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洑) 대신 완고한 생각을 먼저 헐어라 [신현덕]


보(洑) 대신 완고한 생각을 먼저 헐어라 [신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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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洑) 대신 완고한 생각을 먼저 헐어라

2019.04.15

4대강에 설치된 보를 두고 또 한 차례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습니다. 정부가 금강의 공주보와 세종보, 영산강의 죽산보를 철거하겠다고 발표하자, 유역 주민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습니다. 항의 현장에서는 예외 없이 보를 세울 때처럼 졸속, 불통, 통계자료 왜곡 등의 단어가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집니다. 참석 주민들은 가뭄에 물 걱정 안 했고, 강기슭에 조성된 공간도 유용하고, 물이 많아져 풍광도 좋다고 말합니다. 세울 때 반대하던 구호와 다른 것은 “강이 더 유용해졌는데 왜 보를 깨느냐”는 말이 추가된 점입니다. 심지어는 “국민과 소통을 하겠다더니, 우리는 국민 아니냐”고 소통 부재에 핏대를 세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경향신문(1988년 6월 15일 자 1면 톱기사)이, 88서울 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전 국민이 들떠 있던 때, 한강을 시작으로 낙동강, 금강, 영산강의 오염실태를 차례로 실었습니다. 한강 편입니다.

죽음이 흐르는 경안천
“벌레 못사는데 물고긴들 살겠습니까”
산업폐수·분뇨 거침없이 방류
논물대면 벼 枯死(고사)
축사하수 하루 3만ℓ씩 유입 단속 엄두못내
간장색 毒水(독수) 상수원 팔당으로 등
“산업화로 발생한 공해에 대한 무방비, 강물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의 인식부족, 행정력의 미흡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우리의 생명의 젖줄인 강을 썩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영산강 편, “湖南(호남)의 毒水(독수) 榮山江(영산강)”이란 제목에 우선 기가 질립니다. 신문은 “광주시의 한 복판을 남북으로 관통하며 흐르는 광주천은 냇물이 아니라 하수도 그대로다. 학동에서 광주동까지의 광주천은 하상이 잘 정리돼 있고 고수부지엔 잔디가 심어져 있고 호안벽을 곱게 쌓아 겉모양은 번드르르 하지만 흐르는 물은 생활하수와 공장 폐수로 인해 악취를 풍기는 독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고발했습니다.
금강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죽음이 흐르는 甲川(갑천). 낙원을 찾아온 珍客(진객) 황새마저 죽어갔던 곳이 바로 금강 상류 갑천이다.”라며 가장 큰 원인은 “정화시설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20여 년이 지난 뒤, 미디어 오늘(2010.6.28.)의 기사입니다.
“현재 중랑천에는 다양한 동물과 식물이 살고 있다. (중략) 희귀어종인 버들치, 밀어, 살치 등 14종의 어류와 호랑나비, 왕잠자리 등 곤충류 234종의 하천 동물과 흰뺨검둥오리, 가창오리, 왜가리 등의 조류 등이 하천을 보금자리 삼아 살고 있다.”
“중랑천은 90년대까지 죽음의 하천으로 불렸다. 물고기가 살 수 없어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자주 목격 되었다.(중략) 중랑천은 중앙 및 지방정부 민간단체의 노력으로 수질이 크게 개선되었다.”

죽었던 강물이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 정부와 지자체의 투자, 관리·감독 강화, 강한 법 집행, 무거운 벌금 부과 등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자유칼럼 2018.9.5. 참조) 분류 하수관과 정화 시설, 분뇨와 가축 폐수 처리장 등을 설치, 오염원 유입을 크게 줄여, 강의 자정능력을 회복한 결과입니다.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성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넥카 강에는 보와 갑문이 설치돼, 관광선은 물론 화물선들도 이용합니다.
하류의 라인강에는 준천(濬川)선이 오르내립니다. 동부를 흐르는 베저강 8개의 보(댐)에서는 발전까지 합니다. 모두 잘 정화된 물을 흘려내려 부패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 “오염의 법칙… 약자·저소득층 많은 ‘만만한 곳’ 노린다”는 세계일보 기사가 눈길을 끕니다.
영산강 뱃길연구소장 김창원 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광주에서는 보를 못 건드리고, 나주(죽산보)는 주민수가 적어 만만해 이러는가”라고 답답한 가슴을 토로했습니다. 철거대상 보 유역주민들은 지역 강물을 한강물만큼만 관리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보를 헐 비용으로 강의 자정(自淨) 능력을 회복시키는 것이 답입니다.  회자되던 “전라도 푸대접, 충청도 무대접”이라던 말이 또다시 들리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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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신현덕

서울대학교, 서독 Georg-August-Universitaet,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몽골 국립아카데미에서 수업. 몽골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 방어. 국민일보 국제문제대기자,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경인방송 사장 역임. 현재는 국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독은 독일보다 더 크다, 아내를 빌려 주는 나라, 몽골 풍속기, 몽골, 가장 간편한 글쓰기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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