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한 말 차곡차곡 쌓는 '건설판의 詩人'

환한 말 차곡차곡 쌓는 '건설판의 詩人'


세번째 시집 출간한 신현복 한라 이사


밟히며 살고 싶은 생이 어디 있으랴. 


유년 시절, 마을 길바닥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질경이가 보이지 않는다. (중략) 고향 마을 길 곳곳 한나절을 다 돌아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중략)


울 엄마도 사라졌다. 

산 모퉁이 양지바른 터 질경이가 훤칠하다. 

(신현복 '질경이가 사라졌다' 전문)




누구나 마음 속에 시인이 있다. 하지만 생업 전선에 서있는 직장인이 실제 시상(詩想)을 글로 남겨 등단하기는 어렵다. 등단 후 꾸준히 시집을 내는 것은 또 별개다. 


신현복 한라 홍보팀 이사(55·사진)는 지난해말 세번째 시집 '환한 말'을 발간했다. 두 번째 시집 이후 1년 반만이다. 시집 제목처럼 문장이 환하고 부드러우며 곱다. '터프한 형님들'이 많은 건설업계에선 이례적이다. 


"시를 쓴 계기는 고향의 어머니에요. 몸 져 누운 아버지 병수발에 시어머니까지 모시며 우리 팔남매를 키우셨죠. 땅 한 평 없어 바닷가에서 게나 바지락을 구해 가족을 부양하셨어요. 어머니께 한 권 드리고 싶어 시작한 게 3집까지 왔네요."


충남 당진 출신으로 2005년 '문학·선' 하반기호를 통해 등단했다. 2009년 '동미집'을 시작으로 '호수의 중심'에 이어, 이번 '환한 말'에도 모친 고 윤명순(1936~2014)씨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경영학과 출신으로 문학을 정식으로 배우지는 않았다. 하지만 공광규 시인은 신 이사의 신작에 대해, "문장이 곧 사람이라는 옛 사람의 말이 오롯이 떠오른다"고 평했다. 시인이 자란 시골 제재가 유년과 현재의 경험으로 들어온다는 것. 


남다른 부부애도 드러난다. 도란도란 다정하고 한편으론 익살 맞은 부부다. 


'훌라후프를 돌리기 시작하데요. 점점 더 크고 굵은 것으로 돌리더니 이젠 울퉁불퉁한 것을 돌리더라고요. (중략) 역시 대한민국 아줌마라고 놀리니 그 답 참 가관입니다. "날 위해 이러는 줄 아시냐고요, 다 나중에 짐 안 되려고 이러지요" 하며 웃네요.'('아줌마의 힘' 중)




신 이사의 아내는 같은 고향 친구이기도 하다. "고향 어머니가 투병 중일 땐 같은 동네에 사시는 장모님이 간병을 자원하시기도 했어요. 그즈음 5년간 어머니, 장모님, 집사람과 저. 이렇게 넷이 매년 여름휴가를 함께 보냈죠."


고향냄새 물씬 나는 인간관계와 은근한 부부애를 형상한 시편들이 한 겨울에도 따뜻하다.


'근 십년만에 두번째 시집을 내면서 회사 유니폼 입은 막 사진을 사용했다. 몇몇은 신경 좀 쓰시지 그게 뭐냐고 했고 혹자는 아직도 잘 보일 일 있냐며 의도적이란 어투로 농을 던졌다. 염장 좀 지르지 마셔들 신경을 써서 찍고 찍고 보정까지 해봐도 그만한 것 없어서 그랬네요, 그래 이젠 속들 시원허슈!' ('봄날은 간다' 중)


신 이사는 인터뷰 도중에도 사진촬영에 손사래를 쳤다. 둘째 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느라 시간이 촉박하다 했다. 봄날 같다.

김희정 기자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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