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리듬과 함께하는 세상살이 [방재욱]


계절 리듬과 함께하는 세상살이 [방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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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리듬과 함께하는 세상살이

2019.04.17

포근하고 아리따운 봄을 맞이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바람처럼 강물처럼 쉬지 않고 흐르는 세월을 따라 하늘이 맑아진다는 청명(淸明, 4월 5일)이 지나고, 봄의 마지막 절기로 비가 내려 농사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를 지닌 곡우(穀雨, 4월 20일)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계절의 리듬은 24절기의 명칭에 잘 담겨있습니다. 

봄의 전령사인 산수유나무에 이어 꽃을 피우는 벚꽃과 개나리, 여름에 개화하는 나팔꽃이나 해바라기, 그리고 가을에 피는 국화나 코스모스에서 보는 것처럼 식물들의 개화 시기는 종(種)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동물들에서도 개구리는 경칩이 지나며 동면(冬眠)에서 깨어나 산란을 하고, 같은 종의 물고기들의 산란 시기는 개체들 사이에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제비나 청둥오리와 같은 철새들은 계절에 따라 먼 거리를 이동해 번식하며 살아갑니다. 

식물 종들이 절기를 달리해 꽃을 피우고, 철새들이 철 따라 이동하며, 동면하던 동물들이 봄이 되면 깨어나 산란하는 것은 계절 변화에 따른 것입니다. 몸 안에 간직되어 있는 유전적, 생리적, 발생적 특징과 같은 내적 요인과 낮과 밤의 일주기, 온도나 습도와 같은 환경 요인의 변화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생물 종들의 세상살이는 계절 리듬에 적응해온 진화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계절 리듬에 따른 동식물의 생활주기 변화를 다루는 연구 분야는 식물계절학과 동물계절학으로 구분이 되는 생물계절학(生物季節學, Biophenology)입니다. 식물계절학에서는 계절의 변화에 따른 식물의 발아, 개화, 숙성, 낙엽 등과 같은 식물의 적응 현상을 다루며, 동물계절학에서는 계절에 따른 특정 종의 출현, 발성, 산란, 부화 등이 연구 대상이 됩니다. 

식물계절학은 꽃이 피는 내력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화력학(花曆學)’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오래 전 학부 시절 강의 시간에 들었던 화력학에 대한 추억이 떠오릅니다. 담당 교수님은 4월에서 5월 사이에 잎이 피어나기 전에 진분홍의 밥태기(밥풀) 같은 꽃들을 나뭇가지에 다닥다닥 붙여 피우는 ‘박태기나무’를 실례로 식물계절학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주요 내용은 박태기나무에서 평년과 다르게 꽃보다 잎이 먼저 돋아나오면 화력학적으로 그 해의 기후가 예년과 다를 것으로 예측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꽃보다 잎이 먼저 피어난 그 해에 남쪽 지방에 극심한 가뭄으로 벼농사가 큰 피해를 보았고, 식수난까지 심하게 겪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예전부터 우리나라 농촌에 전해져오던 ‘도토리는 벌판을 내려다보면서 연다.’라는 말과 함께 ‘쌀농사가 흉작이면 도토리는 풍작'이라는 속설도 있습니다. 이는 계절적으로 도토리가 꽃 피는 시기와 모내는 시기가 비슷하기 때문에 모내는 철에 비가 많이 내리지 않으면 모내기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해 흉작이 들지만, 도토리 꽃은 만개해 풍작이 든다는 데서 유래한 말입니다. 

곤충의 출현이나 새들의 번식도 환경변화에 따른 계절 리듬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예년보다 봄 날씨가 따뜻해지면 곤충의 출현이나 새들의 번식이 앞당겨질 수 있고, 봄 기온이 낮으면 그 현상이 늦추어질 수 있습니다. 계절 리듬에 대한 반응은 사람에게서도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그 실례로 꽃샘추위를 심하게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더위를 참지 못하거나 엄동설한 추위를 견디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간을 비롯해 모든 생물 종들이 생존하고 있는 생태계는 기후변화에 따른 계절 변화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기후변화로 꿀벌이나 나비의 꽃가루 매개 시기와 식물의 꽃 피는 시기가 서로 어긋나는 상황이 발생하면 꿀벌과 식물이 함께 생존에 크게 위협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 종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멸종위기를 언급할 때 북극곰이나 호랑이가 언급되곤 하지만, 꿀벌이나 나비의 멸종은 지구 생태계를 더 크게 흔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 생산량의 약 70%가 꿀벌과 나비의 꽃가루 매개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현재 인류가 겪고 있는 가장 큰 환경문제는 기후변화입니다. 여름이 예년보다 무더워지거나 겨울에 혹한이 자주 다가오는 계절변화는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닙니다. 국립기상과학원은 우리나의 계절변화 분석에서 겨울은 109일에서 91일로 줄었고, 여름은 98일에서 117일로 크게 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습니다. 봄은 85일에서 88일로 늘었고, 가을은 73일에서 69일로 줄었다고 합니다. 이는 봄과 여름이 183일에서 205일로 22일이 늘어나는 온난화로 한반도의 ‘사계절’이 ‘이계절’로 점차 변하고 있는 원인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기후변화로 생물계절 리듬이 깨지면 생태계를 이루는 먹이사슬이 정상적으로 이어질 수 없으며, 생태계 피라미드의 가장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는 인간도 그 영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계절 리듬에 대한 생물 종들의 적응은 계절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지표로 이용될 수 있습니다. 생물에 간직되어 계절 리듬의 변화를 감지하는 요소들의 역할을 밝히는 생물계절학 연구가 활성화되어 지구 생태계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장기적 기후변화의 올바른 예측이 이루어지는 날이 기다려집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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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재욱

양정고. 서울대 생물교육과 졸. 한국생물과학협회, 한국유전학회, 한국약용작물학회 회장 역임. 현재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과총 대전지역연합회 부회장. 대표 저서 : 수필집 ‘나와 그 사람 이야기’, ‘생명너머 삶의 이야기’, ‘생명의 이해’ 등. bangjw@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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