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의 안보 협력마저 허물 것인가 [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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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의 안보 협력마저 허물 것인가

2019.08.07

한국과 일본이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이 전략물자의 수출 절차를 우대해온 27개 국가(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자 여당은 ‘경제 전쟁’, ‘경제 침략’ 등의 거친 어휘로 동경 올림픽 보이콧, 일본 여행금지까지 입에 올리며 반발합니다. 반면 일본 정계의 대응은 착 가라앉아 있죠. 우대 조치의 제외는 전략물자 수출의 안보적 관리로서 자유무역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아베 총리는 '원폭의 날'인 6일 히로시마에서 기자들에게 “한국이 한일청구권협정에 위반하는 행위를 일방적으로 행하여 국교정상화의 기반이 된 국제 조약을 깨고 있다. 국가간 관계의 근본에 관한 약속을 확실히 지켜주기 바란다”고 촉구했습니다. 야당인 입헌민주당은 관계가 더 악화하기 전에 대화와 의논을 촉구했습니다. 그간 한국이 미국에 SOS를 보냈지만 트럼프도, 미 국무부도 중재를 사양했죠.

일본 정치인들의 냉정함과 달리 일본 네티즌들의 비판은 위험수위를 넘나듭니다. “노벨상을 타지 못한 국민이 힘들 것. 기초연구에는 세월과 투자가 필요하니 간단하게 일이 진전될 리가 없지.” “국산화보다 파탄이 빠를 것.” “불매 운동과 여행 취소로 이탈하나? 올림픽 보이콧, 해 봐.” “큰소리치지만 잘 될까?”“한국경제의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연말께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라며 비웃습니다. 최근 우리 증시가 급락하고 환율이 급등하는 것은 한일 갈등이 큰 원인이죠.

설마 하다가 초대형 암초를 만난 정부는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고 외치고 ‘남북한 협력 경제로 일본 경제를 뛰어넘을 것’이란 평화경제론을 내세웁니다.  하지만 최빈국 수준에 호전성으로 유엔 제재까지 받는 폐쇄 3대 독재 체제와의 평화경제는 먼 이야기이고 발등에 떨어진 한일 갈등의 해법도 아니죠. 정경두 국방장관은 최근 북한이 우리를 위협하면 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평화경제가 무색하게 북한은 다음 날 단거리 탄도미사일 추정 발사체를 쏘았습니다.  “‘레드그룹’ 되고 싶냐?” 말투가 '북조선(북한)'을 닮아간다는 비난도 있습니다. 일본 일부 네티즌들은 아예 단교를 주장합니다.

1965년 이후 그런대로 잘 지내오던 일본과의 갈등은 한일협정에 저촉하는 강제징용자 배상 판결과 위안부 합의를 깨버린 좌익 정부와 사법부 탓이 크죠. 정권에 법률가는 널렸는데 조약의 효력을 강조하는 국제법 전공자는 없나 봅니다. 외교 행위에 사법부를 끌어들이고 그 판결이 수출 규제 강화를 유발하자 2016년 준동맹국이라고 할 일본과 어렵사리 체결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파기하자는 '자살골'로 안보를 위협하는 수준에 와 있습니다.

지소미아는 미국의 권유로 몇 년 만에 성사됐죠. 미 국무부는 한일 지소미아의 연장을 전폭 지지하며 이는 북한 비핵화의 중요한 수단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본이 자랑하는 최첨단 장비로 획득한 군사 정보의 교환은 북한 중국 러시아의 공산·사회주의권에 대항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적 팀플레이입니다. 만약 북한이나 좌익 정당의 희망대로 폐기한다면 이는 대한민국이 고립무원의 ‘안보 미아’가 되고 싶다는 거죠.

힘의 공백을 틈탄 듯 7월 23일, 6·25 휴전 후 처음으로 중국 폭격기와 러시아의 조기경보통제기들이 합동으로 한국방공식별구역에 침입했습니다. 러시아 기는 독도 영공을 침범했습니다. 한국 공군 전투기는 총 18대가 교대로 출격해 러시아 기를 몰아내려고 360여 발의 기총 사격을 가했습니다. 북한도 발을 맞춰 7월 25일 단거리 탄도미사일 추정 발사체를, 7월 31일과 8월 2일에는 신형 방사포를  발사했죠. 트럼프는 동맹국 위험에 눈감으며 위협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대선을 위해 ‘평화’를 팔고 싶어도 영국과 프랑스 독일이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는 규탄 성명을 낸 것과 대조되는 행동입니다.

한일 갈등 증폭에 당황한 문재인 정권은 기업인에게 대책을 촉구하고 국민들은 일본 상품 불매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여주기를 바라는 건가요? 국제 무역 국가답지 않죠. 조국처럼 시대착오적인 죽창가를 읊고, 일본에 특정 물건을 팔라고 압박하기 위해 다른 일본 물건은 사지도 말고, 일본에 가지도 말자는 건 역설입니다. 소재 국산화도 쉽지 않죠. “그렇게 쉽게 된다면 오늘의 문제가 있겠어?” “그래, 열심히 해봐. 우리는 더 멀리 가 있을 테니까”라고 일본 네티즌이 냉소합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한국은 일본 기술을 따라잡는 데 반세기가 걸린다고 말했습니다.

OECD 35개 나라 중 최악의 경제성장률은 더욱 추락할 상황인데 민주당 민주연구원은 한일 갈등이 총선에서 자당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철부지 같은 보고서를 만들어 논란입니다. 수출 규제가 참의원 선거용이라고 아베 총리를 비난하더니 여당이 바라는 게 국가안보인지 정권 안보인지 의심스럽죠.  앞으로 경제난의 책임을 아예 일본에 덮어씌울지도 모릅니다. 만만한 G3 선진국  일본을 버리고 남한 국민총소득(GNI)의 53분의 1 수준인 북한을 파트너로 하여 모험하고 싶나요?  작은 개성공단도 얼마나 논란이 많습니까.  

일본의 반발과 관련하여 와타나베 야스히로 FNN 서울 지국장은 최근 칼럼에서 ‘징용공(강제징용자) 미불금과 피해 보상은 한국 정부가 한일협정에 따른 경제 협력금이라는 거액의 보상금을 일괄 수령한 후 개별 보상을 약속한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협력금을 챙기고 또 돈을 요구하는 것이 부끄럽다. 협정을 무시하고 한국의 신용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걱정했다’고 썼습니다. 반면 문재인 정권은 강제징용자 보상 판결의 숙고를 보수파의 ‘사법 적폐’ 범죄로 보아,  "스스로 만든 구도의 족쇄로 인해 강제징용자 문제에 해결책을 내기 어려운 ‘자승자박'의 배경도 있을 것"이라고 풀이했습니다. 그는 글 끝에서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만약 박 대통령이 탄핵, 파면되지 않았다면 강제징용자 문제가 한일 간에 이렇게 큰 균열은 일으키지 않았을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국제 질서는 냉혹합니다. 일본은 북한 핵과 미사일에 우리보다 더 긴장합니다. 북 미사일이 머리 위로 날아갈 수 있는 일부 지자체는 주민 대피 훈련도 실시합니다. 일본은 한국이 투명하게 공개한다는 전략 물자 수출 위반사례를 한국 야당 국회의원 요구로 드러난 자료로 겨우 알게 되었고 156건의 위반 사례는 기업명도 안 밝힌 부실 자료라고 비판합니다. 그중 102건이 핵무기와 미사일 등 대량살상 무기(WMD) 생산과 밀접하다는 겁니다. 일본 기업이 수출한 전략물자의 행방도 추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한국은 이를 관리하는 양국의 회의에도 불응해 부득이 수출 관리를 강화했다는 것입니다. 일본이 적발한 자료에는 자국 기업 이름과 조치 내용이 상세하게 나옵니다.

문 정부는 사드 배치 반대나 반(反)화웨이 동참 반대, 대중 방어망인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참여 망설임에서 보여준 것처럼 자국은 물론이고 미국과 일본의 안보를 위협할 요소에도 둔감했습니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는 한국의 흐릿한 자유민주국가로서의 정체성으로 인해 높은 반도체 시장점유율이 자유세계에 위험하다고 보기 때문이라는 미·일의 사전 양해설까지도 나옵니다.

외교는 적폐로 청산되는 것이 아니죠. 관제 민족주의로 선동할 일도 아닙니다. 국가에 조약이란 무엇인가, 사법부는 행정부의 외교 행위를 재단할 수 있나? 대한민국에 일본은 어떤 존재인지 냉정하게 자문해야 합니다. 지금의 갈등은 대통령이 밝혔던 ‘과거와 미래, 투 트랙으로 가겠다’던 대일 외교 구상에서 미래가 사라진 파탄입니다. 국가와 집권층은 일본 방사능 오염 지적 등 상처에 소금을 뿌리지 말고 사태가 더 악화하기 전에 이성을 회복하고 정상(頂上)외교로 풀어야 합니다. 

6·25 때 일본이라는 가까운 후방기지가 있어 자유민주 세력인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은 전쟁 수행이 용이해 남한의 공산화를 막았죠. 한반도 유사시엔 또 그 역할을 수행할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공유하는 우방 국가인 일본과의 충돌이 안보 문제로까지 비화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때는 지금이다, 북한에 다가서려고 자유민주주의의 대열을 이탈해 반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북한을 자유민주주의로 끌어들여야 일본을 능가할 날도 올 수 있을 겁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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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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