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실험대상인가?…국민연금, 주먹구구식 운영으로 논란 자초/한진칼, 3시간 진통 끝에 국민연금 제안 `무산'


기업이 실험대상인가?…국민연금, 주먹구구식 운영으로 논란 자초


기업 주요주주로 의결권 행사하면서 시스템 주먹구구

조양호 회장 쫓아낸 위원, 공교롭게 모두 노동계 추천 


   정부가 국민연금의 신뢰도를 회복하겠다며 의사결정 시스템을 다듬었으나 여전히 엉성하다는 사실이 올해 주주총회 시즌을 거치면서 드러나고 있다.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이 설익은 규정을 일단 투자기업에 적용하고, 잡음이 발생하면 뒤늦게 보완책을 마련하는 주먹구구식 운영으로 논란을 자초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가운데)이 올해 2월 1일 서울 소공동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기금운용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이진한 기자


논란 일면 그제서야 유권해석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기금운용위)는 29일 오전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회의를 열고 최근 논란의 중심에 있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자전문위)를 안건 중 하나로 다룬다. 기금운용위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에 관한 최고의사결정기구다. 수탁자전문위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와 책임투자 방향 등을 검토·결정하는 기금운용위 산하 민간 전문가 기구다.


이번에 수탁자전문위는 대한항공 (31,900원▲ 450 1.43%)주총 안건에 대한 의결권 행사 방향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일부 위원의 윤리강령 위반과 과도한 언론플레이 등으로 논란의 불씨를 양산했다. 민주노총과 참여연대가 추천한 위원 2명은 대한항공 주식을 보유 또는 위임받은 주주라는 사실이 회의 직전 드러났다. 


정부는 부랴부랴 법무법인에 유권해석을 맡겨야 했다. 이로 인해 논의는 이틀이나 진행됐고,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주총 전날 저녁에 간신히 입장을 정할 수 있었다. 한 위원은 "애초에 위원 자격에 대한 규정을 명확히 설정해놨더라면 불필요한 검증에 아까운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고 했다.


위원간 표대결 과정도 아리송한 규정으로 잡음을 낳았다. 수탁자전문위 주주권행사 분과위원 8명은 조양호 회장의 대한항공 이사 재선임에 대한 표결에서 4대4 동률로 팽팽하게 맞서자 논의 형태를 갑자기 전체회의로 변경했다. 


수탁자전문위 운영규정 제6조 6항에 따르면 위원 5인 이상 또는 위원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전체회의를 개최할 수 있다. 수탁자전문위의 또 다른 축인 책임투자 분과위원회 5명에게 급히 연락이 갔고, 이중 2명이 회의장에 도착해 표결에 합류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2명 모두 노동계 추천 인사였다. 결국 국민연금은 연임 반대를 택했고, 조 회장은 다음날 이사 자리를 빼았겼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는 수탁자전문위 논의를 전체회의로 확대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라 문제될 게 없다고 하는데, 그 규정 자체가 시빗거리가 될 수 있다"며 "만약 노동계가 아닌 재계 추천 인사가 갔다면 결과가 또 달라졌을 것이 아닌가"라고 했다.


매일경제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의 심각한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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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실험 대상

정부는 수탁자전문위의 전신인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의결권전문위)를 운영할 때도 엉성한 규정과 임기응변으로 재계의 불만을 샀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국민연금에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지침)를 도입하는 등 적극적인 주주 활동에 시동을 걸었다. 특히 의사결정의 투명성·독립성을 강조하며 의결권전문위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의결권전문위 소속 민간위원 9명은 "커지는 영향력에 비하면 정부의 위원회 지원은 너무 미흡하다"고 했다.


정부는 이런 지적 등을 고려해 14명으로 확대 개편된 수탁자전문위를 올해부터 출범시켰다. 그러나 총 인원이 14명일 뿐 주주권 행사분과는 예전처럼 9명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이 9명도 전문성보다는 각계 추천 방식으로 뽑도록 했다. 수탁자전문위가 작은 정치판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기금 덩치와 영향력에 걸맞는 의사결정 시스템을 촘촘하게 짠 뒤 움직여도 불안한 마당에 엉성한 규정을 일단 도입한 뒤 기업을 상대로 실험하다가 문제점을 발견하면 그때마다 땜질하는 행태를 반복한다"고 했다.

전준범 기자 조선비즈 




한진칼, 3시간 진통 끝에 국민연금 제안 `무산`


   한진그룹의 지주사인 한진칼 주주총회는 이변없이 끝났다. 하지만 갈등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도화선에 옮겨 붙었다. 


29일 서울 중구 한진빌딩 본관 대강당에서 열린 제6기 주주총회는 개회 예정 시간인 오전 9시를 훌쩍 넘긴 오전 9시 40분께 시작했다. 주최 측은 참석 주주 및 주식 수 산정에 다소 시간이 걸린다며 참석 주주에게 양해를 구했다.


이날 안건으로는 ▲재무제표 및 현금 배당 승인 ▲정관 일부 변경 ▲사외이사 주인기·신성환·주순식 선임 ▲사내이사 석태수 선임 ▲사외이사인 감사위원 선임 ▲이사 보수 한도 승인 ▲감사 보수 한도 등이 올랐다. 


29일 서울 중구 한진빌딩 본관에서 한진칼 제6기 주주총회가 열렸다. 이날 주총은 진통 끝에 오전 11시57분께 마무리됐다. [사진 = 배윤경 기자]


특히, 국민연금이 제안한 `이사 자격 강화` 안건이 주목받았다. 국민연금은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금고 이상 형이 확정된 이사는 결원으로 본다는 내용의 정관변경안을 앞서 제출했다. 사실상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 대한 저격으로 풀이된다. 안건이 통과될 경우 현재 270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 중인 조 회장이 재판 결과에 따라 사내이사 자격을 박탈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진칼 정관변경 안건은 특별의결사항으로 분류돼 출석 주주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지 못하면 부결된다. 이 안건은 찬성 48.66%, 반대 49.29%, 기권 2.04%로 결국 부결됐다. 


투표에 앞서 발언권을 얻은 주주는 "대법원 판결 전 이사를 해임하는 것은 무죄추정의 원칙과 직업 선택의 자유 등에 위반된다"며 "법률에도 정해지지 않은 사항을 정관으로 요구하는 국민연금 측 제안은 특정 기업에 대한 과도한 개입이 될 수 있어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이날 주총에는 조 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석태수 한진칼 대표의 사내이사 연임 안건도 올랐다. 조 회장이 앞서 대한항공 주총 표대결에서 패해 결국 사내이사에서 물러나면서 한진칼에서의 석 대표 연임 향방 역시 주목됐기 때문이다. 


한진칼은 이사 선임을 일반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따라서 출석 주주 과반의 찬성을 얻으면 연임안이 통과된다. 앞서 한진칼 지분 7.34%로 3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의결 자문사 ISS의 권고를 받아들여 석 대표 연임안에 찬성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결정하면서 연임은 무난하게 통과될 것으로 예상됐으며, 이변없이 찬성 65.46%%, 반대 34.54%로 연임안이 통과됐다. 


안건 표결에 앞서 주총 의장인 석 대표는 "한진칼 대표이사로서 여러가지 노력했지만 미흡한 점도 있었고, 나름대로 성과도 있었다고 본다"면서 "재선임되면 투명한 책임경영을 통해 더욱 주주 친화정책을 펴고 회사가 발전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지분 10.71%로 한진칼 2대 주주인 KCGI의 신민석 부대표는 "석태수 사내이사가 지난 2013년 한진해운 사태 당시 회사를 살리려 많은 노력을 한 것을 인정한다"면서도 "하지만 2016년 한진칼 사내이사로 재직하면서 한진해운을 지원하기 위해 상표권을 700억원에 인수해 한진칼 주주 이익을 크게 훼손한 만큼 연임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석 대표는 지난 1984년 대한항공에 입사해 2008∼2013년 한진 대표이사를 지냈고, 2013∼2017년 한진해운 사장을 역임했다. 한진그룹 내 요직을 두루 맡아 조 회장의 오른팔로도 불린다. 


이 자리에서 한진칼 측이 제안한 주인기·신성환·주순식 사외이사 선임 안건에 대해 일부 주주가 사외이사 독립성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투표 결과 3건 모두 가결됐다. 배당은 보통주 1주당 300원, 우선주 325원으로 결정됐으며, 이사보수한도와 감사보수한도는 각각 50억원과 4000만원으로 승인됐다. 


이날 주총은 3시간동안 이어졌다. 애초에 주총이 늦게 시작한데다 안건마다 주주간 의견이 상충되면서 제1-2호 의안부터는 대부분 의견 제시 없이 투표로만 이뤄졌다. 이와 관련해 일부 주주가 항의하기도 했다.




석 의장은 "올해 경기하강 및 유가·환율·금리 등 주요 경제지표의 변동성 확대가 강하게 전망되고 정치·경제 등 대외 환경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등 매우 어려운 사업 여건이 예상된다"며 "수익성 중심의 내실 추구 및 핵심사업 경쟁력 제고에 매진하고, `한진그룹 중장기 비전 및 경영발전 방안`의 충실한 이행은 물론 조기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6기 주총은 끝났지만 갈등은 이어지게 됐다. 내년 3월에 조양호·조원태 부자의 한진칼 사내이사 재선임을 결정하게 되는데다 이번에 주주제안이 제한됐던 KCGI가 이번 표대결에서도 모두 패하면서 재정비에 나설 예정이다. 국민연금은 조 부자의 사내이사 연임 안건에 대한 의견을 비롯해 이번에 부결된 이사 자격 강화안을 다시 제안할지에 대해선 아직 시기상조란 입장이다. 

[디지털뉴스국 배윤경 기자]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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