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름이 살 되나 [김홍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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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름이 살 되나

2019.09.03

# “썩은 나무로는 조각을 할 수 없고, 거름흙으로 쌓은 담장에는 흙손질을 할 수 없다.”
朽木不可雕也(후목불가조야)
糞土之牆不可圬也(분토지장불가오야)
공자(BC551~BC479) 말씀입니다. 제자 재여(宰予)가 드러누워 낮잠을 자는 것을 보고, '나는 말로써 사람을 판단해온 지금까지의 평가 방법을 바꾸었다'는 예기(禮記)의 한 대목입니다. 언행일치를 강조한 것입니다.

# 위(衛)나라 영공(靈公)은 부인의 남장(男裝)을 좋아했습니다. 그러자 나라 안 모든 아녀자들이 남장을 하고 다녔습니다. 영공은 여자들의 남장 금지령을 내리고 단속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여인들은 단속 관리들에게 붙잡혀 옷을 찢기고 허리띠가 잘리는 처벌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남장을 하고 다녔습니다. 영공은 어느 날 안자(晏子; 공자의 제자)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여인들의 남장을 금하고 벌을 주어도 그치지 않으니 그 이유가 무엇이오?”

안자가 대답했습니다. “군(君)께서는 집 안의 부인은 남장을 시켜 놓고, 집 밖의 여인들은 그것을 금했습니다. 어째서 부인이 남장을 하지 못하도록 금하지 않으십니까?”
“알겠소.” 영공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부인도 남장을 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한 달이 지나자 나라 안에는 남자 옷을 입고 다니는 여자가 한 명도 없었다고 합니다.(晏子春秋) 집안 단속 효과입니다.

# 공자는 “어떻게 하면 정사(政事)를 잘 할 수 있소”라고 묻는 제(齊)나라 경공(景公)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임금은 임금답게 (나라를 편안히 하고), 신하는 신하답게 (올바른 정책을 내놓으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모범을 보이고), 아들은 아들답게 (책임을 다하면) 어찌 나라가 안정되지 않겠습니까?” 라고. 적재적소(適材適所)의 원칙입니다.

# 제자 자장(子張)은 어떻게 하면 관직에 나가 봉록을 받을 수 있는지를 배우고자 했습니다.
공자는 이렇게 일러 주었습니다. “말을 신중하게 하면 틀리는 일을 줄일 수 있고, 행동을 신중하게 하면 후회하는 일을 줄일 수 있다. 말함에 틀리는 일이 적고, 행동함에 후회하는 일이 적다면 관직을 얻어 봉록을 받는 일은 저절로 되느니라.”
공자는 멸사봉공, 청렴결백, 정의구현, 사회개혁 같은 거창한 구상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 그보다 수백 년 뒤. 공화정 로마의 제사장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 BC100~BC44)가 명문가 출신 부인 폼페이아와의 이혼을 선언했습니다. 기원전 62년 풍작과 다산을 관장하는 보나(Bona) 여신에게 바치는 제사가 제사장 카이사르의 집에서 거행되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남자들이 낄 수 없는 행사인데 귀족 집안 청년 푸블리우스 클라우디우스가 여장(女裝)을 하고 들어갔다가 들켜 로마 정계가 발칵 뒤집힌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정황으로 보아 카이사르의 부인 폼페이아를 연모한 나머지 야간 주거침입을 한 푸블리우스의 ‘불륜’으로 인식돼 당사자와 그 집안은 정치적 위기에 몰렸습니다. 그러나 로마 원로원 청문회에서 카이사르의 어머니와 하녀들은 “그날 밤 집안이 어두워 누가 들어왔는지 얼굴을 기억할 수 없다”고 진술했습니다. 당시 집에 있지 않아 혐의를 벗은 카이사르도 푸블리우스 집안의 몰락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혼 사유에 대해서는 단호했습니다.
“카이사르의 아내 되는 사람은 한 줌의 의혹도 있어서는 안 된다.” 공인(公人)의 자세입니다.

# 20세기 초 프랑스에서는 이쑤시개 하나 때문에 20년 세월과 4만 달러의 국고가 허비되는 재판이 있었습니다. 1907년 변호사 지르벨이 파리 리옹역 하물(荷物)예치소에  이쑤시개 한 개를 내놓으면서 찾으러 올 때까지 맡아 달라고 했습니다. 예치소 사무원은 버럭 화를 내면서, “사람을 놀려도 분수가 있지” 하고 접수를 거부했습니다. 지르벨은 사무원의 법률위반 사실을 공공사업성에 고소했습니다.

소송은 20년이나 걸렸습니다. 간이재판소에서 지방법원, 고등법원, 최고법원으로 이어져 계속되었습니다. 기나긴 법정공방 끝에 최고법원은 변호사의 승리를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4만 달러(5,000만 원 상당) 소송비용은 전액 국가가 부담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여론은 20년 법정 투쟁을 지속할 수 있었던 지르벨을 ‘약은 변호사’라고 지탄하기도 했지만, 작은 사안도 법이 놓쳐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보여 준 판결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법의 준엄함을 말해 줍니다.

온 신문 방송이 도배를 하듯이 떠들어대는 나라 안 사안에 하도 속이 시끄러워 옛 책 몇 권을 뒤져 보았습니다. 야단법석을 떨지 않아도 결론 내릴 수 있는 지혜가 선인들 고사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듣고 보면 상식인데 왜들 호들갑인지…. 속담이 더 명명백백합니다.
-고름이 살 되나
-호박에 줄 친다고 수박 되나
-되모시(결혼한 적이 있는데도 처녀 행세하는 여자) 숫처녀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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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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