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주주권 행사의 심각한 위험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의 심각한 위험

 

이병태 KAIST 경영대학 교수 

경제지식네트워크 대표


   우려하던 대로 국민연금이 문재인 정권의 사회주의 실험의 도구로 전락했다. 지난 27일 열린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이 대한항공을 20년 이상 이끌어온 조양호 회장의 이사 재선임을 저지한 것이다. 이는 경영학의 구루(정신적 스승)로 추앙받는 피터 드러커가 우려했던 ‘연금사회주의’가 시작됐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드러커는 근로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연금이 경영권을 장악하면 창업가 정신을 바탕으로 한 전문성 있는 경영자들이 그 지위를 위협받게 돼 진취적인 경영이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선진국에서는 공적연금에서 정부가 배제되고 분산된 사적연금들의 경쟁으로 인해 이러한 우려는 현실화하지 않았다. 


이병태 KAIST 경영대학 교수


하지만 우리나라는 드러커가 염려했던 구조다. 이번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정부나 좌파 진영의 환호와는 달리 많은 문제점과 적잖은 후유증을 예고하고 있다. 그 의도는 좋으나 결과는 참사가 된 문 정부 경제 실정의 재판(再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연금이 정권의 영향 아래서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 정권의 이해가 국민과 해당 기업의 이익을 침해할 위험성이 있다. 정권은 당장 1년 뒤의 총선과 다음 대선을 의식한 인기 영합 유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관여해서는 안 되는 대통령의 발언 등을 고려하면 이번 결정이 반(反)재벌 정서를 이용해 정권의 이해를 위해 행해진 정치성 이벤트라는 의심을 완전히 배제하기 쉽지 않다. 




이번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결과는 참석 주주 64.1%가 찬성한 안을 12% 미만의 소액주주인 국민연금이 주도해서 부결시킨 것이다. 그동안 현 정부가 재벌이 소수 지분으로 과도한 경영권을 행사한다는 비난을 해온 것과 본질에서 같다. 따라서 이번 주주권 행사가 주주를 위한 결정이라는 주장의 정당성이 없다.


국민연금은 ‘기업 가치의 훼손, 주주 권익의 침해 이력이 있는 이사 후보에 대해서 반대할 수 있다’는 조항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2018년 최대의 실적을 기록했고, 영업이익도 여타의 상장회사에 뒤지지 않는 5.4%를 기록했다. 여객 사업이 10% 증가해서 고객들은 사주 일가의 일탈과 기업의 서비스를 혼동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회계감사의 문제로 주식 거래가 중지된 경쟁 회사 아시아나와 비교해 보면 조 회장이 기업의 가치를 훼손했다는 증거가 희박하다. 주주의 권익을 침해한 이력 또한 주주의 어떠한 권익이 침해됐는지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재판 중인 사안들은 확정판결이 나오기 전이고, 유사한 처지의 다른 기업에서는 국민연금이 연임 반대를 하지 않아 일관성도 없다. 


후유증의 하나는, 조 회장을 법적 책임이 없는 대주주로 만들어 그동안 정부가 추진했던 책임경영과는 오히려 거리가 더 먼 구조로 바꾸어 놓았다는 점이다. 이는 국민연금이 회사와 주주들을 위해 권한을 행사했다는 말과 배치된다.


더 근본적으로, 국민연금이 연금의 주인인 국민의 권익을 침해하는 대리인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은 그간 비교 대상에서 바닥권이다. 국민연금의 10년 평균 수익률은 5.51%로 네덜란드 ABP의 8.89%와 비교해 3.38%포인트나 낮다. 지난해에는 공적연금으로서는 경제위기 때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마이너스 실적을 냈다. 


더 우려되는 것은 후유증이다. 그러잖아도 위축된 대기업이 투자보다는 경영권 방어에 골몰할 가능성이 커졌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우려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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