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개떡이 그리운 이유 [한만수]


보리개떡이 그리운 이유 [한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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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개떡이 그리운 이유

2019.04.12

얼마 전에 영국의 경제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에서 2018 세계 생활비 보고서를 냈습니다. 서울의 물가는 조사대상 133개 도시 가운데 미국 뉴욕, 덴마크 코펜하겐 등과 함께 공동 7위를 차지했습니다. 싱가포르, 파리, 홍콩이 공동 1위입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의 빵 1kg 평균 가격은 15.59달러(약 1만7천600원)에 달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10곳 중에서도 가장 비쌉니다. 2위와 격차도 큽니다. 1kg당 8.33달러(약 9천400원)에 불과하니까 서울이 거의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셈입니다.

저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제과점 빵을 거의 먹지 않습니다. 어떤 행사나 모임 같은 곳에서 나눠주는 제과점 빵을 얻어먹기도 하지만 빵을 사러 직접 제과점에 방문한 적은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입니다. 가장 최근에 간 적이 2년 전쯤으로 출판사에 미팅을 하러 가면서 직원들 간식용으로 빵을 산 적이 있습니다.

그때 느낀 점은 제과 프랜차이즈점이었는데 빵을 고르는 선택의 폭이 분명하다는 점입니다. 개당 2천 원짜리를 고르느냐 5천 원 이상짜리를 고르느냐 양자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2천 원 이상부터 5천원 이하까지는 구색만 맞춰 놓으려고 그랬는지 모르지만 빵의 모양새나 재료 측면에서 꽤 비싸다는 생각, 그럴 바에는 5천 원 이상짜리를 사는 것이 낫다는 보이지 않는 압력을 느꼈습니다.

보리개떡을 먹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저하고 같은 느낌이 들었을 겁니다. 요즘에는 별미로 먹어  보려해도 구경조차 할 수 없는 보리개떡은 봄날 끼니 대용으로 먹기도 했습니다. 보릿가루와 보리순을 반죽해서 솥에 찐 보리개떡은 이름이 주는 의미만큼 천한 대접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개떡을 비유해서 흔히 쓰는 말로 “개떡 같은 소리 하고 있네.”“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생긴 것이 뭐 이리 개떡 같냐?”는 말이 있습니다. 개떡의 모양새가 볼품없고 대충 뭉쳐 놓은 것처럼 보이는 데서 생긴 말들입니다. 하지만 그 보릿고개 시절 초근목피로 생명을 연명하던 때 보리개떡은 귀한 먹거리였습니다.

개떡 재료인 보릿가루를 가는 채로 곱게 치지 않으면 모래 같은 것이 씹히기도 합니다. 목 넘김도 미국에서 원조받은 옥수수 가루로 만든 빵보다 부드럽지가 않습니다. 그렇거나 말거나 가족끼리 모여 앉아서 먹는 개떡의 맛은 꿀맛이 따로 없습니다.

형제가 많은 집에서 둥글게 모여 앉아 개떡을 먹을 때는 생존경쟁의 현장 그 자체입니다. 대부분 가정이 연년생 형제들입니다. 서로 한 개라도 더 먹으려고 눈치 볼 것도 없이 입안에 구겨 넣기 일쑵니다. 마냥 욕심만 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심부름 간 형제, 혹은 어디 놀러 나간 형제의 몫은 얌전히 남겨둡니다.

외출하고 집에 와서 남겨 둔 개떡을 먹으면 동생들이 군침을 삼키며 바라봅니다. 혼자 먹어도 부족한 양이지만, 부모님들에게서 형제끼리는 콩 한 쪼가리라도 나눠 먹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군침을 삼키고 있는 동생이며 형제들에게 나눠줍니다. 그 시절만 해도 이웃하고 담장이 없거나 싸리나무나 망개나무 울타리라서 개떡 냄새가 이웃까지 풍겨갑니다. 어머니는 가족들이 먹기 전에 이웃에게 개떡 접시를 돌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십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가난하던 시절에 먹던 음식이라 개떡이 그리운 것만은 아닙니다. 우물에서 퍼 올린 찬물에 만 국수에 파를 종종 썰고, 고춧가루를 푼 간장 한 숟갈만 얹어 먹어도 꿀맛입니다. 학교 갔다 와서 찬밥을 물에 말아서 깍두기 김치 한 가지만 있어도 뚝딱 먹어치운 것은 반드시 가난 때문은 아닙니다.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넓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시골에 사는 부모들이라도 열 살도 안 먹은 자식이 온 산이며 들로 뛰어다니게 버려두지 않습니다. 그 시절에는 예닐곱 살짜리도 동네 형들을 따라서 산으로 들로 쏘다녔습니다. 여름날에는 냇가에 가서 입술이 새파래지도록 목욕을 하다 모래밭에 앉아서 성을 쌓고, 풀을 뽑아 정원수를 심기도 하고, 빨간 돌을 빻아서 고추장을 만들며 놀았습니다. 뒷산이며 앞산 계곡의 맑은 물에서 가재를 잡아서 모닥불에 구워 먹기도 하고, 돌배를 따 먹거나, 빨갛게 익은 보리똥이라고 부르는 보리수며, 깨금이라고 부르는 개암을 따 먹으며 놀다가 해질 무렵에야 집으로 갔습니다.

온종일 산으로 들로 헤매고 다녔으니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따로 필요 없습니다. 열 살도 안 먹은 초등학생들도 어른만큼 밥을 먹고도, 밤이 되면 또 느티나무 밑이며 공터로 나가 밤이 이슥해지도록 뛰어놀기도 합니다. 그래서 보리개떡의 맛을 알고 있는 세대들에게, 보리개떡은 단순히 한 끼의 밥을 대신하는 음식일 수가 없습니다.

보리개떡은 어느 봄날 아지랑이 일렁거리는 논에서 베어 온 보리순을 절구통에 찧고 계시는 어머니의 표상입니다. 갓 찌어낸 보리개떡이 뜨거워서 양손으로 번갈아 잡고 한입 살짝 베어 먹다 모래가 씹혀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던 귀한 먹거리였습니다.

제과점의 주요 고객층은 20~30대 여성층입니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20~30대 남성들은 빵을 먹지 않는다는 말이 됩니다. 요즈음 어글리 베이커리가 유행이라고 합니다. 개떡처럼 못생긴 빵이 오히려 식욕을 자극해서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빵은 보릿고개 시절의 개떡이 아닙니다. 유행을 좇는 트렌드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전 세계에서 빵 가격이 가장 비쌀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듭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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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한만수

1990년부터 전업으로 소설을 쓰고 있음. 고려대학교 문학석사. 실천문학 장편소설 “하루” 등단. 대하장편소설 “금강” 전 15권 외 150여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외 5권 출간. 이무영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우수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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