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평효 선생과 제주 방언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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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평효 선생과 제주 방언

2020.08.13

 
“이젠 살아지는 셍이여, 입노픈 거 보난에”

위 문장은 제주도 방언의 대화체입니다. 이해가 되시나요?
요즘 3대가 모인 전통적인 제주도 가정에서 80대의 할머니가 이런 말을 한다면 식구들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10대의 손자 손녀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눈만 껌벅거릴 것입니다. 그러나 50대의 아들이나 딸은 할머니가 입맛 까다로운 손자 손녀를 나무라는구나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셍이여’는 ‘모양이야’로, '살아지는'은 '형편이 나아지는'으로, ‘입노픈’은 ‘맛있는 것만 골라 먹는’으로, ‘보난에’는 ‘보니까’로 대치할 수 있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제주 방언 연구가 강영봉(姜榮峯) 제주대 명예교수의 도움을 받아 시나리오로 꾸며본 제주 사투리의 현재 상황입니다. 제주도가 육지(본토)와 아주 다른 특징은 자연과 문화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자연적 특징은 화산섬의 풍광이고, 문화적 특징은 사투리입니다.

지난 8월 5일 제주대학교 컨벤션홀에서는 독특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제목은 ‘연암현평효선생탄생100주년기념학술회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기에 ‘탄생100주년’이란 무게감 있는 제목이 붙은 건가요?
현평효(玄平孝:1920~2004) 선생은 제주대학교 총장을 지낸 사람이지만, 대학 보직보다는 제주도 방언 연구의 개척자로 기릴 가치가 있는 사람입니다. 1950년대 제주도에서 표준어는 학교 수업시간에만 어색하게 쓰였고 가정은 말할 것도 없고 일터에서도 외지인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사투리를 쓸 때였습니다. 이때 제주도 사투리를 연구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젊은 대학교 국어 강사 현평효 선생이었습니다. 그 당시 현지 지식인들의 분위기로 볼 때 사투리를 연구하겠다고 나섰으니 별난 사람이란 말을 들었을 게 분명합니다.
현평효 선생은 일본 간사이(關西)대학에서 법률 공부를 하다가 해방이 되자 귀국하여 오현중학교에 국어 교사로 교편을 잡았습니다. 당시 아무도 국어 과목을 맡겠다는 교사가 없자 하는 수 없이 맡게 됐다고 합니다. 처음 몇 달 신나게 가르치다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국어를 가르친다는 자괴감에 곧 빠졌습니다. 그는 양주동(梁柱東) 박사가 재직하던 동국대학교 국문학과에 진학했습니다. 큰 변신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그가 1952년 제주대학 국문학과 강사가 되자 본격적으로 제주 방언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보다 앞서 나비 박사 석주명(石宙明:1908~1950) 선생이 1943년부터 2년간 경성제대 부설 생약연구소 제주도 시험장에 근무하며 제주 방언을 모아 ‘제주도방언집’을 낸 적은 있지만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한 것은 현평효 선생입니다.

현평효 선생은 마을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로부터 제주 사투리를 듣고 일일이 채록해서 단어의 뜻과 발음은 물론 말한 사람의 신상을 카드에 기록해나갔습니다. 그는 특히 현대 한글에서는 사라진 모음 아래아(ㆍ)가 들어간 단어의 음운과 뜻에 관심을 많이 기울였습니다. 제주 방언에는 세종 때 쓰던 말이 내려왔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10년 발품을 팔아 모은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1962년 낸 책이 ‘제주도방언연구 제1집 자료편’입니다. 1만 3천여 개의 제주 방언 어휘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역작이었습니다. 당시 원고를 본 국어학자 이숭녕 서울대 교수가 감탄해서 연구비 지원을 알선하고 출판사를 추천하는 등 응원했다고 합니다. 이 책은 제주 방언은 물론 국어학 연구의 자료로 학계의 관심을 끌게 되었고, 1985년 빠진 부분과 잘못된 부분을 고쳐서 수정판으로 ‘제주방언연구 자료편’을 출판했습니다. 이 책이 제주 방언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는 현평효 선생의 대표 저서입니다.

학부 시절부터 현평효 선생 문하에서 제주 방언을 공부하고 제주대 국문학과 교수가 된 강영봉 교수는 2004년 스승이 작고한 직후 현천욱 변호사(김&장로펌) 등 유가족으로부터 와이셔츠 상자 5개를 받았다고 합니다. 열어보니 방언 조사 카드였습니다. 애제자였던 강 교수는 ‘제주 방언 연구를 계승해 달라’는 스승의 유훈으로 생각하고 대학에서 퇴직하자 2016년 (사)제주어연구소를 설립해서 제주 방언 보존, 연구, 제대로 쓰기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제주 방언 연구 환경은 척박하다고 합니다. 강 소장은 웃으며 “돈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럼에도 제주 방언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10여 명이 된다고 합니다.

강영봉 교수는 말합니다. “지금 제주도는 격동적으로 변화하고 있고 따라서 제주의 언어도 급속히 변하고 있습니다.” 그는 과거 제주도가 농축산 사회였다가 급속히 서비스 사회로 바뀌면서 농축산 관련 어휘가 급속히 소멸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제 제주도의 아이들은 술어의 어미만 옛날식으로 표현하지, 과거 제주인들이 썼던 명사와 동사는 거의 표준어로 기울어 가고 있다는 겁니다. 지역 라디오방송에서 사투리 토크쇼도 하는 등 제주어 보존을 위한 움직임이 적지 않으나 외지인 유입으로 인구 구조가 변하고 학생들의 언어생활 변화로 제주 방언의 소멸 속도가 빠르다고 합니다.
학자로서 연구 대상이 소멸하는 건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강 교수는 스승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제주도 마을 구석구석을 돌며 방언의 변화를 조사합니다. “제주 방언은 유네스코가 규정한 소멸위기 4단계에 있습니다. 5단계가 완전소멸 단계인데 그 직전입니다. 아마 20년 후면 제주 사투리 조사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강 교수는 방언 어휘가 없어지는 것보다 어의(語義)를 임의로 굴절해서 쓰는 것을 못마땅해 합니다. 대표적인 말이 메밀전병을 뜻하는 제주도의 ‘빙떡’입니다. 서울의 고급 한식당에서도 가끔 나오는 빙떡은 원래 떡을 뜻하는 한자어 ‘餠’에 우리말 '떡'을 중복해서 생긴 것인데, 얼음 ‘氷’과 ‘떡’을 결합해서 그럴듯하게 해석해서 퍼뜨린다는 게 강 교수의 불만입니다. 방언 어휘를 억지로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건 언어에 대한 폭행이라고 보는 겁니다.

“문화의 근간으로서 언어는 아주 천천히 변합니다. 그런데 제주도 방언은 속도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소멸이 빠릅니다. 제주 사투리가 소멸되면 제주도도 없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언어는 정신이니까요.” 강 교수가 아쉬워하는 말을 들으면서 현평효 선생이 20년 동안 수집한 1만3천 개의 방언 어휘가 20년 후에는 거의 사라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있던 것이 없어지면 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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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수종

뉴스1’고문과 ‘내일신문’ 칼럼니스트로 기고하고 있다. 한국일보에서 32년간 기자생활을 했으며 주필을 역임했다. ‘0.6도’ 등 4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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