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보 열자 농사 망치고 염소 폐사…금강 농민도 “소송 간다”

낙동강 보 주변 농가 영농 피해 호소
상주시 낙동면 주민 7명은 배상 요구
창녕함안보 인근 농민 46명은 배상 받아
공주보 인근 주민 피해 사례 접수중

    16일 낙동강 구미보에서 20여㎞ 상류에 위치한 경북 상주시 낙동면의 한 비닐하우스 농가. 채소 농사를 짓고 있는 정연진(47) 씨는 최근 농장 앞에 100m짜리 지하수 관정(우물)을 새로 팠다. 올해 초 구미보가 개방됐을 때 강 수위가 낮아지면서 지하수위도 떨어져 20m짜리 관정으로는 물을 퍼 올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1월 24일 낙동강 구미보 수문을 개방했다. 수문이 열리면서 기존 32.5m였던 구미보 해발 수위는 7m가량 낮아졌다. 보 개방은 상류에 영향을 미쳐 상주시 낙동면 인근은 바닥을 드러냈다. 사람이 걸어서 강을 건널 수 있을 정도였다.

경북 상주시 낙동면 한 오이 농장에서 물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해 잎이 누렇게 마른 모습. [사진 독자제공]
 
정씨는 비닐하우스 6개 동에 쌈배추 2만3000여주를 심었는데, 갑자기 농업용수 공급을 못 해 절반 이상 수확하지 못했다고 한다. 인건비와 비료·영양제·농약 등 들어간 돈까지 다 합치면 3000만 원의 피해를 봤다. 
  
정씨는 “구미보 수문을 열고 일주일 뒤 관정 펌프를 틀었는데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원래 3분 정도면 가득 채울 수 있었던 500L 물통을 1시간이나 담았는데도 다 채우지 못했다”며 “그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쌈배추에 물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해 농사를 망쳤다”고 말했다. 


  
정씨는 “구미보 수문을 열고 일주일 뒤 관정 펌프를 틀었는데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원래 3분 정도면 가득 채울 수 있었던 500L 물통을 1시간이나 담았는데도 다 채우지 못했다”며 “그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쌈배추에 물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해 농사를 망쳤다”고 말했다.

오이 농사를 짓는 A씨(45)도 2억 원의 손해를 봤다. 지하수위가 낮아져 관정이 제 역할을 못 해 잎이 누렇게 마르는 현상이 나타나고 오이가 끝이 뾰족해지거나 구부러졌다. 
 
A씨는 “겨울이라 그나마 피해가 작았지 지금처럼 농번기에 물이 끊겼으면 농민들이 큰일 날 뻔했다”고 전했다.

“흙탕물 마신 새끼 염소 50여 마리 폐사”

경북 상주시 낙동면 한 염소 농장 인근 관정에서 퍼올린 지하수. 흙이 섞여 탁한 모습이다. 상주=김정석기자

인근 염소 농장도 보 개방 때문에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하수위가 낮아져 관정에서 흙탕물이 쏟아졌고, 그 물을 마신 어린 염소들이 잇달아 폐사했다고 한다. 이 농장 관정에서는 여전히 뿌연 흙탕물이 나오고 있었다.
  


농장에서 일하는 장영국(47)씨는 “최근 1~2개월 된 어린 염소 50여 마리와 새끼를 밴 어미 염소가 집단 폐사하는 일이 있었는데 흙탕물을 마셔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구제역 같은 질병으로 인한 폐사가 아닌 이상 염소가 무더기로 폐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보 개방으로 피해가 난 상주시 낙동면 주민 7명은 지난달 환경부 중앙분쟁조정위원회에 피해 배상을 청구했다. 농가당 많게는 2억원부터 적게는 650만원까지 총 4억2650만 원이다. 상류의 낙단보 인근에 사는 농민들도 보 개방으로 인해 농작물 피해를 봤다며 분쟁조정위에 5억 7000만 원의 피해 배상을 청구했다.

이렇게 낙동강 중상류 지역에 농민 피해가 집중된 건 환경부가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보 개방을 모니터링한다며 상주보와 낙단보, 구미보의 수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보 개방 이후 이 지역에서만 93건의 피해 민원이 접수됐다.
 
보 개방 피해 첫 인정…공주보 농민도 소송 준비

공주보 철거를 반대하는 주민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보 개방으로 인한 피해는 이곳만의 문제가 아니다. 앞서 낙동강 하류인 창녕함안보 인근 합천 광암들 농민 46명도 지난해 9월 환경부·수자원공사를 상대로 농작물 피해배상을 요구했다. 창녕함안보는 2017년 말 개방됐다. 


 
분쟁조정위는 지난 6일 이들 농민에게 8억 원을 배상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4대강 보 개방과 관련해 농민의 피해가 인정된 첫 사례다. 환경부는 분쟁조정위의 결정을 수용해 배상금을 지급할 방침이다.
 
분쟁조정위의 결정 이후 다른 지역에서도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금강 공주보 인근 주민들도 소송을 준비 중이다.

충남 공주시 우성면 일대 주민들은 지난 3월부터 영농피해 사례를 모으고 있다. 현재 우성면 목천·기산리 일대 50여 농가가 지난겨울 공주보 개방으로 비닐하우스 작물에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확한 피해액은 아직 산정되지 않았다. 농민들은 우선 오는 20일까지 피해사례를 모아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공주시 우성면 평목리 윤응진(55) 이장은 “지난해 3월 공주보를 개방하면서 금강 수위가 인근 농경지보다 낮아져 지하수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며 “지하수가 나오지 않으면 석유 등을 이용해야 해 난방비용이 종전보다 30% 이상 더 든다”고 말했다.  



지하수 피해 크지만…보상 절차 없어
보 개방으로 인한 피해는 대부분 지하수와 관련돼 있다. 보에 물이 가득 차 있는 ‘관리수위’ 기준에 맞춰 관정이 개발돼 있다 보니 보 개방으로 수위가 내려가면 지하수 공급이 끊겨 곧장 농작물 피해로 이어진다.
  
환경부 4대강 조사평가단 관계자는 “4대강 관리에서 가장 취약한 영역이 바로 지하수 문제”라며 “조심스럽게 수위를 낮추는데도 워낙 불확실성이 크다 보니 일시적으로 지하수가 끊기는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는 보 개방으로 피해가 있더라도 실제 보상을 받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4대강 사업 당시에는 하천법에 따라 인근 농민에게 피해를 보상해줬다. 하지만, 보 개방에 따른 피해는 보상 근거가 없어 분쟁조정위나 소송 절차를 밟아야 한다. 창녕함안보 피해 농민들도 배상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8개월 넘게 기다려야 했다.  


 
이에 대해 조사평가단 관계자는 “분쟁위로 가더라도 당사자 간에 합의할 수 있는 조정 절차를 밟도록 안내하고 있다”며 “농작물 피해 예방을 위해 관정 개발 등 지하수 대책도 함께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대전=김방현 기자, 상주=김정석 기자,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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