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기준 [한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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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기준

2020.07.16

요즈음 젊은 세대 사이에 유행하는 ‘소확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상 속에서 작지만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행복을 말합니다. 혹은 어떠한 일에서 행복과 가치를 추구하는 경향을 뜻합니다. 비슷한 맥락의 단어로는 201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힐링(healing)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상대성이 있습니다. 하늘이 있으니까 땅이 있고, 불이 있으니까 물이 있고, 동물이 있으니까 식물이 존재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만남이 있으니까 이별이 있고, 예쁜 사람이 있으니까, 미운 사람이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소소한 행복은 큰 행복이 있다는 전재하에 생겨난 말 일 것입니다.

행복은 자신이 원하는 욕구와 욕망이 충족되어 만족하거나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상태입니다. 사람은 모두 개성이 다릅니다. 따라서 추구하는 행복의 기준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친구에게서 술을 얻어 마신 덕에 내 주머닛돈이 굳었다는 점에 행복을 느끼고, 술값을 지불한 친구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술을 사줬다는 점에 행복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요즘 청소년들의 소확행은 비싼 브랜드 옷을 입었을 때이거나, 시험 점수가 잘 나왔을 때, 공부 스트레스에서 잠깐 벗어나서 게임에 몰두할 때 등 개인취향에서 비롯됩니다.

저는 주로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면 행복에 사로잡힐 때가 많았습니다. 아버지는 냇가에서 잡은 물고기를 매우 좋아하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렇지만 어린 시절에도 물고기로 요리를 한 조림이나, 국, 찌개 따위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아버지가 좋아하신다는 점 때문에 물고기 잡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물고기를 잡은 방법은 다양합니다. 얕은 개울물 한쪽을 막아 다른 쪽으로 물꼬를 틀어서 맨바닥에서 퍼덕이는 물고기를 잡거나, 양동이를 들고 가서 웅덩이에 고여 있는 물을 퍼서 잡기도 합니다. 족대로 물고기가 있을 것 같은 곳을 뒤져서 잡기도 하고, 어항에 된장이나 깻묵을 넣어서 여울물이 흐르는 곳에 놓기도 합니다.

물고기를 잡으러 갈 때는 동생들의 동행이 필요합니다. 족대로 고기를 잡으려면 고기를 담을 그릇을 들고 따라다녀야 하고, 웅덩이 물을 풀 때는 번갈아 가면서 교대로 퍼야 하고, 어항을 놓을 때는 말동무가 되어 줘야 하는 까닭에 동생들의 동행은 꼭 필요합니다. 이미 노동의 강도를 경험한 동생들은 제가 삽이나 양동이, 족대 등을 챙기는 기미가 보이면 지례짐작하고 꽁무니를 뺍니다. 그럴 때는 ‘라면땅'이나‘ 뽀빠이’같은 라면 부스러기 과자 정도는 안겨 줘야 말동무가 되어 따라나섭니다.

어떤 일이든지 자주 하게 되면 전문가가 되기 마련입니다. 여름부터 초가을까지는 자주 물고기를 잡으러 다니는 까닭에 이맘때쯤 어느 웅덩이를 푸면 뱀장어 몇 마리쯤 잡을 수 있다,어디 수로를 족대로 뒤지면 미꾸라지를 한 사발 정도 잡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물고기를 잡느라 땀 흘리고 힘들었던 시간의 고통은 저녁 밥상에서 “이거 만수가 잡아 왔슈”하는 어머니의 말씀 한마디로 봄눈 녹듯이 녹아듭니다. 맛있게 물고기조림을 드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슬쩍슬쩍 훔쳐볼 때마다 행복이 온몸에 녹아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어머니가 비교적 멀리 있는 친척에게 뭘 좀 갖다주라시거나, 뭘 얻어 오라는 심부름을 갈 때도 행복합니다. 열한두 살짜리가 검정 고무신을 신고 십리 길을 걸어도 힘들다는 걸 느끼지 않았습니다. 심부름을 다녀오면 “우리 만수 이제 다 컸다. 장가가도 되겄구먼.” 하는 어머니의 칭찬 한마디에 저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어머니가 외출한 틈에 물동이 가득 물을 채워 놓고, 어머니가 기뻐하실 모습을 상상하는 것도 행복했습니다.

동네 어귀에 제법 큰 연못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매립을 하여 소방서 건물이 들어서 있습니다. 연못을 매립하던 때는 객지에 살고 있어서 몰랐는데,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추억을 매립해 버린 것 같아서 서운한 감정이 살아납니다.

연못에는 붕어가 많았습니다. 한여름을 제외하고 연못에 가보면 늘 낚시를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저녁나절에는 아이들이 꼬챙이에 잠자리 암놈을 긴 실로 묶어서 워이, 워이하며 수컷잠자리를 잡기도 합니다.

하루는 연못에 낚시를 하러 갔다가 팔뚝만한 금붕어를 잡았습니다. 붕어가 많을 것 같은 자리를 찾아다니다 물속에 있는 빨간색 물체를 봤습니다. 처음에는 빨간색 돼지 저금통인 줄 알고 지나치려 했습니다. 낌새가 이상해서 다시 자세히 보니까 금붕어였습니다. 온몸에 전율이 돋는 것을 느끼며 소리 나지 않게 물가에 앉았습니다. 물속을 뒤져 물고기 잡는 것은 이골이 난 탓에 양손으로 가만히 금붕어를 잡았습니다.

금붕어가 하도 커서 한 되짜리 주전자에 간신히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낚시를 하는 어른들은 물론이고, 아이들까지 모두 뛰어 와서 금붕어를 보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저는 너무 좋아서 낚시를 포기하고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소문을 들은 동네 사람들이 구경을 와서는 하나같이 대단하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저녁나절에 파출소의 급사가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지서장 말씀이 동네 연못 금붕어는 파출소에서 풀어 넣은 것이기 때문에 가져가야 한다는 겁니다. 요즘에야 뭐한 말로 택도 없는 말이겠지만, 그 시절에는 파출소 금붕어라는 말에 두 말도 못 하고 내 줬습니다. 그 아쉬움은 뭐로 표현을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파출소장이 그짓말 하것냐?”

눈물을 동반한 아쉬운 감정은 아버지 말씀 한마디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며칠 후 파출소 뒤에 있는 논바닥에 죽어 있는 금붕어를 우연히 발견하고 치밀어 오르는 허무와 분노를 참을 수가 없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요즈음도 하루 12시간 이상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습니다. 주로 글을 쓰거나, 글 쓰는 것과 관계되는 작업을 합니다. 가끔 나는 행복한가? 반문을 해 볼 때가 있습니다. 이 나이가 되도록 글 쓰는 감각을 잃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 행복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이나 지인들과 대화가 너무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불행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행복은 손바닥 안에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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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한만수

1990년부터 전업으로 소설을 쓰고 있음. 고려대학교 문학석사. 실천문학 장편소설 “하루” 등단. 대하장편소설 “금강” 전 15권 외 150여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외 5권 출간. 이무영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우수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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