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한국에서 정말 '판사'가 재판서 '정치'를 하고 있다


이제 한국에서 정말 '판사'가 재판서 '정치'를 하고 있다


[사설]

   서울동부지법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영장은 기각될 수 있다. 구속 여부는 유무죄 판단이 아니며 수사와 재판은 피의자의 방어권을 충실히 보장하면서 가급적 불구속으로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구속 여부에 대한 법관의 판단도 법과 상식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하고 같은 사건과의 형평도 맞아야 한다. 그래야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 김 전 장관 영장 기각 판사가 밝힌 사유를 보면 이것이 법관이 법리를 밝힌 결정문인지 운동권의 성명서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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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판사는 환경부의 산하기관 임원 사표 종용과 표적 감사에 대해 "최순실 일파의 국정 농단으로 공공기관에 대한 인사권과 감찰권이 적절하게 행사되지 못한 사정이 있다"고 했다. 


같은 행위를 해도 '최순실 일파'가 하면 구속이고 현 정권이 하면 불구속인가. 어떻게 법관이 법리적 결정문에 '최순실 일파'나 '국정 농단'과 같은 비법률적이고 정치적인 표현을 사용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 말 한마디로 이 판사가 어떤 사람이고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이 판사는 "새 정부가 공공기관 운영을 정상화하기 위해 인사 수요 파악 목적으로 사직 의사를 확인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도 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지금껏 드러난 사실은 청와대·환경부가 조직적으로 전(前) 정권 인물들을 상대로 무기한 감사를 벌였다는 것이다. 사퇴를 거부한 환경공단 상임감사만 콕 찍어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을 먼지 털듯 탈탈 털어 결국 쫓아냈다. 쫓겨난 상임감사는 '최순실 일파'나 '국정 농단'과 아무 상관이 없다. 말 그대로 블랙리스트 찍어내기이고 권력 남용이다. 이게 어떻게 '공공기관 정상화'이고 '인사 수요 파악 목적'이 되나. 법을 가장한 정치적 주장일뿐더러 사실관계조차 일부러 왜곡했다는 의구심이 든다. 판사가 아니라 청와대 변호사 같은 모습이다.


청와대가 낙하산을 내리꽂는 것은 '관행'이어서 고의(故意)나 위법이라는 인식이 희박했을 것이라는 기각 사유 역시 법이 아니라 정치다. 공공기관 임원 임기는 법적으로 보장돼 있고 임원을 공모할 때는 적법 절차를 따라야 한다. 환경부는 청와대 낙점 인물에게만 답안지를 미리 알려주는 '채용 사기' 행위까지 했다. 이런 사기도 관행인가.


전 정권 관계자들이 공무원들을 그만두게 한 혐의로 징역형을 살고 있다. 당시 판결문은 '(공무원에게 사표 제출을 강요한 부분은) 객관적이고 합리적 근거 없이 자의적으로 이뤄진 위법행위'라고 했다. 현 정권이 한 일도 이와 완전히 똑같다. 같은 행위로 전 정권은 감옥에 가고 현 정권은 괜찮은가. 이게 법치이고 사법인가. 국정원 특활비, 채용 특혜 문제로 기소된 전 정권 사람들도 '관행'이라고 주장했지만 일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은경 영장 기각' 식이라면 이들도 풀어줘야 한다. "김 전 장관이 퇴직했기 때문에 증거인멸 가능성이 낮다"는 기각 사유도 이중 잣대다. 전직 대법원장, 전직 국방장관, 전직 청와대 수석은 왜 구속됐나. 헛웃음이 나올 정도다.


이 판사는 대학 시절 총학생회 운동권 출신이라고 한다. 운동권 출신 중에서도 평소 정치적 생각이 어떻든 재판만은 철저히 법리만을 따지는 판사들이 있다. 하지만 이 판사의 영장 기각 결정문은 완전히 정치 문서다. 이 정권 사람들은 법원이나 검찰을 압박하는 것을 예사로 하고 자신들은 뭘 해도 정당하다는 특권의식을 갖고 있다. 이런 권력의 독주를 견제해야 할 유일한 곳이 사법부다. 그런데 판사들마저 정치적으로 편향된 주장을 펴며 권력에 맞장구를 친다. 지금 사법부의 실세 그룹 한 판사는 "재판이 곧 정치"라고 했다. 실제로 이제 한국에서 재판이 정치가 되고 있다. 법치국가,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근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를 심각한 문제로 보지 않으면 사법부와 법치, 민주주의가 한꺼번에 산사태에 휩쓸리게 될 수 있다.

조선일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26/20190326035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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