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원전은 괴물이 됐고, 우리는 죄인이 됐다"


"어느날 원전은 괴물이 됐고, 우리는 죄인이 됐다"


창원 두산중공업 노조 첫 상경 투쟁

정부 탈원전 정책 강력비판


    경남 창원에 본사를 둔 두산중공업 노조 간부 40여 명이 2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는 집회를 열었다. 원자로 등 원전 설비를 만드는 두산중공업은 문재인 정부가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하면서 경영이 악화됐다. 두산중공업 노조 관계자는 "2001년 노조 출범 후 상경(上京) 집회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두산중공업 노조 간부 40여명이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일자리가 급감했다며 규탄 집회를 열고 있다. 


작업복을 입고 집회에 참석한 노조원들은 "뜨거운 용접 불똥에 살이 타고, 그라인더 먼지를 마셔도 품질을 맞추기 위해 30년 넘게 일해왔다"며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원전은 괴물이 됐고, 원전 노동자는 죄인이 됐다"고 했다. 노조원들은 청와대를 찾아 진정서도 전달했다. 노조는 진정서에서 "원전은 지금까지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으로 국가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며 "어렵고 힘들게 축적한 원전 기술을 버릴 것이 아니라 유지 발전시키는 정책 방안을 요청한다"고 했다.


두산중공업 노조에 따르면 정부의 탈원전 정책의 영향으로 본사 정규직은 2016년 7728명에서 2018년 7284명으로 444명 줄었다. 사무 관리직 3000여 명을 대상으로는 순환 휴직도 이뤄지고 있다. 본사 소속 150여 명이 관계사로 전출을 갔다. 사내 협력 업체 직원도 2016년 1171명이었지만 지난해 1002명으로 169명이 감소했다고 한다. 집회에 참가한 노조 간부는 "회사에서 희망퇴직을 받았는데 반강제적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권유가 셌다"며 "(회사에서) 나간 분이 많이 힘들어해 미안해서 요즘은 연락도 잘 못한다"고 했다.


노조 간부들은 "2017년부터 위기를 체감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이미 인가된 경북 울진 신한울 3·4호기 건설은 잠정 중단됐다. 두산중공업은 원자로 설비와 터빈 발전기를 제작·공급할 예정이었다. 특근이 없어지면서 월급이 예년보다 20% 줄었다. 지난해에는 임직원 자녀를 초청하는 어린이날 행사가 취소됐고, 건강검진이나 학자금 지원 같은 복지 혜택도 축소됐다. 한 노조 간부는 "회사에서 학자금 지원을 중단하고 '필요하면 대출받으라'고 하더라"고 했다.


두산중공업 한 직원은 "탈원전 정책 이후 회사 분위기가 삭막해졌다"며 "다음에는 내가 희망퇴직 대상자가 되거나 관계사로 전출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에서 웃음이 끊겼다"고 했다. 그는 "집에 월급도 예전보다 적게 갖다주니 가장으로서 사기도 떨어진다"고 했다. 두산중공업 협력사 관계자는 "요즘에는 회식이나 외식도 잘 안 하다 보니 식당에 가면 주인이 '힘들다던데 괜찮으냐'고 물어볼 정도"라고 했다.


두산중공업의 경영이 나빠지자 경남 지역 280여개 중소 협력 업체도 고사 위기에 처했다. 창원시와 창원상공회의소 등에 따르면 업체들이 대출을 받아 증설한 기계 설비는 일감이 없어 가동이 중단됐고, 미리 만든 생산품들은 갈 곳을 잃었다. 업체들은 기계를 매각해 직원 임금을 충당하고 있다. 업체 관계자들은 "지금까진 신고리 5·6호기 일거리가 있어 버텼지만 올 상반기 납품이 완료되면 폐업하는 업체가 하나둘씩 나올 것"이라고 했다.


창원은 다음 달 3일 국회의원 보궐선거(창원 성산)를 앞두고 있지만 탈원전을 지지하는 정당과 후보자들은 두산중공업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두산중공업 노조 양준호 수석부지회장은 "지난 1월 지회 차원에서 민주당과 정의당에 진정서를 냈지만 민주당은 답변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정의당도 탈원전에 찬성하는 입장이라 대안을 마련하겠다고는 했지만 뾰족한 대책을 내놓진 않았다"고 했다.

창원=김주영 기자 임규민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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