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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를 우한 코로나로 부르고 싶은 이유

2020.03.02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 전염병의 이름은 처음에는 ‘우한(武漢) 폐렴’이었는데 이후 ‘우한 바이러스’ 또는 ‘우한 코로나’로 잠시 불리다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굳어지는 듯했다가, 정부의 결정으로 ‘코로나19’로 통일되었습니다. 이번 우한발 코로나 사태에서 시종일관 중국의 편을 들어서 빈축을 사고 있는 테워드로스 WHO 사무총장은, 지난 2월 11일 “지역 명칭과 동물명ㆍ인종ㆍ집단 등을 내포하지 않는 WHO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새로 명칭을 정했다.”고 말하면서 이 바이러스의 이름을 ‘COVID-19’으로 정했습니다.  COVID-19는 2019년에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Corona Virus Disease)라는 뜻입니다.

주목할 점은 방역에는 뜨뜻미지근한 WHO가 작명(作名)에는 민첩하게 대응했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전국의 축산 농가를 긴장시켰던 아프리카 돼지 열병은 여전히 아프리카 돼지 열병으로 불리고 있고, 2015년 전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 갔던 메르스(MERS,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는 우리말로 풀어보면 중동 호흡기 증후군입니다. 그런데 이들 명칭에는 WHO가 어떤 권고를 했는지 기억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이들 질병의 이름을 쓸 때는 아무런 제약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유별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속하게 코로나 바이러스에 붙은 ‘우한’과 ‘중국’을 지워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름은 그 자체로 프레임을 형성합니다. 우리가 매일 쓰는 돈에도 여러 이름이 있습니다. 공돈, 푼돈, 잔돈, 목돈, 종잣돈, 쌈짓돈 등등, 다 같은 돈인데 이름 붙이기에 따라 돈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토머스 길로비치(Thomas Gilovich)는 공돈이나 푼돈이 생기면 은행에 2주만 저축하라고 얘기합니다. 그러면 그 돈은 예금으로 이름이 바뀌고 쉽게 쓰지 못하는 돈이 된다고 조언합니다.

‘우한 코로나’ 또는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라는 호칭 대신 ‘COVID-19’ 또는 ‘코로나19’로 불리게 된 순간부터 중국은 전염병의 초기 대응에 해태(懈怠)한 책임에서 자유로워진 반면, 세계가 그 책임을 떠안게 됐습니다. 속된 말로 중국이 싸놓은 똥을 세계가 치우게 된 겁니다. 그 와중에 WHO는 이러한 변화의 징검다리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WHO 총장이 불과 며칠 전에 “중국은 바이러스 통제가 잘 되고 있는데 중국 외의 다른 나라가 염려스럽다.”고 얘기했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수백 명씩 사망자가 나오고 있고 언론 통제로 정확한 수치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중국이 모범 사례로 둔갑을 하고, 한국, 이탈리아, 이란이 요주의 국가가 된 것입니다. 만약에 이번 질병의 이름이 계속해서 ‘우한 코로나’였다면 이렇게까지 드라마틱한 반전이 가능했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분별한 혐오와 차별을 방지하기 위해 질병의 이름에 지역 명칭과 동물명ㆍ인종ㆍ집단 등을 내포하지 않게 한다는 WHO의 가이드라인이 왠지 이번에는 악용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중국의 뻔뻔한 태도 때문입니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는 지난 2월 4일 기자회견을 열고 당시 우리 정부의 중국 후베이성발 외국인 입국 금지 조치와 관련해 "국가 간의 여행을 제한할 정도로 우한 코로나 사태가 심각하지 않다고 발표한 세계보건기구(WHO)의 기준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던 중국이 지금은 우리에게 사전 통보도 없이 공항에서 한국인을 격리하고 있고, 일부 지역에서는 혐한(嫌韓) 분위기까지 조장하고 있습니다. 중국 중앙정부의 초기 대응 실패에 대해 시진핑에게 책임을 묻던 비판 여론은 이제는 주변국에 대한 경계 심리와 세계적 대유행, 즉 팬데믹(pandemic) 공포로 대체되었습니다.

WHO라는 국제기구 뒤에서 중국 정부는 값싸고 효율적으로 위기관리를 해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딱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입니다. 초기에 송양지인(宋襄之仁)의 우를 범한 정부의 안일한 대처 때문에 우리 국민은 이제 70개가 넘는 나라에서 입국을 거절당하거나 제한되는 수모를 겪고 있습니다. 게다가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생돈 20조 원을 쓰면서도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전염병 때문에 귀국에 많은 심려를 끼쳤다.”라는 사과의 말조차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스크를 보내주고 방호복도 지원하고 라텍스 장갑까지 보내줬는데 우리 국민은 중국 공항에서 격리당하는 상황입니다.

1918년에 창궐해 전 세계에서 5,000만 명을 희생시킨 스페인 독감은 발원지가 스페인이 아닙니다. 당시 1차 세계대전 직후에 참전국들은 언론을 통제한 반면 참전국이 아니었던 스페인은 이 병의 심각성을 그대로 보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초기에 스페인에서만 이 독감이 창궐한 것처럼 보였을 것이고 그래서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겁니다. 중국이 확진 환자 수를 축소하는 정황이 있는 것과 일본이 코로나 진단에 소극적인 이유를 미루어 짐작할 만합니다. 스페인 독감은 프랑스에 주둔한 미군부대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이름 때문에 아무 잘못 없는 스페인이 백 년 동안 독감의 발원지처럼 오해를 받은 겁니다.

이름은 중요합니다. 적어도 변종 바이러스가 어디서 발생했는지, 초기 대응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그리고 그 지역의 방역이 뚫린 것에 대한 책임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라도 발생 지역 명칭을 써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굳이 명칭에 지역 이름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견해는 요즘처럼 돈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시대에는 오히려 악용될 소지가 많습니다. WHO는 매해 1조 원씩 10년간 중국의 지원을 받습니다. 뒷말이 무성한 테워드로스 WHO 사무총장은 중국의 후원 덕택에 쟁쟁한 유럽 후보를 제치고 WHO 사무총장이 됐으며 그의 조국인 에티오피아 경제는 중국의 SOC투자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최근 중국의 행보를 보면, 프로 레슬링 선수의 체력을 가진 세 살짜리 아기를 보는 느낌입니다. 다른 나라들이 이미 오래전에 많은 대가를 치르고 경험한 민족주의 또는 국수주의를 이제야 거쳐가는 중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보기에 아슬아슬합니다. 민도(民度) 또한 그들의 경제와 군사력에 비해 많이 떨어집니다.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중국 기자가 “중국은 이제 상황을 잘 억제하고 있고 한국, 일본, 이탈리아는 상황이 매우 심각해지고 있는데, 중국의 입국 제한 조치를 완화하고 한국, 일본, 이탈리아에 대한 제한을 강화할 생각이 없냐?”는 질문을 할 정도로 예의도 염치도 없습니다.

이 병의 발생 초기에, 아예 몽골처럼 전면 차단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만시지탄(晩時之歎)을 하면서도 속히 사태가 진정되어 ‘코비드-19’로 이름이 바뀐 ‘우한 코로나’가 ‘대구 코로나’ 또는 ‘신천지 코로나’로 각인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동북공정(東北工程)으로 역사까지 바꾸려 하는 중국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진원지까지 바꾸려 들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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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12뉴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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