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패러다임] 기업도 이제 '유튜브 시대'...보고서도 동영상으로 만들어


밀레니얼 직원 ‘동영상 보고서’에 발칵 뒤집힌 건설사…기업도 '유튜브 시대'


동영상이 책보다 더 친숙한 20대…기업 문화 바꾼다

직종별 회사 생활 알려주는 콘텐츠 인기…아예 전업 나서기도


    지난해 말 국내 10대 건설사 가운데 한 곳인 A 건설사는 한 20대 직원이 만든 택지 분석 동영상에 발칵 뒤집혔다.


시작은 이랬다. 입사한 지 1년 정도된 직원에게 수도권의 특정 택지를 현장 답사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했는데, 이 직원이 보고서 대신 동영상을 제작해 온 것이었다.


한화갤러리아 직원이 한화가 운영하는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유튜브 계정에서 백화점 직원의 일상을 소개하고 있다. /한화TV




처음에는 신입 직원의 ‘4차원’에 가까운 행동인 줄 지레짐작했었던 이 건설사 직원들은, 동영상을 보고 나서 깜짝 놀랐다. 동영상은 현장의 입지 조건을 생생하게 보여주면서 단번에 사업성을 판단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보고서에 포함되어야 하는 내용도 꼼꼼하게 반영됐기 때문이다. 결국 임원들까지 이 동영상을 보게 되었고, A건설사는 동영상 형태의 보고서를 권장하는 내용의 지시를 공식적으로 내리게 됐다. "두꺼운 보고서보다 잘 구성된 짧은 동영상이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는 게 그 이유였다.


흔히 밀레니얼(1981~2000년생)이라 불리는 젊은 직원들이 늘어나면서 동영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과 유튜브 등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와 함께 청소년기와 대학생 시절을 보낸 1990년대생들이 입사하면서 문서 대신 동영상을 업무에 활용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1990년대생은 동영상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할 뿐만 아니라 제작 능력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1980년대생과 차이가 있다. 또 유튜브 등에서 각 직종별로 회사 생활을 주제로 동영상 채널을 운용하는 직장인 유튜버(Youtuber·유튜브에 동영상을 직접 올려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기업들이 동영상과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를 가장 활발하게 쓰는 분야는 홍보 업무다. SK이노베이션 (133,500원▼ 2,500 -1.84%)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유튜브를 활용하고 있다. 2019년 8월 만든 ‘우리에게 혁신은 자연스럽다(Innovation is in our nature)’라는 제목의 동영상은 7일 현재 조회수가 1억500만회에 달한다. 과거 TV 인기프로그램인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의 주제 배경음악에 동물들이 차량이나 산 보다 훨씬 더 큰 모습으로 등장하는 게 재미 요소다. 외국인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SK이노베이션 동영상 채널 구독자(3만8000명)보다 2800배 많은 조회수를 끌어 모았다.


SK이노베이션이 1억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한 홍보 동영상.


현재 SK이노베이션은 ‘스키노맨(SK이노베이션+사람·SKinnoMan)’이라는 주제로 SK이노베이션 직원들이 직접 사업 현장들을 찾아가 촬영한 동영상 콘텐츠를 유튜브를 통해 올리고 있다. 진행자 역할을 하는 직원 두 명은 다소 촌스럽다는 느낌마저 드는 단색의 추리닝을 입고 진행한다. 이 전에는 SK이노베이션 직원들이 직접 출연해 회사 생활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제작했다. 두 가지 형식 모두 유튜브에서 널리 활용되는 방식이다.


직원들이 직접 회사 일상을 소개하는 ‘브이로그(VLOG·동영상을 뜻하는 비디오와 블로그의 합성어로 동영상을 활용해 일상 기록)’를 제작해 유튜브 등에 공개하는 기업들도 늘었다. 삼성, LG, 롯데, 한화, 신세계 등 웬만한 대기업은 브이로그를 운영한다. 가령 LG생활건강 (1,353,000원▼ 1,000 -0.07%)의 잘 생긴 연구원이 직접 회사 출근에서부터 업무, 회의, 구내식당에서 식사까지 일상을 소개하는 방식이다.


LG생활건강 화장품 담당 연구원의 일상을 기록한 브이로그.




롯데쇼핑은 지난해 3월부터 20·30대 밀레니얼 직원이 3개월간 경영진에게 젊은 세대의 트렌드를 알려주는 ‘멘토’ 역할을 하는 밀레니얼 트렌드 테이블(MTT)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 내용 가운데 하나는 동영상 제작이다. 임원 1명과 신입사원 3명이 3개월 간 한 팀을 이뤄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먹거리, 쇼핑,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알려주는 데 그 과정에서 함께 브이로그 형태의 동영상을 제작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해 3월에는 강희태 롯데 부회장(당시 롯데백화점 사장)이 참여하기도 했다.


직장인들이 직접 유튜버로 나서 회사 생활을 알려주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이 과장’이라는 계정은 중소기업 직장인의 일상을 동영상으로 담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계정에 동영상이 올라오면 바로 받아보는 구독자 수는 12만명에 달하고, 가장 인기 있는 동영상은 조회수가 73만회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 유튜버는 예상 밖으로 계정이 인기를 끌고 회사 안팎에서 동영상을 보게 되면서 결국 회사를 떠난 상태다. 그리고 전업 유튜버로 살고 있다.


중소기업 직장인의 애환을 소재로 한 유튜브 계정 ‘이 과장’.




회사 생활을 주제로 한 유튜버는 대부분 익명이거나 이전에 그만둔 전직(前職)이다. 유튜브 방송 내용을 회사에서 문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회사의 출퇴근길 영상을 차량 블랙박스 동영상을 편집해 올리고, 승진·사내·정치 거래처와의 관계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항공사 승무원 등 선망하는 이들이 많은 특수 직종의 경우 해당 직업 세계를 알려주는 방송 계정이 활발히 운영되기도 한다.


항공사 승무원의 세계를 다룬 유튜브 계정. 특수 직종의 경우 관련 직종에 있었던 이들이 직업 세계를 소개하는 동영상이 인기를 끌고 있다.


현직으로 유튜브 동영상을 올리다 회사와 마찰이 발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삼성전자 (60,400원▼ 700 -1.15%)출신의 유튜버 돌디는 지난해 6월 8년간 일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유튜브가 인기를 끌면서 회사와의 갈등이 생겼기 때문이다. 돌디는 퇴사 후 전업 유튜버 활동을 하면서 올린 동영상에서 회사로부터 적잖은 압력을 받고, 유튜브 방송을 중단해도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돌디의 구독자수는 23만4000명으로 직장인이 관심을 가질 주식·부동산 투자, 산업 변화 등을 다루는 동영상을 올리고 있다.

조귀동 기자 이재은 기자 최지희 기자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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