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가 현실로] 하이닉스, 11년만에 감산… 반도체 장기불황 공포


세계 2위 반도체 회사까지 극약처방… 올해 4분기엔 적자 위기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장기 불황에 빠질 것이란 우려가 팽배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반도체 업계에선 "2019년 2분기에 시황이 바닥을 찍고 반등을 시작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우세했다. 6개월짜리 짧은 불황이 지나고, 다시 대세 상승기가 올 것이란 기대와 전망이었다. 하지만 SK하이닉스가 25일 D램 감산(減産)을 발표하면서 이런 낙관론은 사라졌다. 연내 반등은 사실상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지금의 반도체 시장 전망은 '암흑 속'이다. 자칫 내년에도 불황이 이어지는 최악의 상황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2년 이상의 장기 불황도 걱정해야 할 상황"이라며 "SK하이닉스는 인위적으로 공급 물량을 줄여서라도 이런 장기 불황을 막겠다고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의 장기 불황은 2010~2012년이다. 당시 세계 3위인 일본 엘피다메모리가 불황을 못 견디고 파산했다.




2년짜리 장기 반도체 불황 우려 팽배
현재 세계 반도체 시장은 수요가 줄면서 넘쳐나는 재고를 감당할 수 없는 상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재고 자산(올 3월 기준)은 각각 14조5796억원, 5조1175억원이다. SK하이닉스는 25일 실적 발표 후 콘퍼런스콜에서 "2분기 D램 재고가 예상보다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대로라면 올 4분기엔 SK하이닉스는 적자를 낼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공급이 넘치니 가격은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 한·일 갈등 우려로 소량 거래되는 현물가는 상승했지만, 고정거래가는 여전히 하락세다.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올 6월 기업 간 대규모 거래에 쓰이는 D램(DDR4 8Gb) 고정거래가는 개당 3.31달러로, 작년 12월(7.25달러)의 절반 수준이다.



일본이 자국산 반도체 소재의 수출 규제를 강화하는 것도 국내 반도체 업계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현재는 재고로 비축한 불화수소를 사용하며 반도체를 만들고 있지만, 소재 공급 중단이 장기화될 경우 생산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벤더(거래 업체) 다변화, 공정 투입 최소화 등을 통해 생산 차질이 없도록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兆) 단위 적자 우려 현실화하나
감산은 반도체 업체의 '불황 속 살아남기' 전략이다. SK하이닉스는 25일 D램 감산 발표와 함께 경기도 이천의 D램 생산 라인 일부를 이미지센서 제조 라인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수요가 적은 20나노미터급 반도체 생산은 줄이고 10나노급 반도체 생산 비중을 연말까지 80%로 확대한다고도 했다. 다른 주력 제품인 낸드플래시 메모리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는 올 4월 낸드플래시를 10% 감산한다고 발표한 데 이어, 이날은 감산 폭을 15% 이상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투자도 줄인다. SK하이닉스는 내년 하반기 준공 예정이었던 경기도 이천 M16 공장의 장비 반입 시기를 늦추고, 충북 청주에 있는 M15 공장의 클린룸 확대 계획도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앞선 3월엔 세계 3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미국 마이크론도 D램과 낸드플래시 5% 감산을 발표했고, 지난 6월에는 낸드플래시 감산량을 10%로 확대했다. 마이크론은 6월 콘퍼런스콜에서 "2020년 설비 투자 규모도 현저히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대외적으로 변수가 너무 많아 언제 반도체 경기가 살아날지 알 수 없다"며 "자칫 조 단위 적자를 보는 반도체 기업이 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반도체 감산 삼성전자로 확대되나
반도체 업계의 눈은 삼성전자로 집중된다. 삼성전자가 생산량을 늘리는지, 줄이는지에 따라 세계 반도체 시장의 향배가 갈릴 것이기 때문이다. 1위 업체인 삼성마저 생산량을 변동하면 전 세계 IT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 2010~2012년엔 반도체 업체들이 불황기에도 생산량을 늘리며 '치킨게임'을 벌였다.

삼성전자 측은 "감산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넘쳐나는 재고를 처리하기 위해 생산량 조정폭을 늘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전자는 D램 미세공정 전환에 따른 자연 감산 효과가 일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며 "줄어든 물량을 그대로 놔두는 식으로 수급을 조정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반도체 업계는 세계 2·3위 반도체 기업인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감산에 삼성전자의 물량 조절까지 더해져 반도체 시장이 회복되길 기대한다. 업계 관계자는 "미·중 무역 분쟁이 빨리 마무리되고, 일본 경제 보복도 해결되며, 반도체 업체의 감산이 이뤄지는 3박자가 모두 맞아야 겨우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민 기자, 강동철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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