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月200만원 수입' 믿고 투자했는데…은퇴자 등친 '태양광 기획부동산'


판치는 '태양광 분양사기'

"2억 투자하면 月 200만원 수익"
허위·과장 광고에 피해자 속출
사업 추진돼도 인허가 '높은 벽'

     “2억 투자하면 월 200만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태양광 개발업체의 말을 믿고 목돈을 투자했다가 피해를 보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정부의 탈(脫)원전·재생에너지 육성 정책을 등에 업고 전국에 태양광발전소 설치 붐이 일자 허위·과장 광고를 내세운 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탓이다. 태양광 투자를 미끼로 ‘맹지’를 판매하는 기획부동산까지 뛰어들면서 태양광 발전시장의 혼탁을 부채질하고 있다.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추진한 이후 전국 농촌지역 곳곳에 태양광발전소 분양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리고 있다. 임야에 설치된 태양광발전소 패널과 분양 광고. 한경DB

3일 한국경제신문이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법원 판결을 조사한 결과 태양광 발전과 관련한 소송은 276건에 달했다. 2~3년 전 제기된 소송이 대부분이다. 발전소 허가를 둘러싼 행정소송(90건)보다 태양광 분양 관련 피해와 관련한 민사소송(186건)이 두 배 이상 많았다. 최근 2~3년 새 태양광 발전이 투자처로 주목받으면서 이틀에 한 번꼴로 민사소송이 진행된 것이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계약금이나 중도금을 낸 뒤 사업이 진척되지 않아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 토지·건물 정보업체 밸류맵의 이창동 리서치팀장은 “특히 기획부동산은 법인명을 수시로 변경하거나 휴·폐업 및 신규 법인 개설 등을 반복해 거래한 지 1~2년만 지나도 법인을 찾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주민 반대에 직면하거나 지방자치단체가 까다로운 규제를 내세우며 인허가를 내주지 않아 좌초되는 사례도 빈번하다. 박하영 법무법인 평안 변호사는 “최근 태양광발전 허가 신청이 몰리면서 지자체의 인허가율이 30%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사업 진행 단계와 추진 일정, 계약서 등을 신중하게 검토한 뒤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에너지공단 관계자는 “문제가 있는 태양광발전 분양업체는 대부분 발전사업허가를 받았다는 사실만을 내세워 투자금을 모으고 사기행각을 벌인다”며 “실제 투자에 필요한 개발행위허가를 받았는지 지자체를 통해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은퇴 후 귀농한 박모씨(69)는 연 8% 이상의 수익이 보장된다는 지인의 권유를 받고 2017년 말 강원 화천군에 9900㎡ 규모로 들어설 태양광발전소에 투자했다가 수천만원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그가 분양받기로 한 태양광발전 용량은 750㎾. 총 10억원을 투자하기로 하고 공사 착수금, 농지 전용 분담금 명목으로 5000만원을 태양광 개발업체인 D사에 건넸다. 하지만 인근 주민의 반발로 발전소 건설이 백지화됐다. 박씨는 D사를 찾아가 “계약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이미 설계도면 작성 등에 3500만원이 들어가 돌려줄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박씨는 “시공사와 설계사가 짜고 치는 장난에 속은 것 같다”고 한탄했다.

고수익을 노린 태양광발전 사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분양 피해 사례가 늘고 있다. ‘떴다방’식 기획부동산에 속아 사업 실현 가능성도 없는 맹지에 투자했다가 돈을 날리는 사례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월 200만원 받는다더니
3일 법조계 및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태양광 관련 인터넷 카페에는 올 들어 “계약금을 ‘먹튀’ 당했다”며 소송을 준비하는 글이 여럿 올라오고 있다. 태양광발전을 미끼로 내건 개발업체들이 총비용의 10~40%에 해당하는 계약금을 받아놓고 1~2년이 지나도록 주민 반발 등을 이유로 공사를 하지 않다가 “계약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발뺌하는 사례가 다반사다.



경기 성남시에 사는 김모씨도 지난해 전남 해남 지역에서 7억원 규모의 투자 계약서에 서명한 뒤 계약금 1000만원을 지급했다. 1년이 지나도 사업이 진척되지 않아 부지를 찾아가 확인해보니 허가받지 않은 땅이었다. 사업자들이 태양광에 적합하지 않은 값싼 임야를 사들인 뒤 모든 허가를 다 받은 것처럼 분양 광고를 한 것이다. 김씨는 “계약금만 잃게 됐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농촌 지역의 노인을 대상으로 ‘꼼수 계약’을 강요하는 기획부동산도 나오고 있다. 태양광 사업은 20년 뒤 철거비용이 발생하는데 원상복구비용 조항을 토지주에게 물도록 해 투자자에게 억대의 철거비용을 전가하는 방식이다.

피해 사례가 늘자 일부 투자 피해자는 ‘태양광 피해방지 위원회’라는 인터넷 카페를 개설해 대응하고 있다. 태양광 행정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법무법인 평안의 박하영 변호사는 “주민 반대로 지방자치단체에서 인허가를 내주지 않아 70%가량은 사업이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태양광 개발업체에서 이런 현실을 숨기고 ‘사업 초기단계지만 100%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하면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쏟아지는 태양광발전소
태양광 부지와 발전 용량은 정부에서 가장 높은 가산점을 받을 수 있어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99㎾급 기준으로 분양가 2억3000만~2억5000만원에 시세가 형성돼 있다. 아파트 분양 방식과 마찬가지로 계약금으로 10%를 낸 뒤 중도금과 잔금을 치른다. 최근에는 논밭에 표고버섯이나 곤충을 기르는 가건물을 짓고 그 위에 태양광 패널을 얹어 분양하고 있다. 개발업체들은 일조량이 풍부하면 20년간 월 200만원 안팎의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런 조건에 매력을 느끼는 이들이 몰리자 태양광발전소도 급증하고 있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이들이 공급한 발전소 수가 총 9000개를 넘어섰다. 이 가운데 개인이 주로 운영하는 100㎾ 미만 발전소 수는 2017년 4174개에서 2018년 7048개까지 증가했다.

문제는 태양광발전 사업을 추진한다 해도 실제 완성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신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은 3000㎾를 초과하면 산업통상자원부 전기위원회에서, 3000㎾ 이하 설비는 광역시·도에서 허가한다. 인허가 과정에만 평균 6개월에서 1년, 길게는 2년까지 소요된다. 주민들이 ‘자연경관 훼손’ 등을 이유로 반대해 아예 태양광발전 허가를 내주지 않는 지자체도 늘어나는 추세다. 한 태양광 전문가는 “2년 이상 태양광 분양을 기다렸다가 허가가 나지 않는 경우가 50%를 넘는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토지를 판매한 기획부동산이 자취를 감추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연이 아니더라도 태양광발전 효율이 떨어져 대출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곳도 많다. 한 업체 관계자는 “소규모 발전 사업자가 다수 참여하면서 전력 판매가격이 폭락하고 있다”며 “대출 이자 상환이 어려운 투자자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최진석/배정철/양길성 기자 iskra@hankyung.com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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