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묻은 새를 겨울에 생각하며 [허찬국]

여름에 묻은 새를 겨울에 생각하며 [허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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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묻은 새를 겨울에 생각하며

2018.12.13

12월 들어 올해를 돌아봅니다. 기억에 남는 일이 여럿이나 먼저 무척 더웠던 여름 묻어주었던 새가 생각납니다. 이번 여름은 엄청 더웠습니다. 7월 하순 어느 날 늦게 여느 때처럼 학교 연구실 근처에 있는 길고양이 먹이 주는 곳에 사료를 주려고 갔다가 파란색을 띤 새 한 마리가 근처에 앉아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조심스럽게 접근했는데도 날아가지 않고 폴짝폴짝 뛰어 가까운 위치에 몸을 숨겼습니다. 일단 고양이 사료와 물을 주고 자리를 떴으나 걱정스러웠습니다. 그곳은 저녁때 고양이들이 다니는 곳이라 거동이 시원치 않은 새가 있을 자리가 아니었지요.

잠시 후 다시 갔더니 그 새는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조심스레 다가가서 손으로 잡았습니다. 긴 꼬리는 땅에 쓸려 너덜너덜했고, 부리도 많이 마모되어 보였습니다. 더위에 지쳐 정신이 없는 듯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외상이 없고, 조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어찌 할지를 몰랐지만 일단 필자의 방에서 밤을 지내게 하고 다음 날 동물병원이라도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만들어준 자리나 물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폴짝폴짝 책상 밑에 들어간 새를 두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서둘러 와보니 새는 책상 밑에서 잠자듯 누워 있었습니다. 새의 눈을 감겨주고는 몇 년 전 건물을 신축하느라 산을 깎아 조경해 놓은 언덕 높은 곳 나무 그늘에 묻었습니다. 필자는 특별한 종교가 없으나 모든 생명이 귀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새를 묻으며 얼마나 살았을지, 어디를 다니며 무엇을 보았을지 모르지만 나름대로 많은 세상을 보았을 그 새의 추억과 혼이 이제 나의 일부가 되었구나 하고 슬픈 생각을 달랬습니다.

다음은 몇 주 전 찾았던 부여의 부소산 유적지 입구에서 문화해설사에게 ‘무식한 인물’로 찍혔던 일이 생각납니다. 직장에 다니는 대학원생들과 1박2일 워크숍 일정으로 수십 년 만에 부여에 갔습니다. 망한 나라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에 처음 갔을 때 꽁꽁 얼어붙은 백마강으로 내려가 고란사와 낙화암을 보며 감상에 젖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잘 꾸며진 백제문화단지에 원래 부소산 인근에 있었던 궁궐을 재현해놓은 것과 다른 구조물, 유물들을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둘째 날 아침 찾은 부소산 유적지 초입에서 문화해설사의 간략한 설명을 듣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해설사가 여유시간이 얼마나 있는지 묻는 말에 전날 밤 술이 덜 깬 상태로 일행들과 실없이 농담하며 시간이 많으니 3천 궁녀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셔도 된다고 실언했습니다. 해설 경력이 오래된 그분은 필자와 같은 사람--말은 하지 않았으나 무식한 속물 부류--을 제일 싫어한다고 핀잔주었습니다. 백제의 문화당국으로부터 무식한 기피인물로 지목되어 부소산 유적지에 다시 입장하기 어려울 처지가 된 것이죠, 그리고 ‘삼천’은 실제 인원수이기보다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에서처럼 많다는 의미로 쓰인 것이라 무지한 저를 깨우치고, 백제의 마지막 왕이 오랜 재위기간 열심히 애쓴 군주이며 일부의 속설처럼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져 나라를 망하게 한 것이 아니라고 힘주어 설명했습니다.

부여는 함락된 후 며칠 동안 불에 탔으며 의자왕을 비롯해 만 명 넘는 백제의 장정들이 승장(勝將) 소정방(蘇定方)에 의해 포로로 당나라로 끌려갔다 합니다. 노략질과 여인들을 겁탈하는 것이 옛날 전쟁 승자들의 행태였기에 당시 백제의 도성에 있었던 아낙들의 공포와 절망은 형언키 어려웠을 겁니다. 강물에 몸을 던지는 것이 아비규환(阿鼻叫喚)보다 나아보였다고 생각 하면 지금도 가슴 아픈 일입니다. 절망과 원한에 가득 찬 이들이 찾은 장소가 낙화암뿐이었겠습니까?

역사적으로 한반도에 입지한 나라들은 乙의 입장으로 주변 강대국들의 폭력적 甲질에 시달렸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의 군대가 갑의 위치를 경험하게 됩니다. 미국의 요청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한국군은 낯선 곳에서 어려운 전투를 치르며 온갖 상황을 경험했습니다. 당시 ‘대한 뉴우스’에 보도되었던 혁혁한 전과와 더불어, 종전 후 피해자들의 증언으로 알려진 당시 보도되지 않았던 안타까운 일들도 있었습니다. 전투와 무관한 베트남 민간인 희생자들이 있었고, 성폭행에 의해 남겨진 2세들도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국내에서 70~80년 전 세대가 겪었던 일제의 갑질에 대한 분(憤)을 삭이지 못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화여대 윤정옥 교수는 일찍이 이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우리가 남의 원한을 샀던 일도 있었음을 기억하고 상흔을 치유하자는 순수한 시민운동을 시작했던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춘천에 사무실을 두고 베트남에서 각종 봉사 및 지원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베트남시민연대’가 바로 그런 시민단체입니다1).

모든 생명과 인간의 존엄은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다. 하지만 정치적, 종교적 이유로 심지어 무고한 어린 아이들이 희생되는 일이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물질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삶이 나아지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럴 때 이웃에 대한 사랑을 내세운 종교의 축일(祝日) 메시지가 가슴에 와 닿습니다. 마음의 위안을 위해 헨델(Georg Friedrich Haendel, 1685~1759)의 성악곡 “Eternal Source of Light Divine”을 권합니다. 올봄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의 결혼식에서 소프라노가 이 곡을 불렀지만 카운터테너의 노래가 참 좋습니다2).

모두 즐겁고 평화로운 성탄절이 되시길 빕니다!

1) 한국베트남시민연대의 홈페이지(www.koreavietnam.org/home.html).

2) 트럼펫 연주자 Alison Balsom의 연주녹음실황에 삽입된 카운터테너 Iestyn Davies의 연주(https://www.youtube.com/watch?v=fCSQd8Nx4mI), 또는 카운터테너 Andreas Scholl의 연주

(https://www.youtube.com/watch?v=bRGq-ZreOSU).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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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허찬국

1989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연지준과 국내 민간경제연구소에서 각각 십년 넘게 근무했고, 2010년부터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 개방 경제의 통화, 금융, 거시경제 현상이 주요 연구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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