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탄핵사태가 남긴 것 [임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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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탄핵사태가 남긴 것

2020.02.06

“대통령이 권력을 남용하고 의회의 조사를 방해한 혐의는 인정되나, 탄핵당해야 할 만큼 중죄는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권력남용과 사법방해 혐의를 사유로 한 미국 상원의 탄핵 재판이 내린 결론이다.

미국 상원은 지난 5일의 트럼프 탄핵안을 부결시켰다. 지난해 9월 하원의 다수당인 민주당에 의해 발의 된 트럼프 탄핵안은 10월31일 과반수 찬성으로 하원을 통과해, 지난 달 16일 공화당이 다수당인 상원에 회부됐고, 이날 표결에 부쳐졌다.

연방 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는 상원 탄핵 재판의 의결정족수는 하원과는 달리 3분의 2 찬성이어서 공화당 의원의 이탈표가 없는 한 부결은 기정사실이었다. ‘유죄이지만 탄핵 감은 아니다’는 것은 탄핵을 반대한 공화당 의원들을 포함, 미국인의 대체적인 여론이기도 했다.

주된 탄핵 사유인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자신의 강력한 라이벌의 한 사람인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를 흠집 내기 위해 외세(우크라이나 대통령)까지 끌어들였다는 혐의였다.

민주당은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바이든 후보 아들에 대한 부패혐의를 조사하지 않으면 미국 의회가 승인한 군사원조를 하지 않겠다고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압박을 가했으며, 그 과정에서 대통령 권한을 남용했고 위증 등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백악관과 공화당은 원조를 외교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미국 정부의 전통이고, 범죄혐의가 있는 미국인에 대해 외국정부에 조사를 요구하는 것이 불법은 아니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원조는 민주당 행정부에서도 보류됐던 것으로 결국 집행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였다고 맞섰다.

공화당의 입장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 당할 경우 감당할 수 없는 운명에 놓인다. 공화당의 사실상 단독 후보인 트럼프가 없이는 11월 대선에서 공화당의 재집권은 물거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트럼프 탄핵은 대선을 겨냥한 민주당의 정파적 판단으로 시작돼 공화당의 정파적 판단으로 마무리된 셈이다.

트럼프 탄핵이 한국 정치에 주는 시사점을 생각해 본다. 첫째 탄핵은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선출직 임기직에 대한 탄핵은 그래야 한다. 나라의 존망이 시급을 요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탄핵사유에 대한 심판은 다음 선거에서 받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한국의 국회는 대통령을 두 차례나 탄핵했다. 대통령 탄핵을 최종 심판하는 헌법재판소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부결됐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가결됐다. 탄핵된 대통령은 지금도 감옥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민주주의 전통이 244년이나 되는 미국에서도 탄핵은 네 번 발의돼 세 번은 하원을 통과했지만 이번처럼 모두 상원에서 부결됐고, 다만 닉슨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하원 법사위를 통과, 본회의 표결에 회부되기 전 자진 사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탄핵 없이 탄핵된 경우였다.

특히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사유는 대통령이 백악관 인턴 여직원 모니카 르윈스키와 백악관 내에서 부적절한 성관계를 했다는 확인된 비행이었음에도 여당인 민주당 상원의원들이 공직 수행과는 무관한 사생활이라며 부결시켰다. 한국에서라면 폭동이라도 일어났을 일이다.

다른 하나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절차적으로 적법하고 이성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원의 탄핵 재판에서 필자의 눈에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의원들이 말로써가 아니라 글로 질문한다는 것이었다.

질문하는 상원의원은 질문의 상대가 탄핵한 검사(민주당 하원의원) 측인지, 탄핵당한 대통령의 변호인 측인지 만을 밝히고, 메모로 된 질문 내용을 재판장에게 전달하면 재판장이 대신 읽고, 답변 상대가 나와 답변하는 방식이었다. 의원이 직접 연단에 올라 선정적인 발언을 일삼고, 상대측이 야유나 폭력으로 대응해 토론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한국 국회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탄핵이 진행되는 동안 시민들은 무관심 했다. 탄핵 논의는 온전히 의회로 수렴되고 있었다. 한국에서 두 차례 대통령 탄핵과정에서 등장한 광화문의 촛불과 태극기 시위는 결국 국회에 대한 국민적 불신의 표시였을 뿐임을 알게 한다.

탄핵된 대통령이 감옥에서 풀려나지도 않았는데 지금 광화문에선 현직 대통령을 탄핵해 감옥에 보내라고 다시 아우성이다. 탄핵 덕택으로 권력을 잡은 정권이므로 자신들이 탄핵받을 일은 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으나 내로남불식의 적폐청산으로 스스로 청산돼야 할 적폐를 쌓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천한 헌정사에서 미국도 못한 대통령 탄핵을 한 것이 자랑일 수는 없다. 탄핵으로 탄생한 정권이 탄핵당한 정권보다 나을 게 없다면 더욱 그렇다. 다시 탄핵한다 해서 더 나은 정권이 나온다는 보장도 없다. 결론은 탄핵보다는 선거로 심판하는 것이다. 4·15 총선이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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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종건

한국일보와 자매지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의 여러 부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사장을 끝으로 퇴임했으며 현재는 일요신문 일요칼럼, 논객닷컴 등의 고정필진으로 활동 중입니다.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및 감사를 역임했습니다. 필명인 드라이펜(DRY PEN)처럼 사실에 바탕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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