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면 편지를 쓰세요 [노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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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면 편지를 쓰세요

2019.04.30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이슬이 꽃을 사랑하는 것과 같고, 새들이 햇살을 사랑하는 것과 같고, 물결이 바람을 사랑하는 것과 같고, 천사들이 마음속의 순결을 사랑하는 것과 같소. 나의 키스와 축복의 기도를 받아주오. 내가 영원히 당신의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주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첫눈에 반한 친구 여동생 올리비아 랭던에게 보낸 애틋한 구애편지입니다. 그는 189통의 연애편지와 열일곱 번의 프러포즈 끝에 그녀와 결혼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눈감은 그날까지 45년간 부부는 끔찍이도 서로를 사랑했다지요 . “인생은 너무 짧아서, 다투고 언짢아하고 책임 추궁하고 그럴 시간이 없다. 오로지 사랑할 시간, 순간들밖에 없다”라는 그의 말이 가슴으로 읽힙니다.

연애편지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간절함뿐만 아니라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 쓴 그(그녀)의 숨결을 행간과 여백에서까지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연애편지는 가슴은 뜨거울망정 진지하게 써야 합니다.

얼마 전 편지로 하나가 된 쉰 살 동갑내기의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예식이 치러지는 내내 둘이 주고받은 연애편지가 영상으로 나왔는데, 꽤 감동적이었습니다. 남자가 프러포즈한 아흔아홉 번째 편지와, 여자가 고맙다며 허락한 백 번째 편지가 화면을 가득 채웠을 땐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지기도 했습니다.

편지 속 단어들에선 달콤한 향기가 느껴지더군요. 덕분에 딱딱하게 굳었던 제 가슴이 말랑말랑해졌습니다. 참 고맙고 좋은 일이지요. 열 번의 만남과 백 통의 편지만으로, 만난 지 3개월여 만에 결혼한 이 커플은 오래도록 사랑만 하며 살 것 같습니다.

독신 전성시대를 표방한 미국 시트콤 ‘섹스 앤드 더 시티’, 비혼모(결혼은 하지 않고 아이만 낳아 기르는 여자를 뜻하는 신조어)가 주인공인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일본 드라마 ‘비혼가족’ 등에 빠져 ‘자발적 미혼’을 주장하던 그녀가 청첩장을 내밀었을 때 솔직히 ‘드디어 비혼식을 여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외국계 ○○코리아는 비혼식을 치른 직원에게도 축의금과 유급휴가를 준대. 또 반려동물을 입양해 키우면 출산한 직원에게 지급하는 육아수당도 제공한다더라. 아무래도 회사를 옮겨야겠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거든요.

그런데 청첩장을 펼쳐 보곤 여자 넷이 한마음으로 환호했습니다. 신랑 이름이 떡하니 있었기 때문이지요. 출장길, 비행기에서 만난 남자와 이국 땅에서 차 한잔 마셨을 뿐인데, 그날 이후 함께 밥 먹을 식구가 그리웠고, 길거리에서 재롱 떠는 아이들의 모습도 예뻐 보였답니다.

비혼족의 만혼(晩婚)을 격하게 축하해줬습니다. 쉰 살의 음치·몸치녀 네 명이 무대에 올라 박상철의 ‘무조건’을 부를 정도로요. 혹시 그 영상이 유튜브에라도 뜰까 지금껏 조마조마합니다. “짜짜라 짜라짜라 짜짜짜~ 짜짜라 짜라짜라 짜짜짜~ 내가 필요할 때 나를 불러줘 언제든지 달려갈게 낮에도 좋아 밤에도 좋아 언제든지 달려갈게~”

여러 이유로 비혼족이 늘고 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결혼은 하는 것이 좋다 포함)’라는 의견은 2008년 68%에서 2018년엔 48.1%로 감소했습니다. 재혼의 경우도 ‘반드시 해야 한다(하는 것이 좋다 포함)’라는 의견이 2008년 22.7%에서 2018년엔 절반인 12.4%로 낮아졌습니다. 실제 혼인(초혼+재혼) 건수는 2008년 32만7,715건에서 2018년엔 25만7,622건으로 크게 감소했습니다.

결혼하지 않으려는 젊은이들은 속내를 털어놓습니다. “취업하기가 너무도 어렵고, 겨우 직장을 잡는다 해도 결혼·주택 자금을 마련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설사 결혼해 부부가 열심히 일을 해도 아이를 낳아 양육하는 데 드는 비용이 부담스럽고 나이 들어 편안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거란 보장도 없다.”

40·50대 비혼족들도 이유를 밝힙니다. “지금껏 혼자 잘 살아왔는데, 굳이 이 나이에 결혼해 양쪽 집안의 복잡한 인간관계에 부대끼며 살 이유를 못 찾겠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비혼은 ‘감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경제 저성장과 분배구조의 악화, 교육의 기능 부조화에서 생긴 일입니다. 일가친척들의 지나친 간섭(그들은 사랑·관심이라 생각하지요)도 비혼족을 키우는 큰 이유입니다.

그래서 비혼족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사회평론가이자 소설가 복거일의 말입니다. “젊은 남녀가 가정을 이루고 2세를 생산하는 것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힘들고 두려운 일이었다. 사랑이라는 최면제가 그래서 있다.”

지금 사랑하는 이가 곁에 있나요? 그렇다면 앞날에 대한 걱정, 두려움은 버리고 용기를 내 그(그녀)에게 프러포즈하세요. 경제적·정신적으로 힘들더라도 서로를 하늘처럼 여기며 함께 살아간다면 세상은 달라질 테니까요. 그(그녀)가 눈앞에서 거절할까 봐 걱정된다고요? 그렇다면 편지를 쓰세요. 마법이 일어날 거예요.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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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노경아

경향신문 교열기자·사보편집장, 서울연구원(옛 시정개발연구원) 출판담당 연구원을 거쳐 현재 이투데이 부장대우 교열팀장. 우리 어문 칼럼인‘라온 우리말 터’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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