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코드는 어디에 있을까 [정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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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코드는 어디에 있을까 [정연한]

2019.07.13

인생의 가장 큰 목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거의 대다수가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답할 것 같습니다. 인류사 이래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수많은 현자들이 인생 최고의 덕목이 행복이라고 했으니 어쩌면 당연히 예상되는 대답이리라 여겨집니다.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으로 규정되기도 하는 부(property), 권력(power), 명예(prestige) 등 이른바 3p 획득을 위하여 애를 씁니다. 그렇다면 행복은 사람이 찾아가서 발견하거나 쟁취해야 하는 대상일까, 아니면 어느 순간 우리에게 찾아오는 귀한 손님 같은 것일까 하는 다소 생경한 행복코드에 관한 생각을 해 본적이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행복이나 꿈은 찾는 자만이 발견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한편으로는 물질적인 풍요를 추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적인 수양을 통하여 행복을 찾으려고 갖은 노력을 합니다. 그러노라면 어느 순간 행복이 숨어있는 곳을 발견하고 반가운 해후를 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또 다른 부류의 사람은 행복은 찾아가는 대상이 아니라 봄 아지랑이처럼 소리 없이 다가오는 그 무엇이라고 합니다. 이들에게 행복이란 그 속성상 찾으려고만 하는 경우 찾지도 못할 것이거나, 또는 어느 순간 살며시 다가 온 그것이라도 다른 찰나에 사라질지 모른다는 일종의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옛 시인은 이렇게 읊고 있습니다. 終日尋春不見春 (종일심춘불견춘) 芒鞋遍踏隴頭雲 (망혜편답농두운) 歸來笑撚梅花臭 (귀래소연매화취) 春在枝頭已十分 (춘재지두이십분). 중국 송나라 때 한 여승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이 시는, 봄을 찾기 위해 종일 돌아다녀 보았지만 끝내 발견하지 못했고, 찾아 헤매다 지쳐 집에 돌아오니 봄 향기가 나서 둘러보니 봄은 이미 집 나뭇가지에 앉아 있더라 라는 것입니다. 즉, 봄은 찾을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겨울을 보내고 봄 맞을 준비를 착실히 하는 사람에게는 따스한 봄날의 행복은 아지랑이처럼 살포시 산에서 내려와 찾아듭니다.

수년 전 세계의 독서계를 울린 랜디 포시는 미국의 사립 명문 카네기 멜론대학의 컴퓨터공학 교수였습니다. 그는 47세의 젊은 나이에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당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상황에서도 마지막 강의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어릴 적 꿈, 진짜로 이루기’ 제하의 강의 내용을 토대로 한 책 ‘마지막 강의(last lecture)’를 펴냈습니다. 미국에서 출판되자마자 아마존과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미국인과 세계인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는 생애 마지막 강의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강의는 어떻게 당신의 꿈을 달성하느냐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어떻게 당신의 인생을 이끌어 갈 것이냐에 관한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인생을 올바른 방식으로 이끌어간다면, 그 다음은 자연스럽게 운명이 해결해 줄 것이고 꿈이 당신을 찾아갈 것입니다.” 꿈이나 행복은 그 자체가 달성목표가 아니라 올바른 인생을 산다면 그것들이 찾아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동양인이 생각하는 행복이 서양 사람들이 생각하는 해피(happiness)와 같을까요. 그 차이는 아마 한자말 ‘행복(幸福)’에서 그 단초의 일부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먼저 행(幸)자를 파자(破字)해보면 열 십(十)자에 매울 신(辛)자가 결합되어 ‘다행 행’ 자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즉 행복은 열 번의 힘든 상황 후에 다행스럽게 맞게 되는 복이라는 다소 거친 풀이가 가능합니다. 처음에 이 설명을 들은 아내로부터 행복을 고통스럽게 해석하려는 별스런 취미라고 핀잔을 받기도 했지만 행복은 말 그대로 ‘다행스러운 복’입니다. 우리가 보통 다행스럽다고 이야기할 때 그것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또는 걱정스러운 가운데서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 하는 표현입니다. 이때 느끼는 안도감, 체내에서 근심으로 인해 생성된 아드레날린이 기쁨으로 인한 엔돌핀이나 도파민으로 바뀌는 심적 상태가 바로 ‘다행스런 복’ 감정일 것입니다.

찾아온 행복을 갈무리하는 방법에도 선조들의 지혜는 빛납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좋은 일(행복)은 홀로 오지 않으며 반드시 방해하는 일이 뒤따를 수 있다는 경구입니다. 옛사람들의 행복을 관리하는 방법의 키워드는 만족함을 아는 지족(知足)입니다. 지족불욕(知足不辱), 부지족 귀부역우(不知足 貴富亦憂), 즉, 만족을 모르고 과도한 욕심을 부릴 때 어렵사리 찾아온 행복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그 자리는 욕됨과 근심으로 채워진다는 명심보감의 경구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흔히 목도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사회적. 경제적 스트레스로 세파에 지친 청년들은 상처받은 심신을 어루만져주는 힐링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신기루 같은 행복을 찾아 헤매는 그들에게 ‘행복은 인생에 있어 일련의 매운맛을 본 후에 찾아오는 귀한 손님(珍客)’이며, 이 진객 관리 여하에 따라 행복 수준이 결정된다라는 옛사람의 가르침을 운운하는 것은  구세대의 개인적 경험에 매몰된 사람의 걸맞지 않는 생각일까요.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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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연한

스탠포드대, 매사추세츠대 석·박사(교육정책), 교육부 국장, 대구시·인천시 부교육감,
하와이 East-West Center 고위급 교육전문가, 한국외국어대학 초빙교수 역임
현재 글로벌미래교육연구소 대표, 성신여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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