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無知)한 자만이 문화를 무시한다 [이성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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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無知)한 자만이 문화를 무시한다

2020.07.23

1990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분단되었던 독일이 통일이란 행운의 역사적 발자취를 남긴 해입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옛 동독 지역, 특히 동베를린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 얼마 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지난  30년간 통일 독일이 가장 집중적으로 복원한 박물관들이 모여 있는 지역이라고 해서  ‘박물관 섬(Museum Insel)’이라 일컫는 곳이 궁금했습니다. 독일 사람들은이 대대적인  인공사 프로젝트의 종지부를 “무지(無知)한   자만이 문화를 무시한다(Artem non odit nisi ignarus)”라는 글귀로 마무리했는데, 그걸 보고 많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마치 우리에게 전하는 경종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박물관 섬’에는 1) Pergamonmuseum, 2) Bode-Museum, 3) Alte Nationalgalerie, 4) Altes Museum, 5) Neues Museum 등 다양한 전시 내용물로 가득가득 채운 다섯 개의 박물관이 군집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Pergamonmuseum에서는 BC 575년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고대 바빌론(Babylon)의 ‘The Great Gate of Ishtar’라는 그 큰 ‘성벽과 성문’을 실내에서 통째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슴이 벅찰 정도였습니다.

 
그 유물이 뿜어내는 시공을 초월한 아름다움에 푹 빠졌습니다. 특히 찬란한 코발트블루(Cobalt blue)에 넋을 잃었습니다. 하늘과 바다의 푸른 청색인 코발트블루를 내는 안료(顔料)가 이슬람 문화권에서 실크로드 중개상인에 의해 중국으로 건너왔고, 한반도에는 조선 후기에 들어와 청화백자(靑華白瓷)에 그 흔적을 남겼다고 역사는 말합니다. 그런데 온통 코발트블루로 장식된 그 거대한 ‘옮겨온 유물’을 보고 있자니 문득 마음 한쪽이 싸늘해집니다.

그것은 바로 이 유물이 ‘바빌론’, 그러니까 고대 메소포타미아에 있던 고대 도시, 오늘날의 이라크에서 불법적으로 ‘탈취한’ 것이라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베를린을 방문하면 어김없이 자연스레 발길이 다시 그 ‘바빌론’으로 향하는 걸 필자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만큼 고대 바빌론 문화가 거역할 수 없는 엄청난 흡인력을 갖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박물관 섬’에서 필자가 관람 일 순위로 꼽는 곳은 바로 Neues Museum입니다. Neues Museum은 건축학적으로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독일 건축가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슈튈러(Friedrich August Stueler, 1800~1865)가 1843~1855년에 설계·건축한 건물인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공중 폭격을 받아 심하게 파손되었습니다. 전쟁에서 패한 독일 사람들은 전후(戰後)에 파손된 이 건축물을 재건하면서 전쟁의 상흔(傷痕)을 시각적으로 볼 수 있도록 그대로 보존하였습니다. 박물관은 그러면서도 거대 구조물의 안전성을 확보한 것으로 더욱 명성을 얻었습니다.

아주 각별한 공법으로 이런 건축 예술품을 재탄생시킨 건축가는 영국 출신의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 1953~ )입니다. 서울 용산에 아주 아름다운 대형 건축물, 즉 아모레퍼시픽(AMOREPACIFIC) 본사 건물을 우리에게 안겨준 바로 그 건축가이기에 Neues Museum이 우리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필자가 Neues Museum을 즐겨 찾는 이유는 이곳에 BC 1370(?)~BC 1330(?)까지 살았던 이집트 왕비 네페르티티[Nefertiti(英)/Nofretete(獨)]의 흉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미술 애호가들이 가장 아름다운 미녀의 흉상으로 평가하는 작품입니다. 많은 평론가는 그 조형물의 입체성과 단아한 장식성에 큰 무게를 두지만, 필자는 이 미인상의 왼쪽 눈[左眼]에서 동공(瞳孔)을 볼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와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지만, 이는 필자가  현역에 있을 때 중동 및 지중해 연안 국가인 이집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베체트병(Behcet’s disease)’을 연구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베체트병은 오늘날에도 종종 발병하는데, ‘실명(失明)’이 그 증상 중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그 옛날의 왕녀도 베체트병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추측 진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요컨대 고대 이집트 미라에서 매독(梅毒, Syphilis)을 비롯한 다양한 질병을 추론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독일이 통일 후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박물관 섬’ 같은 문화 영역에 큰 비중을 두었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통일 직후 독일은 옛 동독 지역의 열악한 도로 등 기본적인 사회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큰 힘을 기울였습니다. 하나같이 재정적 뒷받침이 필요한 사업입니다. 그런데 많은 시급한 과제가 있음에도 문화를 복원하고 유지하는 데 절대로 소홀하지 않았습니다.

근래 ‘Corona VD-19’라는 범유행 속에서도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독일 총리는 긴급 자금 50억 유로(한화로는 약 6조 3000억 원)를 문화예술 분야에 우선 투입했다고 합니다. 문화예술계의 구조가 한번 무너지면, 다른 분야에 비해 그걸 복구하는 것이 훨씬 어렵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어떻습니까. 이번 ‘코로나 사태’에 즈음해 문화예술 분야에 투입한 정부 예산이 있었는지를 묻게 됩니다. 국가 정책의 우선순위를 생각하면 답답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습니다. 독일 Neues Museum 벽면에 쓰인 “무지한 자만이 문화를 무시한다”라는 문구는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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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전 한국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전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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