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가격 지침 슬쩍 바꾸고…제대로 안 알린 국토부


단독주택 공시가격 업무 둘러싼 국토부의 정책 혼선
자치단체에 필요한 정보는 안 알리고 뒤늦게 오류라며 적극 개입
공시가격 추가 조사와 한국감정원 감사 결과는 감감무소식

    주택공시가격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공동주택(아파트ㆍ연립)과 개별단독주택의 공시가격 초안의 열람이 시작된 지난달부터 확정안이 공개된 지금까지, 공시가격에 대한 형평성 논란 등 혼선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특히 단독주택 공시가격을 둘러싼 혼선의 중심에는 부동산 정책의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와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법적으로 자치단체의 권한에 맡겨진 개별 단독주택 공시가격 결정에 대해 국토교통부가 개입하면서부터 갈등은 시작됐다.

물론 단독주택 가격공시에 국토부가 일정 부분 개입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개별주택 공시가격의 기준이 되는 표준주택에 대해서는 국토부가 공시가격을 결정하는 등 각자의 역할이 나뉘어 있고, 서로 업무를 조율하고 협력해야 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넘지 말아야 할 부분에서는 선을 넘어서고, 알려야 할 부분에서는 제대로 알리지 않는 국토부의 막무가내식 정책 추진이 갈등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뒷이야기를 통해 공시가격 혼선의 이면을 짚어본다.


#뒷이야기1 - 전국 자치단체에 내려온 국토부의 공문 한 장

지난 2월 중순, 서울의 한 구청에 국토교통부에서 내려보낸 짤막한 공문 한 장이 접수됐다.

각 시군구에서는 비교표준주택 선정 결과 및 개별주택 공시가격(안)에 대한 검증이 표준주택 공시가격 추진방향과 부합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시1) 중저가 개별주택의 공시가격 산정 시 시세가 급등한 고가표준주택을 비교표준주택으로 선정한 경우 중저가 표준주택으로 교체 검토

(예시2) 고가 개별주택의 공시가격 산정 시 중저가표준을 비교표준주택으로 선정한 경우 고가 표준주택으로 교체 검토 



공문을 받아든 A구청의 공시가격 담당자 B씨는 "솔직히 공문 내용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공시가격은 매년 같은 매뉴얼에 따라 기계적으로 해오던 업무인데, 아무런 설명이 없다 보니 뭘 어떻게 바꾸라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B씨의 궁금증은 공시가격 검증을 위해 구청에 나와 있던 한국감정원 직원들과의 대화에서 풀렸다. 감정원 직원들은 이 공문이 "공시가격을 현실에 맞게 높이라는 정부의 방침에 따른 것"이라면서 "고가의 주택은 고가의 표준주택을 비교표준으로 삼고, 중저가 주택은 중저가의 표준주택을 비교표준으로 삼으라는 의미"라고 전했다.

하지만 여전히 B씨에게 고민은 남아있었다. 고가의 주택이라면 얼마짜리 주택을 말하는지. 비교표준의 범위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등 모호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B씨의 고민은 실무자 개인의 단순한 의문이었을까? 아니면 업무에 대한 이해부족이었을까? 아니다. 확인해보니 상당수의 자치단체 공시가격 실무자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문제였다. 이같은 현장에서의 혼란은 이후에 벌어질 공시가격 논란의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뒷이야기2 - 슬며시 바뀐 공시가격 지침…주요 변경내용 누락

시간을 조금 더 이전으로 돌려보자. 지난해 11월 국토부는 '2019년도 적용 개별주택가격 조사・산정지침'을 발행했다. 일선 자치단체에서 개별주택가격을 산정할 때 기준으로 삼는 일종의 공식 참고서라고 할 수 있다.

2019년도 지침은 2018년도에 비해 뭐가 달라졌기에 이렇게 공시결과도 달라진 걸까. 지난해와 올해의 산정지침을 한 페이지씩 비교해봤다. 산정지침은 분량으로 봤을 땐 99% 동일했다. 하지만 <Ⅲ. 비교표준주택 선정 - 3.비교표준주택의 선정기준> 항목에 한 단어가 달라진 게 눈에 띄었다
'유사가격권'이라는 용어가 '유사한 가격수준'으로 바뀐 것이다. 단순한 단어 하나의 어감 차이일까? 전문가에게 검토를 의뢰해보니 그렇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주택 가격은 각종 공적 규제, 물리적 조건, 주위 환경 등에 따라 비슷한 가격대를 갖는 권역으로 구분되는데, 이를 '유사가격권'이라 부른다. 통상적으로 '유사가격권'은 도로, 지장물, 공적 규제선 등을 기준으로 그 경계가 설정된다.

전동흔 법무법인 율촌 고문은 "기존에는 비교표준주택을 선정함에 있어서『주택가격형성이 유사한 지역적 범위』가 우선이었다면 바뀐 지침에서는 『유사한 지역적 범위』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유사한 가격수준에 해당하면 표준지로 선정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 차이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서, 예전에는 참고 대상으로 삼는 표준주택을 정할 때 얼마나 가까운지가 중요했다면 바뀐 지침에서는 거리보다 가격이 더 중요해졌다는 해석이다.

문제는 이런 맥락이나 설명이 자치단체에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참고서라도 설명이 부족하면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이 참고서는 내용도 복잡한 데다가 26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이 방대한 공시가격 지침에서 중요한 기준점이 되는 개념이 바뀐 셈인데, 신구 대조표에 해당하는 '주요 변경내용'에는 아예 이런 단어 변경 내용이 빠지기도 했다. 바뀐 내용을 자세하게 알리기는커녕 오히려 슬쩍 넘어가려고 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담당부서인 국토부 부동산평가과의 한정희 과장은 "단어변경이 중요 변경내용에서 빠진 것은 단순한 실무자의 실수이며 다른 의도는 없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공시가격 산정의 틀이 바뀔 정도의 중요한 개념 변화를 국토부가 충분한 의견수렴과 공지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했다는 비판은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뒷이야기3 - 앞에서는 '자치단체 존중', 뒤에서는 감정원 통해 '개입'

국토부는 지난달 1일 표준 단독주택과 개별 단독주택의 공시가격 차이가 논란이 되자 점검에 착수했다. 그리고선 보름 정도 지난 뒤인 17일 서울 8개 구에서 개별 단독주택 가격 가운데 456건의 오류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국토부는 발견된 오류 가운데 90% 정도가 비교표준주택 선정과 관련한 오류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오류는 '유사가격권'이 '유사한 가격수준'이라는 용어로 대체된 산정지침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새로운 지침이 자치단체에 제대로 전달됐다면 이같은 '오류' 논란과 현장에서의 혼란은 애초부터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더 이해가 가지 않는 건 공시가격 오류 발표 이후에 보인 국토부의 이중적인 행보다.

국토부는 발표에서 점검 대상인 8개 구의 오류 건수를 합산해서 456건이라고 밝힌 뒤 자치구별 숫자는 공개하지 않았다. 개별주택가격 공시가격은 자치단체의 권한이기 때문에 자치단체들의 반발을 우려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면서도 나머지 자치구에 대한 점검은 계속하겠다고 덧붙였다.



취재해보니 8개 구를 제외한 다른 구청에서도 추가 오류에 대한 통보가 확인됐다. 국토부가 직접 구청에 오류를 통지하지는 않았지만, 공시가격 검증을 위해 구청에 나와 있는 한국감정원 직원들을 통해 오류가 구청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오류는 당초 발표됐던 456건보다 더 많은 숫자인 것으로 집계됐다. 송파구와 서초구 30건을 비롯해 성동구 등에서도 추가 오류 사례가 드러났다.

하지만, 국토부는 추가 발견된 오류들이 "국토부가 직접 조사한 내용이 아니다"라면서 국토부가 조사한 오류는 456건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17일 공식발표 이후에 발견된 오류들은 국토부가 직접 조사한 것이 아니라, 자치단체에 오류 유형을 통보한 뒤 자치단체가 자체 발견하고 시정했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한 자치단체의 공시가격 담당자는 "개별주택 공시가격에 대한 조사는 구청에 나와 있는 감정원 직원들을 통해 이뤄지는데 이들은 국토부로부터 감사를 받는 입장이기 때문에 국토부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치단체의 권한을 존중한다는 명분을 앞세웠지만, 뒤에서는 감정원을 통해 공시가격 산정과 점검에 사실상 개입하는 셈이다.

실제로 국토부는 자치단체의 공시가격 오류를 점검하면서 공시가격을 검증하는 한국감정원에 대한 감사도 함께 진행한다고 밝혔지만, 한 달이 넘은 지금까지 감사에 대해 아무런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이의신청 기간이 남아있긴 하지만 올해 개별주택 공시가격은 일단 결정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빚어진 불필요한 혼란과 국민들의 불편은 적지 않다. 정부가 올해 공시가격 산정 과정에서 빚어진 혼선을 반면교사 삼아 내년에는 모두가 더 납득할 수 있는 과정과 결과들을 내놓기 바란다.
이슬기 기자 wakeup@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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