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법…일 아니면 구걸, 도둑질 [김홍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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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법…일 아니면 구걸, 도둑질

2019.06.12

19세기 미국 정치인이자 경제학자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는 인간을 세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근로자·거지·도둑입니다. 재물을 얻기 위해서는 노동하든가, 구걸하든가, 아니면 훔치는 세 가지 길밖에는 없다는 분석입니다.
분류의 기준은 관습 종교 민족 문화 사상 거주지 피부색 지배구조 등 수십 가지가 있지만, 현재 인간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재화의 하나인 돈을 확보하는 방법으로는 조지의 분류가 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돈벌이 수단으로 구걸이나 도둑질을 처음부터 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동냥아치는 안정된 수입원이 없어 항상 배고프고 비굴함을 면할 수 없습니다. ‘생매장된 황제보다는 거지로 지내는 편이 낫다’(라 퐁텐)지만, ‘거지는 모두 사라져야만 한다. 결국 무언가를 준다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아무것도 안 주는 것도 마음에 걸리니까’(니체)라고 했으니 말입니다.
도적질은 더 어렵습니다. 훔친 돈으로 부자 되는 사람 없고(한국 속담), 도둑은 담장을 넘어 집 안으로 들어가지만 끝내는 큰 문을 통해 감옥으로 들어가니까(러시아 속담).

결국은 일해서 돈을 벌 수밖에 없습니다.
해 뜨면 나가서 일하고 해지면 집에서 쉬고(日出而作 日入而息;일출이작 일입이식)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밭을 갈아 끼니 때우니(鑿井而飮 耕田而食;착정이음 경전이식)
임금의 힘이 내게 무슨 소용 있으랴(帝力于我何有哉;제력우아하유재)
아득한 옛날 중국 선사시대 요(堯)임금 시절 태평연월을 찬양한 격양가(擊壤歌)입니다.
일거리가 있어 먹거리가 해결되면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다는 세태와 민심의 단면입니다.

# 루소 “놀며 살고 있는 시민은 모두 사기꾼이다”

서양도 다를 바 없습니다.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는 ‘노동은 모든 것을 정복한다’고 상찬했고, 유태(猶太 Judea) 경전은 ‘자식에게 육체적 노동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그에게 약탈 강도 준비를 시키는 것과 다름없다’고 경고했습니다.
근세에 들어서도 ‘일한다는 것은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의무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강자나 약자나, 놀며 살고 있는 시민은 모두 사기꾼이다’(루소), ‘노동이 집안으로 들어오면 빈곤은 도망쳐 나간다. 그러나 노동이 잠들어 버리면 빈곤이 창틀로 뛰어 들어온다’(서양 속담)‘고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문제는 일자리입니다.
우리 헌법도 근로를 교육 국방 납세와 함께 국민의 4대 의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지난 2년 동안 세금을 쏟아부어 공무원 수를 늘리고, 소득주도 성장을 주창해 왔습니다. 기업의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독려하고, 밤(가정)과 낮(일터)이 두루두루 즐겁도록 근로시간 단축을 밀어붙였습니다.
또 문재인 대통령은 보름 전 바이오헬스산업 연구개발에 2025년까지 연간 4조 원씩 투자해 5대 수출 주력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보다 앞서 정태호 청와대 일자리수석비서관은 “고용상황이 작년보다 획기적으로 나아졌다”고 기자간담회에서 밝혔습니다.

그러나 소득주도 성장과 주 52시간 근로 강행 2년이 지난 요즈음 새벽 인력시장에 간 막노동 아빠는 오늘도 빈손으로 돌아왔고, 인건비 부담을 못 견딘 소상공인·자영업자 100여만 명이 줄줄이 장사를 걷어치워 최저 소득층으로 몰락했습니다. 지난달 23일 통계청이 발표한 ‘1분기 가계동향조사(소득부문)’ 결과 가처분소득(전체 소득에서 세금·이자·보험료 등 비 소비 지출을 뺀 금액)은 2년 전보다 31.8% 줄었습니다. 근로소득(40% 감소)은 더욱 쪼그라들어 스스로 돈 벌기보다 정부 지원에 더 의존하는 국민이 1,000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로봇과 인공지능(AI)의 발전은 일자리를 더욱 줄일 전망입니다.

‘최저임금 1% 올릴 때마다 일자리 1만 개씩 사라졌다’(경제사회학회), ‘신산업과 노동생산성…두 과제 못 풀면 성장률 1%대로 추락한다’(KDI)는 경보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옵니다. 그런 와중에 재벌 기업들은 해외 투자로 물꼬를 돌리고 있습니다. 롯데는 한 달 전 미국 루이지애나에 3조7,000억 원짜리 에틸렌 공장을 준공했고, 인도네시아(약 4조 원) 베트남((1조8,700억 원)에도 진출합니다. SK는 베트남 2위 기업 마산(MASAN)그룹에 이어 최대 기업 빈(VIN)그룹에 1조2천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부자들은 뉴욕·도쿄 등 해외 부동산에 눈독을 들이고, 이민상담 행사에도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합니다. 행여 기업의 해외투자가 강성 노조와 정부의 반(反)기업 정서에 몸서리가 나 고국을 등지는 도피 행각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 문병란 “단련 없이 명검은 날이 서지 않는다”

‘일자리가 늘어났다’ ‘내년부터 좋아질 것’ 같은 정부의 낙관론이 실제로는 ‘희망고문’이라는 사실은 국민이 다 아는 체감경제입니다. 퍼주기식 포용경제? 거지 근성만 키울 뿐입니다.
일자리, 특히 젊은이들의 근로의욕은 노동의 숙련화를 통한 생산성 증대로 이어집니다. 일자리가 없어 결혼을 못하고 출산도 주저하면 인구 감소로 노동인구가 줄어듭니다. 근로자가 줄면 노령인구 부양 비율이 늘어납니다. 일해서 버는 돈이 없으면 소비가 위축돼 공황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젊은이가 부모 집에 기생하고 부모 지원에 기대면 결국엔 자산 붕괴로 이어집니다. (2015년 6웥 19일 '김홍묵 촌철-일자리·출산, 왜 중요한가' 참조)

‘잃어버린 20년’ 몸살을 떨치고 재도약하고 있는 일본에서 오늘날까지 로스트 제너레이션(lost generation)이 겪고 있는 트라우마는 우리 정부와 젊은이들에겐 반면교사가 될 법도 합니다.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란 기업들이 신입사원 채용을 줄이기 시작한 ‘취업 빙하기’(1993~2004년 경)에 사회에 진출한 세대를 일컫습니다.지금은 나이 33~48세의 중장년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임시직이나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다 보니 급여도 행복도도 다른 세대에 밑돕니다. 벌이가 시원치 않으니 연애·결혼도 포기한 초식남(草食男) 건어물녀(乾魚物女)로 지내다가 중장년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61만3,000명 추산)로 변하고 있다고 합니다.

청년 일자리가 없거나 줄어든다는 것은 국력 쇠퇴, 국가 소멸의 전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1706~1790)은
“여러분은 백년을 살 작정으로 일하라. 아니면 내일 죽는다 셈 치고 놀아라”고 했습니다.
시인 문병란(1935~2015)도 <희망가>에서 “시련 없이 성취는 오지 않고, 단련 없이 명검(名劍)은 날이 서지 않는다”고 읊었습니다.

우리가 개척해야 할 미래를 위해선 정부는 물고기를 공짜로 주는 예수를 자처하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고, 청년은 시련을 딛고 일어서는 용기와 지혜로 날을 갈아야 합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한국을 먹여 살릴 오지랖 넓은 나라는 하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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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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