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디지털의 두 얼굴 [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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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디지털의 두 얼굴

2019.05.10

보통 사람들의 뇌리에선 잊혔을지도 모르지만, ‘얼리 어댑터’로 뉴미디어에 관심이 많은 나는 ‘최순실 태블릿PC’ 조작을 주장해 JTBC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 중인 미디어워치 대표 고문 변희재 씨 사건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박주영 판사는 작년 12월 변씨 등의 태블릿PC 입수 경위 및 조작 주장에 대해 “구체적인 근거를 밝히지 못했다. 적시한 사실이 허위라는 게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충분히 입증됐다. 추가 보도가 '사소'한 부분에서 최초 보도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복적으로 악의적 보도를 했다고 단정하고 사실 확인을 하지 않았다”며 징역 2년을 선고했습니다. 이런 뉴스를 보면서 헌정사 초유의 대통령 탄핵, 파면으로 연결된 중차대한 보도에서 팩트의 ‘차이’를 무슨 잣대로 ‘사소’하다는 건지 알 수는 없습니다. 만일 '사소'하다는 것이 관용론이라면 대형 언론인 원고보다 오히려 소형 언론인 피고에게 더 필요한 게 아닐까요. 팩트가 사소한 차이인지는 상급심에서 계속 판단할 거고요. 어쨌든 사전 구속돼 방어권을 빼앗긴 명예훼손 언론인의 실형 선고는 OECD 나라에 유례없다는 비판과 우려가 해외에서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4월 24일, 태블릿PC 조작 의혹과 탄핵 재판을 집중 검증해온 우종창 대기자는 ‘거짓과 진실’ ‘대통령을 묻어버린 거짓의 산’ 203편에서 IT 서포터들과 함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포렌식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JTBC 측이 태블릿PC를 갖고 있던 2016년 10월 24일 오후 5시 11분, 검찰에 태블릿을 제출하기 2시간 전에 잠금 패턴을 새로 심었다는 걸 찾아냈다고 보도하면서 특검을 주장했습니다. 첫 암호는 2012년 6월 25일 김한수가 만들었고 두 번째인 이 암호는 device_policies.xml 파일로 저장됐답니다. 중형을 때린 재판부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JTBC는 2016년 최순실 씨는 태블릿PC를 들고 다니면서 ‘이를 통해서’ 대통령 연설문을 고쳤다고 보도했습니다. 물론 말미에 꼭 그런 것은 아니라고 흐렸지만, 태블릿을 쓸 줄도 모른다고 말한 최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빨갛게 고쳤다고 소위 ‘국정농단’ 프레임의 분노를 부채질한 건 분명했습니다. 태블릿엔 문서 수정 프로그램도 없었는데요. 지금은 고친 게 중요하지 태블릿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식입니다. 그럼 뭘로 고쳤다는 건가요? 

법조 전문인 우 기자는 “JTBC 김필준 기자가 잠금 패턴이 ‘여자 친구 및 제 것과 같아서(고소장)’, ‘제 것과 같아서(재판 증언)’, 쉽게 풀 수 있었다는 '최순실 태블릿'의 L자형 잠금 패턴이 새로 심어졌다”는 놀라운 ‘팩트’를 밝힌 겁니다. 박영수 특검마저 최씨는 핸드폰도, 태블릿도 잠금 패턴이 모두 L자라고 했었습니다. 

‘위법증거수집배제원칙’, ‘독수독과(毒樹毒果, Fruit of the poisonous tree)’이론을 들먹일 것도 없이 ‘증거물은 훼손할 수 없다’는 디지털 포렌식 수사 규칙을 위배했으니 법치와 민주적 기본질서의 훼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 기자는 포렌식 보고서가 3만여 쪽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3,300페이지가량 되는 포렌식 분석 보고서 파일을 훑어보았습니다. 최씨 측 이경재 변호사가 법원에 감정을 신청해서 나온 것입니다. 분석 보고서에 등장하는 사진이나 파일로 볼 때 ‘최순실 할머니’의 것이라기보다는 대선 팀의 젊은 사람들이 공유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대통령 선거 이전의 내외신 보도와 후보 유세, 취임 전의 말씀 자료가 많이 있었고 대선 팀의 공용 메일인 ‘greatpark1819’ 같은 g메일 기록이 있었죠. 대선 팀에서 일한 신혜원 씨가 이미 공용이었다고 주장했었습니다. 

많은 언론이 ‘국과수, 최순실 태블릿 맞다’라고 보도했지만, 국과수는 포렌식과 관련한 법정 증언에서 ‘최순실 태블릿PC’라고 단정하지 않았습니다. 국과수 연구관은 2018년 5월 최순실 재판에서 태블릿PC는 여러 사람의 사용 가능성도 있다면서 재판부가 포렌식 보고서를 보고 판단할 일이라고 증언했습니다. 새 잠금 패턴의 생성은 이전 비밀번호를 알아야 한다는 점에서 최초 개통자나 사용자들의 공조 가능성도 보여줍니다. 이는 JTBC 보도대로 ‘탄핵의 직접적 증거(스모킹 건)’가 된 물건의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의 합리적 추론일 겁니다. 

디지털은 손을 댄다 해도 흔적이 남아 거짓말을 못 합니다. 이 디지털 기기의 ‘팩트’를 사법부가 사건 심리에 적용하지 않기 때문에 국민이 진실을 밝히려고 고생하는 것입니다. 사용자가 누군지 쉽고 분명히 가르쳐줄 카카오톡 대화와 연락처는 누가, 왜 삭제했을까요? 재판부는 피고 측이 요구한 핵심 증거물인 태블릿PC 감정도, 카카오톡 복원 신청도, 피해자라는 손석희 사장의 증인 신청도 기각했습니다. ‘감옥에 갇히면 진실이 밝혀질 줄 알았는데…’. 변 고문은 탄식합니다. 궁금합니다. 왜 재판부는 수천만 명의 국민이 스마트폰으로 카카오톡을 사용하는 최첨단 디지털 시대에 사용자를 특정할 단순명료한 사실을 조사해 진실을 밝히지 않을까요? 디지털로 진화하지 못했나요, 권력 눈치를 보나요. 그런 식이라면, 막중한 자리를 떠나 다른 돈벌이에 나서는 게 국가를 위해 나을 것입니다. 변희재 씨는 포렌식 보고서의 분석을 미국 전문기관에 의뢰했다고 합니다. 

로마 신화에서 따온 ‘Justitia'라는 정의의 여신상은 눈을 가린 채 칼과 저울을 들고 있습니다. 공정과 공평, 선입견의 부재를 나타낸다는 거죠. 만약 태블릿PC 사건을 일본이나 미국 등 선진국에서 재판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은 눈을 뜨고 있다던데 사람을 보고 재판한다는 것인가요?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사법부 신뢰가 추락했습니다. 무슨 연구회 출신이 들먹여지는 것 자체가 법관은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한다는 헌법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봅니다. 좌익의 구미에 안 맞는 판사가 인신공격 받고 청와대 청원으로 매도되고, ‘적폐’로 몰려 수사 대상이 되는 현실입니다. ‘독주’에서 ‘폭주’, 드디어 ‘독재’라고 비판받기 시작한 문재인 정권에게 검찰과 법원이 설설 기는 것 같죠. 또 판·검사, 경찰을 주 수사 대상으로, 안기부를 능가하는 공직범죄수사처가 생긴다면 못할 게 없는 기구가 될 게 분명해 보입니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삼권분립의 민주적 법치를 위배하는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태블릿PC 사건은 시간문제일 뿐 특검의 날이 오리라고 봅니다. 그때 보도한 기자들, 수사 검사, 국과수 담당자 등이 죄다 조사를 받게 되겠죠. ‘미래는 중요하지 않아, 사람들은 망각할 테니까’라고 자위할지 모르지만 앞날은 편안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지난 1월 14일 박대출, 김진태, 조원진 의원 등 12명의 국회의원은 ‘JTBC 태블릿PC 등 조작사건 규명 특검법안’을 발의했죠.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도 후보 시절 조작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이제는 독립적인 특별검사가 진실을 가려내서 논란을 종식해야 합니다. 8,840만 건의 김경수, 드루킹 대선 여론조작을 밝혀낸 특검처럼. 

민주당은 최근 정치 법안과 사법 관련 법안의 국회 발의에 국회법에 없는 전자 시스템을 썼습니다. 대면과 타협의 의회 정치 본령을 무시했죠. 그렇게 전자로 할 거면 너무 넓은 의사당은 줄여서 서민 아파트 짓고, 표결도 카카오톡이나 휴대폰 메시지로 하면 어떨까요? 필수적인 디지털의 판단은 외면하면서 필요할 때만 선별하는 후진적 행태를 디지털 결재라서 참 선진적이라고 손뼉 치고 환호해줄까요. 태블릿PC 재판이건, 특검이건 디지털 사건도 모두 동등하게 대우하여 공을 들이라는 겁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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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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