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 지리멸렬(各自圖生 支離滅裂) [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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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 지리멸렬(各自圖生 支離滅裂)

2020.07.22

 
“옛날에 아기 돼지 삼 형제가 살았어, 얘들이 이제 독립할 나이가 돼서 엄마 집에서 나와 각자 집을 짓고 살기로 했지, 첫째는 지푸라기로 엉성하게 집을 뚝딱 짓고는 하루 종일 놀았어, 그러다 늑대를 만나게 됐고, 지푸라기로 만든 집으로 달려가 숨었는데 늑대가 입으로 바람 한 번 훅~하고 불었더니 그만 지푸라기 집이 다 날아가 버렸어. 그렇게 첫째는 늑대에게 잡아먹혔지. 둘째는 나무로 집을 지었어. 지푸라기보다는 단단하지만 나무로 만든 집도 늑대의 입김 몇 번에 무너져 버렸지. 결국 둘째도 늑대에게 잡아먹히고 말았어. 셋째는 벽돌로 집을 지었어. 차곡차곡 벽돌을 쌓아서 집을 짓는데 벽돌집은 공사 기간이 길어서 혼자서는 하루 만에 다 지을 수가 없었어. 벽돌을 무릎 높이까지 올렸을 때, 늑대가 나타나 버렸지 뭐니? 그래서 셋째도 늑대에게 잡아먹혀 버렸어.”


“아기 돼지 삼 형제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셋이서 함께 힘을 합쳐 벽돌집을 한 채씩 얼른 짓는 거야. 혼자서는 하루 만에 집을 짓지 못하겠지만, 셋이서 지으면 가능하겠지? 그렇게 하루는 첫째의 집을 지어서 그날은 그 집에서 셋이 같이 자는 거야, 그리고 다음 날엔 둘째의 집을 짓고, 그 다음날엔 셋째의 집을 지어서 셋이서 안전하게 오손도손 잘 살면 좋겠지, 그런데 서로 뿔뿔이 흩어져서, 서로 자기 방법이 옳다고,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우기며 자기 살길만 먼저 생각하면, 다 죽게 되어 있어.”


필자가 딸아이에게 들려준 아기돼지 삼 형제 이야기입니다. 원래 얘기는 아시는 것처럼 셋째가 벽돌집을 지어 늑대를 물리치는 이야기입니다만, 필자의 생각에는 그게 옳은 결론이 아닌 것 같아서 이야기를 각색했습니다. 어렸을 때, 필자는 이 이야기에서 두 가지가 매우 궁금했습니다. 첫째는, ‘왜 늑대는 집을 다 지은 후에 나타나는가?’였고, 둘째는, ‘왜 셋째는 저 혼자 벽돌집을 지어서 혼자 살아 남았을까?’였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이런 질문을 하려면 매우 큰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래도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질문을 하면, “넌, 왜 내용에도 없는 질문을 하니? 이야기가 전하는 바가 그게 아니잖니?” 하고 핀잔을 듣기 일쑤였습니다. 내용에 없어서 질문을 한 건데, 아무도 대답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고 나서야 스스로 위와 같은 해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원작에서 셋째가 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벽돌집을 지어서라기보다는 운이 좋아서입니다. 늑대는 언제든 나타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셋째가 살 수 있는 확률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기(工期)를 단축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건 혼자서는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형제들을 설득해서 벽돌집을 하나씩 빠르게 지어야 합니다. 물론 첫째와 둘째가 아무렇게나 후딱 집을 짓고 놀 궁리만 하고 셋째의 말을 듣지 않으면 모두 늑대에게 잡아 먹히게 될 겁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꼴이 말이 아닙니다. 같이 더불어 잘 살 생각은 애초에 없어 보이고, 각자도생(各自圖生)의 형국이 되었습니다. ‘내 편만 챙겨서 간다. 그러다 보면 나머지는 대세에 따르게 되어 있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주변의 나라들을 봐도 지도자에게서 ‘대의(大義)’를 좇는 모습을 본 지 오래됐고,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통합은 없고 대결만 남았습니다. ‘같이 잘 살자’는 얘기를 들어본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이런 얘기를 하면 시대에 뒤처진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사방이 늑대로 둘러싸여 있는데 저마다 자기가 옳다고 얘기하며 각자 집을 짓고 있습니다. 바람 부는 허허벌판에 서서 언제 잡아 먹힐지 두려운 생각이든 지 오랜데, 백마 탄 초인은 어디에 있는지…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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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12뉴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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