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버린 ‘자연사랑’ [김수종]


불타버린 ‘자연사랑’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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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버린 ‘자연사랑’

2019.04.10

“19일 오전 1시26분께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자연사랑 미술관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동부소방서에 따르면 옛 가시초등학교(폐교) 내 4개동 중 숙소 용도로 사용 중인 1동이 전소됐다. 이 화재로 소방서 추산 1,091만7,000원 상당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인명피해는 없었다.  소방서는 화재 원인을 누전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지난 1월 19일 제주도 지방신문에 났던 아주 짧은 화재 기사입니다. 만약 내가 그날 이 기사를 보았다면 신음 소리라도 냈을 터인데, 이 뉴스를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가 3월 초에 인터넷 검색 중에 이 화재 기사를 발견하고 아연했습니다.
친구의 불행을 보는 것은 마음 아픈 일입니다. 40년 간 교유해왔던 친구 집에 불이 났는데도 그걸 모르고 두어 달을 보냈으니, 과연 내가 친구 자격이 있나 하는 민망함까지 겹쳐져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친구의 화재 소식을 뒤늦게 알고 전화를 걸어 위로하자, 그의 첫 마디가 이랬습니다. “그렇게 됐네. 그런데 내가 표구해주려고 파일 상자에 두었던 자네 사진도 다 타버렸어. 열심히 정리하던 중이었는데. 미안하다.” 
지난 3월 하순 그 친구를 위문하러 '자연사랑' 갤러리를 찾아갔습니

화재로 꺼멓게 타버린 갤러리 별관 작업실 건물(오른쪽). 왼쪽은 전시장으로 쓰이고 있는 폐교 교실.

다.      

화재를 당한 친구는 50여 년간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살아온 사진작가 서재철입니다. 작가라기보다 사진기자라고 부르는 게 더 적절한 것 같습니다. 그는 1972년 제주신문에서 시작해서 30년간 일선 사진기자로 일하다가 신문사에 사직서를 내고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셔터를 누르며 옛 가시초등학교 폐교를 2004년 임차해 사진 갤러리 ‘자연사랑’을 운영해왔습니다.   
사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사진기를 들고 다니면서 제주도의 사람과 풍물을

자연사랑 갤러리 전경

찍었던 사진광이었습니다. 그는 폐교 부속건물에 살림방과 작업실을 차리고 사진작업을 했으며, 얼마 전부터는 50년간 찍은 방대한 필름 정리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1월 중순 동남아 소수민족 사진을 찍으러 나간 사이에 화재가 일어났고, 며칠 후 제주공항에 도착해서야 이 사실을 알고 넋을 잃었습니다. 그나마 부인이 그날따라 제주 시내에서 묵었기에 화를 면한 것이 다행이었다고 합니다. 하마터면 전시실이 있는 폐교 교실까지 타버릴 뻔했습니다. 밤낚시를 갔다오던 동네 사람이 불을 발견해서 신고했고, 출동한 소방차는  전시실로 옮겨붙는 불길을 가까스로 잡았다고 합니다. 

타버린 사진 자료 중엔 1960년대와 70년대 제주의 풍물과 자연을 찍은 귀중한 흑백필름과 사진 자료가 많았습니다. 해녀, 등대, 포구 등 제주도 풍물의 흑백사진은 지금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는 또 제주도내 360여 개의 오름을 전부 찍어낸 산사람이기도 합니다.

내가 신문사에 근무할 때 그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하면 목숨같이 아끼던 필름을 등기우편으로 부쳐주곤 할 정도로 그의 신세를 졌습니다. 자유칼럼그룹이 2007년 웹사이트를 개설했을 때부터 2011년까지 그는 제주도의 꽃과 갯마을 그리고 오름의 모습을 연재했습니다. 지금도 자유칼럼 사이트에는 그의 아름다운 사진작품이 자료로 남아 있습니다.
그는 필름을 애지중지했습니다. 필름을 부쳐주면서 “사진은 맘대로 인화해서 써도 좋으니 필름만은 잘 간수했다가 꼭 돌려주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화재가 나던 날 전소해버린 건물 안에는 그가 이렇게 모아놓은 필름 자료가 가득 있었습니다. 그는 해녀와 갯마을 풍경을 찍은 필름이 불타버린 것이 너무나 애석한 듯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폐교를 약간 개조해 만든 사진 전시실은 화재가 번지기 전에 소방차가 도착해서 불길을 잡아서 전시 작품이 보존되었던 게 불행 중 다행이었습니다.

넋을 잃고 있던 그가 정신을 차리고 요즘 하는 일은 그의 사진을 썼던 신문사나 출판사 등에 연락하여 사진이나 필름을 하나씩 모아보는 일이라고 합니다. 짚 무더기에서 바늘 찾기 같은 그 일을 하는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있었지만 그 속에는 망연함이 가득했습니다. 한라산 나무와 바위를 다람쥐처럼 오르내리던 그 친구의 까만 머리에 허옇게 서리가 내린 모습을 보며, 시간이 무척 빠르게 흘렀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도 셔텨는 눌러야지.”라고 풀 안 서는 작별 인사를 하고 폐교 갤러리를 나섰습니다. 3월 말 자연사랑이 소재한 가시리 마을에는 유채꽃 봉오리가 터질 듯이 물이 올랐고, 망아지들이 돋아나는 풀을 뜯고, 풍력발전기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소방서의 화재피해 감정가 1,000만원. 한 인간이 일생을 걸고 기록해놓은 사진 자료에 대한 공공기관의 평가액입니다. 인생은 대단한 듯 아무것도 아닌 듯 종잡을 수 없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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