 넘는 고온의 비닐하우스 속에서 금세 루비색으로 반짝였습니다. 한 개를 집어 코에 대봅니다. 향긋하고 달콤한 냄새가 납니다. 길을 잘못 든 벌레들이 날아들어 고추에 앉아 있습니다. "빨대를 꽂으면 단맛이라도 나냐?" 하고 물어봅니다. 사람이나 곤충이나 맛은 기막히게 잘 아는가요? 예년 수확의 10분의 1도 안 될 건(乾) 고추를 바라보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교훈을 깨닫습니다. 근거 없는 낙관론을 멋대로 펼치다가 '~와의 전쟁'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되새겨야 할 말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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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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