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조달청 한국은행 본부 재건축 시공사 공모 위법”

‘한은 재건축’ 표류 끝나나

‘조달청의 예정가격 초과 입찰 관련 공익감사’ 발표


    조달청이 한국은행 본부 재건축 시공사를 공모하는 과정에서 법을 위반했다는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나왔다. ‘입찰가격은 예정가격을 초과해선 안 된다’는 국가계약 원칙을 어긴 계룡건설을 부당하게 낙찰예정자로 선정했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그러나 낙찰을 취소할지, 취소한다면 새 시공사는 어떻게 선정할지는 여전히 조달청의 결정에 맡겼다. 벌써 1년 반 가까이 분쟁에 휩쓸려 첫 삽도 못 뜬 한은 재건축 사업의 개시 여부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한국은행 본점 통합별관 및 리모델링 조감도(한국은행)/이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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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조달청 계약 잘못” 

감사원은 30일 이 같은 내용의 ‘조달청의 예정가격 초과 입찰 관련 공익감사’를 발표했다.


조달청이 한은 본부 재건축을 포함한 공사 입찰 과정에서 ‘예정가격(발주처가 잠정적으로 정한 공사 가격, 이하 예가)’ 초과 입찰을 금지하는 국가계약법령을 여러 차례 위반해 최근 3년(2015~17년) 동안에만 1,000억원 가량의 국고 낭비를 초래했다며, 최재천 전 의원 등이 지난해 9월 청구한 공익감사에 대한 결과다.




조달청은 감사 청구인들이 문제 삼은 공사들은 고난도 기술을 필요로 하는 ‘실시설계 기술제안입찰’로, 이런 기술형 입찰은 관련 법령상 ‘예가 초과 입찰 금지’가 명시돼 있지 않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감사원의 판단은 달랐다. 직접적 규정이 없다고 해도 관련법이나 제도 취지에 비춰볼 때 예가 초과 금지가 적용되는 걸로 해석하는 게 합당하다고 판단했다. 감사원은 조달청 내부 메모 등을 근거로 조달청 실무진 역시 예가 초과 입찰 허용이 논란의 소지가 될 수 있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바로잡기 위한 조치를 소홀히 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은 본부 재건축 입찰 과정에선 차점자인 삼성물산의 이의신청을 받고도 법령 소관부처인 기획재정부에 유권해석을 의뢰하지 않은 채 멋대로 답변을 하고, 이후에는 아예 입찰공고에 ‘입찰금액은 예정가격을 초과할 수 있다’는 내용을 넣어 입찰을 진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기술형 입찰제 도입 이후 집행된 공사입찰 24건(한은 재건축 등 6건은 진행 중) 가운데 6건이 예가 초과 입찰 업체와 계약이 체결됐다고 밝혔다. 이들과 차순위 업체의 입찰가 차이는 61억원으로, 그만큼 국고가 더 들어간 셈이다. 더구나 총 공사비가 3,600억원에 달하는 한은 별관 재건축은 계룡건설이 예정가(2,829억원)보다 3억원 많은 2,832억원을 써내고 낙찰되면서 차점자(삼성물산)와의 입찰가 차이가 462억원이나 된다.


감사원은 위법 행위가 적발된 실무자 4명에 대한 징계처분(정직 1명, 3명 경징계 이상)을 조달청에 요구했다. 하지만 한은 재건축 시공사 선정과 관련해서는 △국가계약법의 취지 △예산 낭비 여부 △계약당사자(계룡건설)의 책임 정도 △입찰의 공정성 등을 고려해 “조달청이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조달청의 잘못을 지적하면서도, 이에 따른 피해 시정은 조달청에게 또 맡긴 셈이다. 조달청은 “기재부 등 관계기관과 협의해 방안을 마련하겠다”고만 밝혔다.




장기표류 한은 재건축 시작될까 

이번 감사로 장기간 표류 중인 한은 재건축 사업이 전기를 맞을지 주목된다. 서울 중구 소공동에 있는 한은 본부 건물 중 별관을 재건축하고 본관은 리모델링하는 이번 사업은 재작년 12월 계룡건설이 낙찰예정자로 선정된 직후부터 예가 초과 및 심사 불공정성 논란에 휘말려 진척이 전혀 없는 상태다.


최종 계약 체결을 위한 한은과 계룡건설의 설계 협의도 벌써 두 차례 재개와 중단을 반복했다. 30개월 가량 공사를 거쳐 설립 70주년인 2021년엔 새 단장한 본부 건물로 입주하겠다던 한은의 계획은 이미 물 건너갔고, 월 임대료가 13억원에 달하는 사무실(서울 중구 삼성본관) 임대기간이 늘어나면서 혈세 낭비 논란도 크다. 한은 내부에선 자기들이 쓸 건물을 어쩌지 못하게 된 상황에 낭패감이 팽배하다.


한은이 가장 바라는 바는 조속한 착공이지만 전망은 불투명하다. 공을 넘겨받은 조달청이 어떤 수습책을 내놓든 당사자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적지 않은 탓이다. 특히 갈등이 소송전으로 번질 경우 조기 사태 해결은 더 요원해진다.


최대 관건은 조달청의 낙찰 취소 여부다. 삼성물산 등은 “감사원이 예가 초과 입찰을 명백한 위법행위로 판단한 만큼 계룡건설은 입찰 자격을 잃은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번 감사 대상은 아니었지만, 기술심사 과정에서 계룡건설에 높은 점수를 몰아주는 불공정 행위가 있었다는 주장도 조달청이 낙찰 결과를 고수하는데 부담이 될 거란 전망도 나온다.



반면 입찰 당시 공고문에 ‘예가 초과 입찰 금지’ 조항이 없었던 만큼 계룡건설에 책임을 물을 일이 아니라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선의의 계약자는 보호 대상’이라는 법원 판례도 있다. 낙찰이 취소되면 계룡건설이 조달청을 상대로 소송에 나설 거란 예측이 파다한 가운데, 계룡건설 관계자는 “일단 조달청 결정을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낙찰이 전격 취소된다면 재입찰을 하거나 차순위자를 낙찰자로 정하는 방안이 남는다. 삼성물산은 기재부 예규 등을 들어 “차순위자가 우선 낙찰 심사 대상”이라는 입장이지만, 조달청 내부에선 계룡건설의 잘못이 아닌 만큼 이 회사에도 재응찰 기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재입찰을 하는 방안도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조달청에 시공사 선정 및 계약을 맡겼던 한은이 전격적으로 계약 의뢰를 취소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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