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춘투(春鬪)의 기억 [김홍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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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춘투(春鬪)의 기억

2020.02.11

대한불교 조계종 종무원이 노동조합을 설립했다고 합니다. ‘현재 조계종은 출가자들의 급감, 300만 불자들의 이탈, 불평등의 심화 등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이는 일부 비구(比丘) 종권세력들의 권력 사유화로 종헌 종법 질서가 무력화되고, 선거 부정 폭력행위 등으로 자정능력을 상실하여 불자와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는 게 노조의 진단입니다. 노조는 ‘조계종이 상식적이고 사회적 눈높이에 맞게 운영되는 정상적인 종단이 되어 국민과 불자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설립 목적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절간 노조’의 상위단체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이라고 합니다. 민노총은 지난해 조합원 수 96만8,035명으로 한국노총(93만2,991명)을 제치고 ‘제1 노총’으로 올라섰습니다. 1995년 민노총 설립 이후 처음입니다. ‘노동자 편’임을 자처한 문재인 대통령의 천명에다 ‘촛불혁명’의 공신을 자부해 온 민노총의 거대 세력화는 우리 사회에 어떤 상황을 초래할 것인가? 노동자 천국을 이룩할지, 아니면 적대적 투쟁적 노사문화로 기업과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릴지…. 자못 궁금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도를 넘은 민노총의 주장과 과격한 행동들을 숱하게 보아왔습니다. 경찰 폭행, 회사임원 감금 폭행, 국회 담장 파손, 여당 원내대표 사무실·자치단체장 집무실·고용노동부 건물·도로공사 본사 점거 등입니다. 경찰은 뒷짐만 지고….
심지어 총리 후보(김진표) 지명 반대에까지 이르러 결국 그를 낙마시켰고, 최근에는 ‘낙하산 행장’이라고 출근을 저지했던 인사(윤종원)를 기업은행 노조가 경영 및 인사 참여 수락을 조건으로 ‘환영한다’며 받아들였습니다. 정부는 안 그런 척, 모르는 척하고….

# 일본 노조, 회사 수익 근거로 임금인상 요구
이런 사태를 보면서 20세기 후반 매년 봄철 일본 전역을 뒤흔든 춘투(春鬪)를 지켜본 한 학자의 견해를 새삼 음미해 봅니다. 고려대 재직 시절 와세다대학에서 유학한 김현구(金鉉銶:역사교육) 명예교수(76)는 1996년 출간한 <일본 이야기>에서 “서구의 노동조합이 회사의 적자나 흑자와는 무관하게 자기들이 일한 데 대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데 반해, 일본 노동조합은 권리보다 회사의 수익에 대한 확실한 근거자료를 토대로 자기들이 받을 수 있는 액수를 요구하는 게 특징”이라고 규정했습니다.

한마디로 서구에서는 회사보다는 개인이 우선이고, 일본에서는 자기가 소속한 회사라는 집단이 우위에 있다는 말입니다. 가정=휴식처, 직장=평생 일터라는 인식의 일본인들에겐 직장이 망하거나 직장에서 쫓겨나는 것은 2등 인생으로의 전락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식이 집단이나 회사에서 낙오되지 않고, 단체여행 때 깃발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집단의 규범을 잘 지키고 친절 정직하게 처신해 동료들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감이 몸에 배어 있다는 분석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노사분규는 여론 향배에 따라 원만하게 해결된다고 합니다.

김 명예교수는 유학 시절 “인구 1억2천만의 일본은 땅덩어리가 작아 식량생산이 7천만 명분밖에 안 돼 5천만 명분은 밖에서 벌어 와야 한다. 지금은 구미에서 벌어오지만 그것이 어려워지면 아시아로 눈을 돌릴 것이고, 그 제일 타깃은 한국이 될 것”이라는 지도교수의 고백을 상기시켰습니다.
최근 <일본 다루기: 달라진 한국>을 출간한 그는 “일본이 취할 수 있는 다음 행보는 독도 도발”이라고 단정했습니다. 따라서 “국가·기업을 우선시하는 일본을 무조건 과소평가하지 말고, 우리는 역사적 맥락에서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나라와 기업이 망하면 백성도 도탄에 빠져
중국 후한(後漢) 말 북해(北海) 태수 공융(孔融)은 동료의 모함으로 승상 조조(曹操)에게 끌려가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공자의 20대손인 공융은 평소 직언을 서슴지 않고 의롭지 못한 벼슬아치들을 백안시해 조조의 미움을 사왔습니다. 아버지의 소식을 전한 사람이 바둑을 두고 있는 공융의 두 아들에게 “왜 급히 피하지 않는가?” 하고 묻자 두 아들은 “둥지가 부서져 떨어지는데 어찌 알이라고 온전하겠는가?”라며 계속 바둑을 두었습니다. 그러자마자 포졸들이 들이닥쳐 공융의 두 아들과 일족을 궤멸했습니다. 나라가 망하면 백성도 온존하지 못한다는 고사입니다.

노동운동은 자본주의 초기부터 열악한 노동환경, 노동의 착취, 부의 불평등 분배, 자본의 노동 지배 같은 불공정한 조건에 대항하여 노동자의 지위와 권익 향상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집결체인 노동조합이 법과 질서를 도외시하는 무소불위의 폭력집단으로 비치거나, 기득권을 가진 귀족노조를 지향해서는 나라의 영(令)이 서지 않습니다.
‘이 나라 물 많이 나빠졌네!’라는 안팎의 비아냥거림이 쏟아질 뿐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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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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